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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편제 - 진통제 없이 견뎌내는 자연스러움
John Lee | 승인 2018.03.01 00:45

[정신의학신문 : John Lee]

 

사진_이키가미 (글, 그림_MASE Motoro)

 

<이키가미>라는 일본 만화가 있다. 가상의 전체주의 국가에서 국민들에게 출생 즉시 심장에 특수기계를 삽입한다. 1000명 중 1명은 18~24세 사이의 특정한 날에 심장이 파열되어 죽게 된다. 이 불운한 사람들의 명단은 아무도 모르게 보관되다가 24시간 전 당사자에게 통보된다. 이 통보서가 '이키가미'다.

 

이런 짓을 해야 하는 이유는, 나태하게 살아가는 국민들에게 죽음의 공포를 심어주어 생명의 소중함을 알게 하고 열심히 살게 하기 위해서란다. 극단적으로 말해 영원히 사는 사람들은 오늘을 열심히 살 필요가 없다. 그러나 내일 죽는 사람들은 오늘을 허투루 보낼 수 없다.

 

작가는 이런 설정을 비판하면서 주제의식을 드러내는데, 이런 잔인한 희생을 통해서 실제로 얻는 긍정적인 효과도 별로 없다는 내용이다. 설령 그 한 명의 죽음으로 999명의 사람들이 자신의 목숨을 소중히 여긴다 하더라도 윤리적으로 용납될 수 없는 제도임을 설명할 필요는 없다고 믿는다.

 

운명에 저항하는 개인도 바람직하지만, 어쩔 수 없는 거대한 운명에 순응하는 모습은 더 예술적이다. 우리는 타이타닉에서 울부짖으며 죽는 사람보다 침착하게 건배를 하거나 음악을 연주하는 사람들을 더욱 '감동적으로' 바라본다. 말기 암에 걸리고도 신약을 투여 받아 건강하게 회복된 것도 멋있지만, 말기 암에 걸려서 세쌍둥이를 남겨두고 떠나야 하는 엄마의 마음은 더 잘 '팔린다'.

 

사진_픽사베이

 

엄청난 고통을 한 번에 말소시켜주는 획기적인 진통제도 있겠지만, 생살을 찢는 고통을 참으며 바둑을 두었다는 관우의 이야기는 수 세기를 걸쳐 전해져 내려온다. 이키가미를 전달받고 목숨이 24시간밖에 남지 않은 사람들의 아름다운 끝마침이 사람들에게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것처럼. 이키가미를 받은 불량 청소년은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며 엄마에게 진정한 용서를 구한다. 그가 멀쩡히 살았다면 결코 볼 수 없는 인간적인 광경이다.

 

생명체가 겪는 주관적인 통증을 인공지능에게 이해시키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어떻게 해서든 피하고 싶은 불쾌한 감각 정도로 설명하기엔 가려움이나 쓴맛 정도로 생각될 수도 있다. 심지어 인간은 동물이 진짜 고통을 느끼는지에 대한 확신이 없어서 동물을 자동인형처럼 고문해도 된다고 생각한 시기도 있었다. 이 설명하기 어려운 주관적인 통증이 어떤 것인지, 얼마만한 것인지는 우리는 모두 안다. 끔찍한 고문을 앞두고 아예 자살을 해버릴 정도니까. 그것은 단지 싫은 정도가 아니다. 지옥이다.

 

고통은 주관적으로는 너무 피하고 싶고, 생물학적으로도 피하면 좋은 감각이다. 물론 날카로운 것에 찔려도 통증을 모른다면 위험하겠지만, 수술을 받은 것을 알고도 그것을 모를까봐 통증을 느껴야 한다면 그만한 비효율도 없다. 통증이 참을 만하다는 것은, 그만큼 아픈 수술이 아니었을 뿐이다.

 

자연의 순리를 따르기 위해 수술한 환자에게 통증을 참으라고 제3자는 태평하게 이야기한다. 현대의학의 도움을 받으면 살릴 수 있는 아기를 자연의 법칙에 따라 죽게 놔두라고 속삭이는 이는 결코 부모가 아니다. 쪽방촌에서 부채를 부치며 힘겨운 여름을 보내는 할머니의 얼굴 주름은 예술 작품이 된다. 반면 보톡스를 맞아 탱탱한 얼굴로 에어컨을 쐬는 강남 할머니의 얼굴은 아름답지 않다. 누구나 자신의 처지를 택할 수 있다면 모두 후자를 택하겠지만, 아무튼 뭔가 별로다.

 

사진_픽사베이

 

성형이 너무 과도하다며, 사람 얼굴의 개성과 다양성을 찬양하는 사람들은 늘 있어왔다. 그들은 모든 여자들이 똑같이 한가인 얼굴을 하고 있는 것보다, 소수의 한가인과 김태희가 있되 오나미와 박지선이 개성 넘치는 사회를 만들어 주고 소수의 미모를 돋보이게 하는 것이 더 '옳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길거리에서 다들 똑같이 생긴 괴상한 고무인형과 징그럽게 일그러지는 얼굴은, 현대의학과 미적 감각의 한계이지, 결코 아름다움을 추구한 잘못은 아니다. 요즘은 성형수술도 이전보다 자연스러움을 더 추구하는데, '자연스러움' 역시 아름다움의 일종임을 부정할 수는 없다. 내가 김태희일 때는 괜찮다. 모두가 나를 닮으면 구별이 안 가고, 세상이 다양스러워야 재미있으니까. 하지만 못생긴 여자로 태어난 사람도 그 다양성을 받아들일까? 그들이 성형을 통해 예뻐지려고 하는 것은 결코 잘못이 아니다. 다만 '강남미인'이 결코 예쁘지 않다는 것을 모를 뿐이다.

 

아무도 수술 후에 통증을 느끼지 않아 생명과 신에 대한 경외감을 느끼지 않는 사회, 60대도 관리를 받아 40대도 탱탱한 사회, 못 생긴 사람이 없이 모두가 연예인을 닮은 사회. 심장에 시한폭탄이 설치되지 않아서 모두가 나태하게 하루를 흘려보내는 사회. 이것은 전체주의 관점에서나 끔찍한 디스토피아일 뿐이다. 그 폭압 속에는, 막상 모든 것을 견뎌내어야 하는 개인에 대한 배려가 없다.

 

 

* 아편제 : 한이 섞인 목소리가 아름답다며 소리꾼인 딸의 눈을 일부러 멀게 하는 이야기인 '서편제'와, 대중적인 진통제 계열인 '아편'의 합성어

 

 

John Lee  info.psynews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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