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맞춤의학

[정신의학신문 : 온안 정신건강의학과의원 김총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진 픽사베이

올해, 미국 정부는 정밀의학(Precision medicine) 프로젝트 발족을 위해 NIH((미 국립보건원)과 FDA에 2억1500만 달러가량을 투자하며 정밀의학-맞춤의학의 실제적인 임상 적용을 위한 정밀의학사전의 개발에 박차를 가했다. 이 정밀의학 이니셔티브 프로그램은 100만명 이상의 참가자들을 대상으로 각기 개인의 유전정보를 포함한 자세하고 다양한 건강정보와 약물, 치료반응에 대한 데이터들을 모아 코호트를 만들고 있다. 정밀의학은 이제 단순히 미래의 꿈이 아닌 현대의학의 가장 큰 핵심 줄기가 되어가고 있다.

정밀의학(맞춤의학)의 핵심 개념은 “N of 1 trial" 이다. 기존의 의학 연구와 같이 다수의 환자군, 다수의 정상인 그룹을 대상으로 하여 비교하는 방식이 아닌, 단 한명의 환자를 대상으로 연구를 진행하여 그 한명에 최적화된 치료법을 찾아낸다는 것이다. 즉 n 수가 1인, 실험대상이 1명인 의학연구를 진행한다는 것이다. 이제 의학의 트렌드는 어떤 A라는 질환이나 증상에 B라는 처방을 내리는 기존의 치료법에 반기를 들고 있다. 이제는 비록 기존의 진단체계에서 같은 질환군에 속한다 하더라도 A라는 개인에 대한 A'의 치료를, B라는 환자에게는 B'의 치료를 제공하려 하고 있다.

한 예로, 최근 N of 1 개념의 실험으로 개발된 낭성 섬유증(cystic fibrosis) 치료제는 오직 약 4% 정도의 환자들에게만 전에 없던 무척 높은 치료 효과를 나타낸다. CFRT 유전자에 1500개 이상의 돌연변이가 있는 환자들에게만 강력한 효과를 나타내기 때문이다. 이 치료제 같은 경우 낭성 섬유증의 일반적인 치료제가 된다고 할 수는 없지만 환자들 중 해당 유전자 이상이 있는 경우엔 아주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을 것이다. 사실상 낭성 섬유증이 아닌, 해당 환자를 치료하는 약인 것이다.

사실 대부분의 임상에서 이러한 개개인에 맞춘 치료반응 관찰과 치료변경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수백, 수천년간 행해져 오던 개념이다. 교과서적인 치료에서 시작하지만 각각의 반응을 보고 개인에 맞춰 변칙적으로 약이나 치료법을 바꾸는 것이 임상의 핵심 아니던가.

N of 1 trial은 이와 비슷하지만 이보다 더욱 정밀하고 계획적, 체계적으로 치료 대상 한 명에 대한 자세한 분석을 하겠다는 개념인 것이다. 과거에는 교과서적인 치료를 시행했으나 효과적으로 듣지 않는 사람의 경우엔 그저 단순히 임상적 경험에 따라 다른 치료법을 사용해왔다. 하지만 이제는 그 개인을 대상으로 n=1인 연구를 진행하여 개개인의 유전자 발현이나 유전형태, 해부학적 구조에 대한 분석 데이터를 모아 이를 통해 근거 중심의 맞춤의학을 실현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큰 흐름은 정신의학의 분야 역시 결코 비껴가고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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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국립 정신보건원(NIMH)은 작년부터 RDoC(Research Domain Criteria project)라는 정신 맞춤의학의 대규모 프로젝트를 런칭하여 진행하고 있다. 과거 증상 위주의 모호했던 진단 체계를 벗어나, 질환군들의 보다 생물학적이고 정신사회학적 근거를 이해하는 진단 체계를 재정립하기 위한 프로젝트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RDoC는 '진단 시스템' 프로젝트가 아니라는 것이다. 단순히 특정 질환군을 명시하고 진단하기 위한 또 하나의 체계가 아니라, 그동안 증상을 기반으로 진단해왔던 환자들의 유전적, 해부학적, 분자적 기전과 특성들-차이점들에 대한 개개인의 데이터 축적을 위한 프로젝트이다. 바야흐로 정신건강의학에도 맞춤의학의 바람이 불고 있는 것이다.

최근 McGrath CL, Kelley ME 등의 연구에 따르면 우울증 환자들의 뇌 영상촬영 결과에 따른 항우울제에 대한 반응정도를 예측할 수 있다고 한다. 치료를 시작하기 전, 환자들의 뇌 PET 영상에 나타난 도피질(insular cortex)의 대사수준에 따라 향후 시행한 인지행동치료나 항우울제에 대한 반응이 달랐다는 것이다.

또, 미국정신의학회지에 실린 Ivleva EI, Bidesi AS 등의 연구에서는 정신증(psychosis)을 보이는 서로 다른 질환군의 환자들에게서 보이는 영상학적 차이점을 찾아냈다. 비슷한 증상의 정신증을 보이는 경우 임상적으로는 조현병, 조현정동장애, 조울증 등의 감별이 어렵지만, 뇌영상을 촬영을 통해 뇌의 어느 부분에서 피질 감소가 두드러지느냐에 따라 예후나 진단적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뇌영상을 촬영하여 약물을 결정하고, 영상학적, 유전적 검사를 통해 진단이나 예후 판정을 할 수 있다. 임상과는 관련이 없을 것만 같은, 기초적인 연구에 불과했던 이러한 생물학적 연구 결과들을 환자들과 마주하고 있는 진료실로 빠르게 끌어당기고 있는 것이 바로 정신건강의학에도 불어 닥치고 있는 ‘정밀의학-맞춤의학’의 바람이다.

더욱이 이제 맞춤의학은 유비쿼터스 헬스(U-Health)의 개발에 힘입어 더욱더 우리의 임상 실제로, 그리고 생활 속으로 들어오고 있다. 교과서적 진단에 맞춘 치료가 아닌 개개인의 맞춤 진료는 더 이상 SF 영화 속에나 등장하는 모습이 아니다. 과거 다수의 통계로 판단되어 분류된 나의 ‘병’을 치료해주던 시대는 지나가고 있다.

일상이 우울해 생활이 손에 잡히지 않는 당신은 ‘우울증’ 환자가 아니다. 정밀의학은 당신의 ‘우울증’을 치료하지 않는다. 정밀의학은 이제 우울한 ‘당신’에게 시선을 맞출 것이다.

 

 

김총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온안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학사, 석사, 전공의
한양대학교병원 외래교수
저서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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