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루한 퇴근길, 페이스북 타임라인에 흥미로운 글이 보이더군요. ‘청년 남성들이여, 정관수술을 하자.’ 였고, 본업이 의사인지라 이 글을 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진_픽사베이

 

사실 ‘드디어 비뇨기과 학회가 공격적인 프로모션을 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먼저 들더군요.

글은 제 예상과 반대로 여성의 낙태 비 범죄화 운동에 관한 글이었어요.

원하지 않는 임신을 한 경우에는 낙태를 하는 경우가 많은데, 현행법으로 낙태는 불법입니다. 따라서 낙태를 한 여성은 범법자가 되죠. 실제로 법원까지 가게 된 사례도 있었고요.

흥미로운 사실은, 한 사람이 낙태시술을 받았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단 3명이라는 겁니다. 낙태시술을 받은 당사자, 시술을 한 의사, 그리고 임신을 시킨 남자.

그러면, 누가 자신이 범죄를 저질렀음을 신고했을까요? 불법적인 시술을 받은 여자와, 불법적인 시술을 한 의사는 모두 현행법상 범죄를 저지른 범법자이기 때문에 스스로 신고하지 않습니다. 범인이 나왔네요. 바로 임신을 시킨 남자입니다.

현실적인 이유로 낙태시술을 받은 한 여성을, 임신에 절반 이상의 책임이 있는 남자가 신고를 하는 일이 종종 발생합니다. 믿을 수 없는 일이죠.

그래서 남성으로서 여성의 낙태 비 범죄화 운동에 연대하기 위해, 한 활동가가 정관수술을 받으려 하면서 벌어지는 일이 ‘청년 남성들이여, 정관수술을 하자.’ 바로 이 글입니다.

(http://www.huffingtonpost.kr/entry/story_kr_5a791993e4b00f94fe944902)

 

먼저, 자신의 몸을 던져가며 활동하고, 또 대중에게 그 내용을 공개해주신 용기에 경의를 표합니다. 글도 매력적이구요.

동시에 많은 이들이 이 글의 영향을 받을 수도 있기 때문에, 의학적인 부분을 조금 보완하려 합니다.

 

정관수술은 90% 확률로 복구 가능합니다. 반대로 말하면 10%는 복구할 수 없다는 뜻이며, 자녀를 가지는 것이 매우 어려워지겠죠. 미혼-무자녀 남성에게 시술을 해 주지 않는 이유는 바로 이 확률 때문입니다. 언젠가 자녀가 가지고 싶어질 때, 복구가 되지 못한다면 너무 슬픈 일이니까요.

본문에서 언급하셨듯이, 비뇨기과는 경제적으로 힘들어요. 위기죠. 그런 상황에서 간단한 시술로 30만원을 벌 수 있지만 그걸 포기한 거죠. 왜냐하면 미래의 당신이 어떤 상황일지 모르니까요.

의사는 당연히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합니다. 하지만 이 말이 환자가 원하는 모든 것을 해준다는 의미는 아니에요. 왜냐하면 환자는 의학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기 때문에, 의사의 도움을 받아야 환자 자신에게 가장 이득이 되는 결정을 할 수 있기 때문이에요. 당신이 만난 의사들은 아마, 그 최선의 결정이 콘돔을 쓰는 것이라고 생각했겠지요. 미래에도 임신이 가능하면서, 현재에도 피임이 가능하니까요. 그게 의사라는 전문가의 올바른 역할이구요. 당신이 만난 세 명의 의사는 이 역할에 충실하셨어요. 30만원을 포기하면서요. 마치 당신이 편한 길을 포기하고, 활동가이자 칼럼니스트의 역할에 충실한 것과 같습니다.

비밀인데, 의사는 정부랑 하나도 안 친해요. 예를 들어, 대부분의 산부인과 선생님들은 낙태가 합법화되는 것을 지지해요. 현실적으로 필요하고, 산부인과 의사도 합법적으로 시술할 수 있으니까요. 의사가 정부를 위해 일한다면, 전국의 산부인과 선생님들이 왜 불법으로 낙태를 하겠어요. 인구수가 줄어드는데요.

덕분에 개인의 자기결정권을 지키는 것에 대해 생각할 수 있어서 즐거운 저녁 시간이었습니다. 앞으로의 활동도 기대할게요.

 

18.2.6 김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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