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김성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정신과 질환의 가장 큰 특징 중의 하나는 '내가 아픈지 스스로는 잘 모른다'는 것입니다. 바로 병식 (insight)이 없다고 하지요. 또는 정신과적 문제가 있다고 생각이 들어도 '정신과 다니는 사람'으로 본인이 인식될까 두려워 자신의 문제를 부정(denial)하기도 합니다. 사회적 낙인(stigma)이 두려운 것이지요.

 

하지만 여성에게 있어 자신의 문제를 돌아보고, 사회적 낙인에도 불구하고 정신과 문을 두드리게 할 때가 있습니다. 바로 '아이를 낳고 키우게 된 이후' 입니다. 나도 모르게 아이에게 사소한 문제로 화를 내게 되고, 마음이 지쳐 아이와 즐겁게 놀아주지 못하게 되면 많은 엄마들은 '혹시 나 때문에 우리 아이가 잘못 크지 않을까?'라는 생각 때문에 상담을 받으러 옵니다. 또한 '산후 우울증' 은 '공황장애'처럼 대중에게 비교적 잘 알려진 병이라, 큰 저항 없이 우울감이 있을 경우 오기도 합니다.

 

사진_픽사베이

 

실제 출산 후 1주 내외의 짧은 기간 동안 기분의 변화는 출산을 겪은 여성의 85%까지 경험한다고 합니다. 100명 중 85명은 평소와 달리 감정의 기복이 심해지고, 예민해지며 슬픔이나 갑작스러운 울음 등을 겪는 것이지요. 보통 특별한 치료없이 자연적으로 회복되는데, 직장인에게 흔히 오는 'Monday blues (월요병)' 처럼 'postpartum blues' 라고 합니다.

 

하지만 약 10-15%의 여성은 출산 후 치료가 필요한 '산후 우울증 (postpartum depression)'을 경험합니다. 치료를 받지 않는다면 보통 수개월 이상 우울감, 의욕저하, 불면, 식욕저하, 불안과 초조, 무가치함, 자살 사고 등을 경헙합니다. 심할 경우 "아이를 죽여라"라는 환청이나 망상 등의 정신병적 증상을 겪기도 합니다.  

 

'아이가 병에 걸렸다'라는 망상으로 신생아를 데리고 여러 병원을 전전했던 한 여성이 떠오릅니다. “현재는 시력을 정확히 파악하기 어렵다”라고 해도 아이가 눈에 이상이 있는 것 같다며 안과에 가서 시력 검사를 요구하고, “아이가 지능이 낮은 것 같다.” “심장병이 있는 것 같다”고 큰일났다며 진료실에서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이미 여러 명의 의사로부터 “괜찮다”라는 말을 들었지만 믿지 않았습니다. 더 면담해 보니 우울감이 심했고, 자살 사고 또한 있었습니다. 이 여성의 경우 '본인이 아프고 어딘가 잘못된 것'을 아이에게 투사(projection)하여 '아이가 잘못된 것 같다'라고 불안에 떨고 있는 것입니다.

 

사진_픽사베이


이렇게 출산 후 우울감을 겪을 경우 본인 뿐 아니라 아이에게도 영향이 갈 수 있고, 생각보다 심하게 우울감이 올 수 있기 때문에 초기에 적극적으로 치료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됩니다.



그러면 이런 산후 우울증은 왜 생기는 것일까요? 

출산 후 우울증은 '호르몬의 변화'라는 생물학적인 영향으로 100%설명할 수 있을까요?

 

여성에게 있어 출산 및 육아는 '여성성'을 포기하고 '엄마'가 되는 과정입니다. 출산 후 퉁퉁 부은 몸은 여성으로서 '아름다움(날씬하고 예쁜)' 과는 거리가 멀지요. 그리고 힘든 몸으로 수유라는 것을 처음 해보며 심하게 표현하자면 '포유류'가 된 듯한 느낌도 듭니다. 물론 아이가 너무나 소중하고 예쁘지만 한편으로 아이를 위해 '내가 힘든 것, 내가 원하는 것, 내가 되고 싶은 것'을 포기해야 할 때도 있지요.
 

그러면 출산 후 우울감이 있을 경우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선 가까운 가족, 특히 남편에게 본인이 힘들다는 것을 표현하고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나 혼자서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힘든 상황임에도 모든 것을 짊어지고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해 육아, 집안일 등을 참고 하다 보면 우울증이 심해질 수 있습니다. 또한 이렇게 표현하지 않고 참고 참다 갑자기 무너져 폭발하게 되면 가족들은 오히려 어리둥절 하고 이런 내 자신을 ‘의지가 약하다’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우울증이 있을 때 주의할 부분은 아무리 힘들어도 아이들에게는 본인이 힘든 것을 내색하거나 하소연하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엄마’라는 존재가 힘들고 약하다고 생각하며 자란 아이들은 본인도 모르게 ‘엄마를 보호해야 된다.’라는 생각을 가지게 됩니다. 그래서 엄마-아이 사이에 역할 전도 (role reversal)가 일어나게 되어요. 얼핏 보면 ‘철이 빨리 들었다’라고 생각하게 되지만, 이렇게 본인보다 항상 엄마를 걱정하며, 엄마를 돌보아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자란 아이는 추후 우울감 등에 취약하게 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울감이 수주 이상 지속되고 아이들이 엄마가 힘든 것 같아 눈치를 보고 있는 것 같다면 전문가의 도움을 받을 것을 권유합니다. 

 

사진_픽사베이

 

개인적인 경험이지만 산후조리원에서 아기에게 섬집아기를 부르며 갑자기 울었던 기억이 납니다.

"엄마가 섬그늘에 굴 따러 가면, 아기가 혼자 남아 집을 보다가.."

아기가 혼자 남는 것이 그때는 얼마나 슬프던지요.

 

출산 후 우울감은 여성에게 흔한 증상입니다. '호르몬'의 영향으로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이지만, '여성으로서 상실감에 대한 애도' 또한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런 점에 대해 가족들이 이해하고 지지해준다면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 청와대 국민청원 및 제안에서 정신건강의학과 진단 시 보험가입 불이익에 대한 청원이 진행중입니다. 정신의학신문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과 참여 부탁 드립니다.

청원 참여하기: https://www1.president.go.kr/petitions/1116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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