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김주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이코드라마는 다양한 인간의 감정들(feelings)을 다룹니다. 부모님께 받고 싶었던 사랑을, 상사에게 받고 싶었던 인정을 그리고 믿었던 연인에게 받은 상처에 대한 분노를 표현합니다. 인간 자체가 ‘감정의 동물’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이러한 감정들의 표출이 자연스럽게 가능할 때 인간은 건강한 삶을 살고 있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감정의 표현이 어려운 상황에 놓이게 되면, 인간은 스트레스가 내면에 쌓이게 되고, 결국에는 육체적, 정신적 질환으로 진행되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습니다. 특히 부정적인 감정들은 더욱 큰 문제들을 야기합니다. 특히 우리 나라와 같이 감정 표현이 적고 억압하는 환경인 경우에는, 부정적인 감정들이 점점 커져서 한 개인의 삶을 송두리째 파괴하는 사례들을 심심치 않게 만날 수 있습니다.

 

사이코드라마는 이러한 부정적인 감정들의 배출구로서 충분한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아니, 부정적 감정을 적절하게 느끼고 표현하며, 그 표현 방법을 익힐 수 있는 학습의 공간을 제공합니다.

 

사이코드라마의 무대는 충분히 넓고 안전합니다. 이는 사이코드라마 디렉터의 역할이며 그 역량에 달려있는 문제이기도 합니다. 디렉터가 자발적이며 넉넉하게 준비되어있다면, 한 개인 (주인공)의 부정적인 감정들을 적절하고 충분하게 표현할 수 있도록 사이코드라마를 이끌어 나갈 수 있습니다. 반대로 디렉터가 부정적인 감정을 다루기 어려운 상태 – 역전이(counter transference), 신체적 건강의 악화 등 –라면, 주인공의 부정적 감정들은 제대로 다루어지지 못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진_픽셀

 

이러한 부정적인 감정들 중에서, 사이코드라마 무대에서 잘 다루어져야 할 대표적인 것이 바로 ‘분노(anger)’입니다. 다양한 상황에서 사람들은 아니, 주인공은 분노를 느낍니다. ‘부모님께 관심을 받지 못할 때, 선생님께 인정받지 못할 때, 믿었던 친구에게 배신을 당할 때‘ 등 당연히 받아야 할 관심과 인정 그리고 사랑 등을 받지 못하게 될 때, 대부분 분노의 감정을 느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주인공들은 이러한 ‘당연히’ 느껴야할 그리고 표현할 수 있는 감정인 ‘분노‘를 제대로 표현하지 못합니다. 아니 표현할 줄 모릅니다. 너무나 오랜 기간 동안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고 살아왔기 때문에, 주인공은 자신에게 그러한 감정이 존재하는지조차 모르는 인지하지 못하는 상태에 놓여 있게 됩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부정적 감정들의 처리에는 보다 많은 디렉터의 에너지(자발성)가 주인공에게 그리고 무대에 투영(projection)됩니다. 부정적인 감정들이 마음 ‘속(in)’에서 신체 ‘밖(out)’으로 표출될 때, 주인공은 무척 힘들어 합니다. 억압(repressed)되었던 감정들의 솟구침에 낯설고 불편한 느낌을 가질 수밖에 없고, 안타깝게도 주인공은 과거에 반복해왔던 익숙한 패턴과 행동을 무대 위에서 보여주게 됩니다.

 

이때 디렉터의 능동적인 대처와 적절한 도움이 주인공에게 큰 힘이 됩니다. 최근 진행된 사이코드라마에서 이러한 어려움을 가진 주인공과 작업을 적절한 예가 될 것 같습니다.

 

50대 초반의 여성으로 어려서 받지 못한 어머니의 관심과 사랑을 드라마를 통해서 해결하고자 무대로 나왔습니다. 엄마 역할의 보조 자아 앞에선 딸(주인공)은 손을 얌전히 모은 채로, 마치 밀랍인형과 같은 자세로 엄마를 바라보면서 이야기하였습니다. 엄마 앞에서 경직된 주인공의 모습에서, 얼어붙은 주인공의 내면(감정)을 볼 수 있었습니다.

 

주인공은 나지막한 소리로 엄마를 원망하였습니다.

“엄마는 늘 나에게 관심이 없었어...” 엄마를 향한 분노가 주인공의 마음속에 꽉 차있는 것이 디렉터에게 그리고 함께 한 관객들에게 느껴졌지만, 딸은 한없이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면서 작은 목소리와 굳은 얼굴로 엄마에게 이야기하였습니다.

 

주인공의 얼어붙은 ‘분노’ 감정을 어떻게 분출하도록 도와줄 것인가? 사이코드라마 디렉터에게 주어진 매우 중요한 미션입니다. 일단 주인공의 분신(double)을 옆에 서도록 하여서 주인공을 지지하도록 하였습니다. 그리고 주인공의 말을 ‘따라 하도록’ 분신에게 지시하였습니다. 이는 주인공이 자신의 말을 에코(echo)처럼 듣도록 함으로써, 자신의 감정을 확인시켜주는 일차 효과가 있습니다.

 

사진_픽사베이

 

그리고 이어지는 진행으로 주인공의 말을 좀 더 강조하고 확대하는 작업을 디렉터가 직접 분신으로 들어가서 실시하였습니다. 이를 디렉터 더블(director double)이라고 하며, 매우 강력한 사이코드라마의 ‘감정 강화’ 기법입니다. 주인공이 엄마에게 망설이며 힘없는 음성으로 “엄마는 내게 관심을 주지 않았어...”라고 했을 때, 이를 ‘증폭’하여 “엄마는 내게 사랑을 주지 않았어!!” 그리고 더 나아가 “엄마가 미워!, 너무 미워!!” 디렉터는 주인공 내면의 소리를 대신 전달해주었습니다. 그리고 주인공에게 공감된다면 디렉터를 따라서 엄마에서 직접 말할 것을 요청하였습니다.

 

주인공을 도와서 두 명의 분신-디렉터와 이중자아-이 함께 무대 위에서 엄마를 마주하였습니다. 이미 오십을 넘긴 주인공이지만, 엄마 앞에서 내면 아이(inner child)가 울고 있습니다. 여전히 엄마의 사랑을 간절히 갈구하는 어린 딸의 마음을 표현하기 위하여, 함께 힘을 모았습니다.

 

이러한 도움으로 주인공은 직접 자신의 분노 감정을 엄마에게 이야기할 수 있었고, 이어지는 화해 장면으로 자연스레 넘어갈 수 있었습니다. 얼어붙은 분노의 감정을 먼저 건드리고 표현하지 않는다면, 그 이후 진행되어야할 엄마와의 화해 즉 ‘받지 못했던 엄마의 사랑을 확인하고 받는’ 과정은 일어나기 어렵습니다. 만약 그렇게 진행된다고 하더라도 ‘마지못한 어설픈 화해’가 됩니다.

 

적극적인 분노 즉 부정적인 감정의 표현을 통한 2차 감정(secondary emotion)의 해소 후에, 주인공이 간절히 원하는 1차 감정(primary emotion)인 사랑을 표현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이 사이코드라마에서는 보다 빠르고 명확하게 일어납니다. 이는 사이코드라마가 가지고 있는 매우 강력한 무기입니다.

 

이처럼 분노(anger)를 포함한 부정적인 감정들의 표현은 늘 어렵고 제약이 많습니다. 하지만 사이코드라마가 충분히 안전하고 넉넉한 환경을 제공하며, 이 공간에서 함께 하는 사람들– 디렉터 그리고 관객들–이 주인공 즉 ‘자신의 이야기에 경청하고 공감한다’고 느낄 수 있을 때, 매우 놀라운 변화가 일어납니다. 이는 주인공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닌 관객들에게도 주어지는 선물입니다.

 

이러한 점들이 사이코드라마를 집단치료(group psychotherapy)라고 부를 수 있는 강력한 이유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필자 약력

임상 사이코드라마 수퍼바이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솔빛정신건강의학과의원 및 한국에니어드라마연구원(KIEP) 원장

한국임상예술학회 회장, 한국임상사이코드라마연구소 대표/소장

은평구민과 함께 하는 심리극 月刊 공연 ' 나를 찾아떠나는 여행' 연출

前'심리극회 거울과 가면' 및 'ACT심리극연구소' 대표

EBS '가족이 달라졌어요', MBC '사주후愛', 한국직업방송 '新 직업의 발견' 등 다수

 

교육 안내

‘임상 사이코드라마 디렉터’ 교육과정의 교육생을 모집하고 있습니다.

2018년 3월 개강으로 절찬리에 진행 중입니다.

사이코드라마 디렉터로 훈련받고자 원하시는 분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기대합니다.

문의 : gowho21@naver.com / 010-7544-9150

블로그 : 에니어드라마 http://blog.naver.com/gowho21 안내문 참조.

 

공연 안내

사이코드라마 힐링 金曜 공연

시간 : 매월 2/4주 금요일 오후7시30분 – 10시

장소 : 한국에니어드라마연구원(서울시 중구 신당동 309-45 승리빌딩 3층)

문의 : gowho21@naver.com / 010-7544-9150

블로그 : 에니어드라마 http://blog.naver.com/gowho21 안내문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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