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John Lee]

 

"내가 고객에게 무엇을 원하느냐고 물으면

고객은 '더 빠른 말'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 헨리 포드

 

백화점 1층 명품관은 손님을 한꺼번에 들여보내지 않고 매장 바깥에 줄을 서게 한다. 매장 바깥에 줄을 서서라도 구경을 하고 싶을 정도의 브랜드라는 홍보 효과도 있겠지만, 그래야 고객의 경험 자체가 역설적으로 더 좋아지기 때문이다. 고객은 반드시 쾌적한 상황에서 섬세한 안내를 받으며 기분 좋게 물건을 만져보아야 한다.

 

그러나 이 정책은 회사측의 입장만 고려한 것이다. 고객 입장에서는 매장 바깥에서 줄을 선 채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는, 북새통이라도 멀찌감치에서나마 제품을 살펴보는 편이 더 유리하다. 물론 제품 자체에 대한 이미지는 무의식중에 나빠지겠지만. 유명 브랜드를 한시적으로 가판대에 늘어놓고 싸게 팔면 사람들은 처음엔 비싼 걸 싸게 샀다고 좋아하지만, 그 상황이 계속되면 그 제품은 원래 가판대 급이라고 여겨진다. 회사는 그런 이미지를 막고 싶었던 것이다.

 

경영의 천재 백종원은 식당 대기줄을 매장 안에 만들지 말라고 조언한다. 대기줄이 식당 바깥에 있으면 비가 오건 눈이 오건 기다리는 것은 고객의 선택일 뿐이다. 식당 바깥은 식당이 아니기에 특별한 서비스를 기대하지도 않는다. 이런 불편함을 참을 수 없는 고객은 처음부터 줄을 서지도 않았을 것이다. 대신, 상대적으로 쾌적한 매장 안에서 시작된 서비스는 기다린 만큼 큰 만족감으로 와닿을 것이다. 한 시간 줄을 서서 기다린 만큼 인증샷도 남기고, 천천히 음미하면서 먹어야지.

 

사진_픽사베이

 

지방 병원 교수진 대신 강남 태생 인턴 선생님이 초진을 보시는 응급실에서 침대도 없이 바닥에 박스를 깔고 눕거나, 지잡대병원 진료가 못 미더워서 서울 초대형병원까지 기차를 타고 상경해 3시간을 기다려 3분 진료를 보는 광경은, 분명히 환자 스스로가 원한 최선이었다. 널찍한 지방 병원을 거절하고 스스로 선택한 결과이기에 딱히 직접적으로 불만을 제기하진 않지만, '왠지 기분이 나빠지네?', '어 화나네?' 그러나 현재 대한민국 의료 수준에서는, 그 사람들은 응급실 입구에서 돌아서 다른 병원에 가거나 진작에 예약이 잘렸어야 하는 사람들이다. 솔직히 거기서 투덜대는 것은 호사다. 물론 기분이 나쁠 만은 하다. 그것이 중요하다.

 

귀한 손님이 매장 바깥에서 비를 맞으며 줄을 서는 것이 안쓰러워 매장 안쪽으로 들여보낸 사장이 있다. 그러나 손님은 자신을 포함한 대기자들로 북적거리고 습하고 냄새나는 기다림을 경험하며 이를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사장에 대한 분노를 쌓아나간다. 매장 안에서 한 시간째 기다리고 있는데 바쁘다고 물 한잔 달라는 요청조차 들어주지 못하고 있지 않나. 화가 나면 음식도 왠지 맛없어지는 법이다.

 

사진_픽사베이

 

하루에 800명이나 되는 사람들에게 예방접종을 하다가 불친절로 징계를 받은 의사가 있었다. 한 사람에게 30초도 할당되지 않은 시간은 불친절하기에도 짧은 시간이다. 반면 외국에서는 30명의 사람에게 접종을 하면 일과가 끝난다. 불친절하기에는 너무 편안한 환경이다. 시간이 남으니 환자가 물어보는 것들도 알려줄 수 있고, 먼저 친절한 인사말도 건넬 수 있다. 그렇게 외국의 의사는 좋은 이미지로 남지만, 한국의 의사는 역시 싹수가 없다. 한국의 돈독 오른 의사들이 외국 의사들을 본받을 날이 오기 바란다. 몸이 아파 대형병원에 오긴 했지만 이 수모는 잊지 않겠다.

 

한국 의료인들은 정상적인 기준이었다면 절대 되지 않았어야 하는 것들을 억지로 되게 했다. 그것은 실무자 입장에서는 환자를 위한 최선이었지만 본인은 결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절대 되지 않았어야 하는 일이라면 이렇게 될 리가 없고, 이렇게 되었다면 더 잘 되었어야 할 일이니까. 집에 1주일째 가지 못하며 오늘 점심까지 거른 의료진이 곧 나오실 약봉지에 존칭을 붙이지 않으면 기분이 나빠진다. 그 불만족스러운 서비스는 일선 사람들이 잠을 못 자고, 밥을 못 먹고, 화장실도 못 가면서 쥐어짜낸 고혈이다. 저들은 주당 40시간 근무 중에 친절을 베풀었거니와 이 의사는 100일 동안 퇴근하지 못한 중에서 자기가 가지고 있는 친절 전부를 넣었느니라...

 

안 되는 것을 억지로 되게 하지 말길 바란다. 더 이상 억지로도 도저히 안 될 상황까지 상황의 심각성을 얕보게 만들어 대처를 느리게 한다. 끊어진 사슬을 사람의 손아귀 힘으로 잡아 억지로 버티다가, 이제는 사후 경직으로 버티고 있는 상황이다. 못 버틴 사람은 떠났고, 버틴 사람은 죽었다. 이젠 탓할 사람도 없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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