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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를 위한 ADHD 이야기(4/10) - 스모킹 건을 찾아서
정재석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 승인 2018.01.09 02:51

[정신의학신문 : 대한소아청소년정신의학회 미디어팀]

 

사진 출처_istock

 

‘스모킹 건’이라는 말은 어떤 행위나 현상에 대한 확실한 증거를 의미하는 말이다. 총소리가 났다면 지금 연기가 피어오르는 총을 가진 사람이 범인임을 확신할 수 있다는 뜻이다. 과거에는 범죄 행위에 대한 '결정적 증거’로 사용되는 물건이나 사실을 '스모킹 건’이라 불렀는데 현재는 의미가 확장되어 특정 현상이나 가설을 뒷받침하는 과학적 근거를 가리키는 말로도 쓰인다.

소아정신과의사들이 교사에게 자주 가지는 불만이 있다. 교사가 부모에게 “이 아이는 절대 ADHD는 아닌 것 같다” 또는 “약 먹을 정도는 아닌 것 같다”는 말을 하는 경우다. 또 어떤 교사는 아이가 학원에서 너무  선행학습을 많이 해서 산만하다거나 너무 응석받이로 키워서 그렇다거나 나름의 설명을 내 놓는다. 부모는 교사의 말에 상처를 받기도 하고 아이에게 ADHD가 아닌 다른 문제가 있다고 믿게 되기도 한다.

ADHD가 있다는 확실한 증거를 찾으려는 노력은 지난 수십 년간 이어져왔다. ADHD의 본질에 대한 생각은 조금씩 바뀌어왔으며 덕분에 ADHD가 왜 다양한 모습을 나타내는지 알 수 있게 되었다. 지금부터 ADHD의 본질에 대해 세 가지 측면에서 얘기해 보려 한다.  

 

첫 번째 측면은 ADHD가 차원(dimensional) 모델의 질병이라는 점이다. 차원모델에 대응되는 개념은 범주(categorical) 모델인데 간염, AIDS, 골절 같은 질병이 이에 해당한다. 간염이나 AIDS는 병이 있고 없고 2개의 범주만 존재한다. 그 중간은 없다. 피검사 결과나 사진을 보면 판정할 수 있다. 차원 모델은 다르다.

사진_위키미디어 공용

차원 모델의 질병 중 대표적인 것으로는 고혈압이 있는데 이완기 혈압이 90 이상이면 고혈압으로 판정된다. 그런데 어떤 사람의 혈압을 재면 아침, 저녁이 다르고 스트레스 받을 때는 90이 넘다가 편할 때는 90이하가 되기도 한다. 그래도 90이라는 커트라인을 정해서 질병과 건강을 구별한다. 이완기 혈압이 90이상으로 나오는 사람이라면 현재 아무런 증상이 없어도 고혈압 약을 복용하는 것이 권장된다. 앞으로 발생한 심장혈관, 뇌혈관, 신장 등의 합병증을 예방할 수 있어 수명을 연장시켜주기 때문이다.

 

과거 고혈압 치료에 대해 대중이 가졌던 의문은 다음과 같다.

Q1. 혈압이 항상 높은 게 아니고 가끔은 90이하로 나오니까 90이상 일때만 치료하면 되지 않나? 아는 누구는 혈압이 높아도 오래만 살던데 꼭 치료해야하나?
Q2. 예전에는 그런 병이 없었고 혈압약 없이도 잘 살았는데 약 먹고 부작용만 생기는데 제약사와 의사가 겁을 주어 돈벌이 하려는 것 아닌가?
Q3. 아는 누구는 고혈압 진단 받고 약 먹기 싫어 살 빼고 운동하고 소금을 적게 먹었더니 혈압이 정상이 되었다는데 오진 아닌가?
Q4. 약을 먹어도 근본적 치료 효과도 없고 평생 먹게 될 수도 있으므로 약에 의지하는 셈이 된다. 차라리 스스로 혈압을 조절하는 힘을 기르겠다.
Q5. 혈압이 올라간다는 것은 우리 몸의 자연스러운 생체 반응인데 그것을 화학물질로 조절하면 자연의 섭리를 거슬러 더 큰 부작용을 불러올 수도 있다.

 

열거한 의문은 고혈압 분야에서는 거의 사라졌지만 ADHD분야에서는 여전히 살아있다. 고혈압을 치료하지 않으면 일찍 죽을 수도 있다는 걸 모두 알지만 ADHD는 생명과 무관하기 때문이다. 또 신체와 정신을 둘로 구분하여 신체는 수술하고 약 먹고 치료하는 대상이지만 정신은 마음먹기에 달린 것으로 보는 경향이 아직 많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정신도 뇌라는 신체 기관에 기반을 두고 있다고 보면 많은 오해가 사라진다.

 

그림 1. 출처_게티이미지

두 번째 고려할 측면은 주의력의 발휘는 타고난 능력과 함께 개인의 성격 및 다양한 주변 환경의 상호 작용이 합쳐진 결과라는 점이다. 학생마다 키가 다르고 지능이 다르듯이 주의 집중력도 제마다 각각 다르다. 집중하는 힘도 조사해보면 키나 지능처럼 그림 1. 같은 정규분포를 보인다. 집중력 정상 95%, 부족한 5% 이런 식으로 구별되는 방식이 아니고, 집중력이 평범한 학생이 제일 많고 빼어난 집중력을 가진 학생도 몇몇 있고 집중력이 특히 약한 학생도 소수 있는 방식으로 분포한다. 연구에 따르면 이 중에서 하위 5%에 속하는 학생, 즉 그래프 왼쪽 끝에 위치한 학생은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적응에 어려움을 겪는다고 한다. 물론 가정이나 교사의 도움이 상당하거나 지능이나 참을성이 좋다면 어려움을 적게 겪을 수도 있다. 그래도 자신이 가진 잠재력을 충분히 발휘하기는 힘들다. 

집중력이 하위 10%에 속하는 남학생 한 명이 있다고 생각해보자. 이 학생은 초등학교에 다니는 동안은 집중력이 조금 아쉽긴 하지만 그다지 지적을 많이 받지는 않을 것이다. 머리가 좋고 옆에서 도와주는 어른이 있다면 초등학교 내내 좋은 성적을 받을 수도 있다. 중학생이 되어 공부할 내용이 많아지고 시험이 어려워지기 시작하면 10분마다 딴 생각을 하거나 자주 멍 때리는 학생으로 변하기 쉽다. 이 학생이 게임을 자주 하기라도 한다면 부모와 갈등이 점점 많아질 것이다. 이 경우 무엇이 문제인가? 기대가 너무 큰 부모? 너무 어려운 중학교 공부? 학생의 참을성?

미국이라면 위에서 말한 학생을 ADHD로 진단하고 약을 투여할 것이다. 미국 전체 학생의 11%가 ADHD로 진단받고 있으니까 참을성이 부족한 남학생이라면 진단을 받을 확률이 높다. 약을 먹으면 집중력이 좋아져서 공부 따라가기에 훨씬 수월할 것이다. 이제 집중력이 하위 30%인 학생이 고등학교 3학년이 된 상황을 상상해보자. 고3이라면 집중력 상위 10% 정도 외에는 집중력의 부족을 누구나 느낄 것이다. 수면도 부족하고 운동할 시간도 없고 심리적 압박감도 크니까 더 그러할 것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ADHD의 과잉진단 가능성과 치료제의 오남용 가능성이 부각된다. 과잉과 적정을 가르는 선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 건강한 학생도 약을 먹으면 공부가 잘 된다고 할 수도 있으므로 약에 대한 반응도 진단 기준이 되지 못한다.

 

마지막으로 알아볼 ADHD의 본질은 ADHD 개념의 역사적 변천과 관련 있다. 1980년 처음 등장한 ADD(주의력결핍장애)라는 진단명에는 이 진단의 스모킹 건이 주의력 결핍증상이라는 생각이 들어있다. 주의력은 3가지로 나눈다. ‘경계주의력’은 졸림과 지겨움을 물리치고 정신을 차리는 능력이고, ‘선택주의력’은 산만하게 하는 주변 자극에 신경을 끄고 지금 눈앞에 있는 과제에 초점을 모으는 능력이며, ‘주의집중시간’  (attention span)은  한 가지 활동이나 과제에 되도록 오래 집중하는 능력을 말한다. 3가지 주의력 중 1가지가 부족하면 과제를 제대로 해낼 수 없고 학생이 열심히 하지 않고 산만하다는 인상을 가지게 된다.

사진_게티이미지

아이들이 왜 산만한지 연구를 더 해보니 아무 생각 없이 나오는 자동적인 행동을 억제(inhibition)하는 능력의 문제가 더 본질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러셀 바클리 라는 당대 최고의 ADHD전문가의 주장인데, 아무 말이나 거르지 않고 해버리거나 물건을 항상 아무데나 두는 행동을 설명한다. 지적을 받은 다음에도 전에 하던 행동을 수정하지 못하지 못하므로 개념 없거나 고집 센 학생이라는 인상을 주게 된다. 야단맞고 후회해도 전에 하던 행동을 계속 고치지 못하는 모습이 진단의 스모킹 건이라는 생각이 최근까지 이어졌다. 이런 생각은 유명한 마쉬멜로 실험에도 담겨있다. 작업 기억력이나 전두엽기능, 실행(집행)기능은 이런 억제능력에 기초한 기술로서 비교적 정확하게 검사할 수 있고 치료방법도 나와 있어서 ADHD검사에 포함되기도 한다.

최근에는 ADHD의 본질은 억제 곤란 보다는 동기유발 장치의 기능이상이라는 주장이 점점 힘을 받고 있다. 그냥 공부하라고 하면 집중을 못하지만 공부 마치면 게임 같은 상을 준다고 하면 집중을 잘하는 모습, 지시를 하면 여러 번 재촉할 때까지 즉시 실행하지 않고 미루는 모습에서 하고 싶은 것만 하려는 이기적 인상, 또 게으른 인상을 주게 된다. 숙제를 하면 주말에 놀 수 있다는 얘기를 듣고 주말에 보상을 받기 위해 과제가 끝날 때까지 두뇌도파민 보상회로를 활성화시킬 수 있어야 하는데, ADHD 학생은 이 회로가 활성화가 안 돼 과제를 시작할 만한 동기를 스스로 만들어내지 못한다. ADHD 치료제가 도파민보상회로를 활성화하는 기능이 있는 점, 행동치료가 아이와 행동계약을 맺고 스티커라는 임시 보상을 제공해서 동기유발을 돕는다는 점이 동기유발 능력 부족을 ADHD 진단의 스모킹 건으로 보는 이유이다.  

 

교사를 포함한 일반 대중은 처음에 강하게 각인된 ADHD에 대한 이미지를 기준으로 이후에 접하게 되는 ADHD를 판단하게 되는데, 각인된 이미지는 대부분 아주 심한 케이스인 경우가 많다. ADHD에 대한 편견이란 ADHD의 가장 심한 모습을 중심으로 ADHD라면 누구나 그 비슷할 거라 미리 판단하는 것이다. ADHD 학생이 가진 주의력, 억제능력, 동기유발능력의 부족은 우리 모두가 조금 또 많이 항상 겪는 문제이고 건강한 사람과 ADHD를 구분하는 절단점은 세상에 없다. 우리 모두에게 ADHD 특성이 있다는 생각이 편견을 극복하는 시작점이 된다. 어떤 교사가 말하기를 병원 가서 진단받아 보라 해도 화를 내고 거절하는 학부모가 많았는데 학생의 행동을 학생의 특성과 교사, 또래, 수업과의 상호작용 결과로 이해하고 난 후부터는 부모가 교사의 조언을 쉽게 받아들이더라고 한다. 부모가 두려워하는 것은 병원이 아니라 교사의 편견이라는 것이다.  

 

 

대한소아청소년정신의학회 미디어팀

www.adhd.or.kr

 

 

정재석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maumnew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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