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_픽사베이

 

우리는 인정(approval)에 목말라 있습니다. 내 자신의 존재 가치에 대해 늘 확인받고자 애쓰며 또한 지지받고 싶어 합니다. 특히 가족 안에서 부모와 자식 관계라면, 이러한 인정과 지지는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필수적인 인정과 지지가 가족 안에서 제대로 전달되지 못하는 상황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기도 합니다.

 

건강한 가족관계에서 서로의 인정과 지지는 어떻게 표현되어야 할까요?

특히 부모가 자녀에게 어떻게 말하고 행동하느냐는 매우 중요합니다. 그 자녀가 어릴수록 부모의 언행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의지할 수밖에 없으며, 자신에 대한 판단의 기준점이 되기 때문입니다.

 

사이코드라마의 무대에서 이러한 부모님의 인정과 지지를 갈구하는 주인공을 저는 심심치 않게 만나왔습니다. 특히 20대 초반에서 후반을 아우르는 성인기 초기의 주인공들에게 들을 수 있는 간절한 바램이 바로 이러한 욕구들입니다.

 

20대는 아시다시피 청소년에서 성인으로 성장해나가는 연령대입니다. 부모로부터 분리와 독립을 심리학적으로 발달과제로 삼고 있는 시기라고 설명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부모와 관계가 원만하지 못한 성장기를 보낸 많은 사람들은 이러한 발달과제를 성취하는데 애를 먹을 수밖에 없습니다.

 

사이코드라마는 이러한 인정과 지지의 욕구를 공감하고 이해하며, 더 나아가 부모와 관계를 재설정 또는 복원하는데 매우 유익한 도구입니다. 사이코드라마에서 주어지는 만남의 기회, 즉 참만남(encounter)의 순간을 경험하면 신비로운 가족관계의 복원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역할 연기(role playing)라는 단순하지만 강력한 방법으로, 부모와 만난 자녀 즉 주인공은 그동안 표현하지 못하고 감추어야했던 자신의 감정들과 만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감정들과 마주하게 되면서 주인공은 부모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느낄 수 있게 되고, 새로운 선택을 결정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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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열린 사이코드라마 공연에서 바로 이러한 주인공을 만났습니다. 20대 후반의 여성으로 “부모님의 인정을 받고 싶다!”고 당차게 이야기하는 초등학교 선생님이 바로 그분입니다. 주인공은 초롱초롱한 눈빛과 낭랑한 목소리를 가진 사랑스런 딸이었습니다.

 

극이 시작되고 주인공은 빈 의자(empty chair)에 자신의 상황을 이야기하였습니다. 늘 바쁘신 엄마(보조 자아)가 첫 대면 상대로 무대로 올라왔습니다. 딸(주인공)의 소풍 때, 단 한번도 김밥을 싸주지 못했던 엄마였고, 현실적인 논리로 설득하고 압박하는 엄마의 강한 모습이 무대에서 보여졌습니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그런 엄마를 많이 닮은 듯한 딸(주인공)의 모습도 볼 수 있었습니다. 자신의 감정 표현이 서툰, 즉 늘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고 엄마에게 맞춰 살아왔던 주인공의 삶이 그 자신의 말속에 고스란히 담겨있었습니다.

 

엄마와 다투고 자기 방에 홀로남아 ‘분을 삭이며’ 울고 있는 주인공의 모습이 무척 안쓰러웠습니다. 주인공이 자신의 감정들을 자연스레 느낄 수 있도록, 사이코드라마 디렉터는 주인공의 방에서 자신의 가구/사물들과 이야기할 수 있도록 장면을 설정하였습니다. 책상에 앉아서, 침대에 누워서 자신의 삶을 ‘잘 알고 공감하는’ 가구들에게 지지와 위로를 받았습니다. 엄마에게 받고 싶었던 인정과 지지의 경험을 주인공은 비록 가구들에게 받았지만, 이는 다음 작업을 위한 지렛대로 작용하였습니다.

 

주인공은 다시 엄마를 마주하였습니다.

엄마를 바라보며 주인공은 자신의 감정을 전달하였습니다. “엄마, 내가 얼마나 외로웠는지 알아?” 주인공은 감정을 배제한 듯 또렷한 음성으로 말하였습니다. 이제 디렉터는 주인공의 가구들을 그녀 뒤에 서게 하였습니다. 이들에게 딸의 분신(double)이 되어서, 그녀가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감정들을 표현하도록 지시하였습니다.

 

“엄마, 나는 너무 외로워! 나는 화가 나! 엄마, 나 너무 힘들어!”

딸의 마음을 단순하지만 깊게 울리도록, 큰 소리로 분신들은 엄마에게 외쳤습니다. 그리고 주인공에게 공감하면, 따라 외치도록 하였습니다. 점차 주인공은 어색하지만 자신의 감정을 말로 표현하였습니다.

 

그리고 이제 엄마가 화답할 차례가 되었습니다. 사이코드라마 디렉터는 엄마에게 자신의 진심을 담아서 딸에게 얘기해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엄마는 자신이 부족한, 미숙한 엄마였음을 딸에게 고백하였습니다. 그리고 딸(주인공)의 손을 잡고 용서를 구하였습니다. 주인공은 그런 엄마를 용납하였습니다. 그토록 매몰찼던 엄마가 ‘진심으로’ 마음을 열고 딸을 대할 때, 딸의 마음도 녹아내리기 시작하였습니다. 엄마와 딸이 포옹하고, 조용히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리고 무대의 조명이 꺼졌습니다.

 

주인공은 자신을 인정해주는 엄마를 기대했습니다. 자신의 새로운 선택과 결정을 지지해주는 든든한 엄마의 모습이었습니다. 사이코드라마는 ‘심리적’ 현실에서 주인공이 인정과 지지를 경험하도록 이끌었습니다. 주인공의 새로운 선택(엄마의 뜻을 저버린)이 결국은 자신을 찾아가는 방법에 대한 결정이었기 때문에, 본 드라마는 주인공에게 넉넉한 해답을 전해줄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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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코드라마는 다양한 만남을 만들어냅니다. 부모에게 인정받고 싶은 자녀의 마음은 무대에서 경험할 수 있는 보편적인 감정들 중 하나입니다. 제대로 받고 누려보지 못한 그 감정을 역할 연기(role playing)와 잉여현실(surplus reality)로 풀어내면, 놀라운 일이 무대에서 일어납니다. 사이코드라마(psychodrama)는 실재(real)입니다.

 

 

필자 약력

임상 사이코드라마 수퍼바이져,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솔빛정신건강의학과의원 및 한국에니어드라마연구원(KIEP) 원장

한국임상예술학회 회장, 한국임상사이코드라마연구소 대표/소장

은평구민과 함께 하는 심리극 月刊 공연 ' 나를 찾아떠나는 여행' 연출

前'심리극회 거울과 가면' 및 'ACT심리극연구소' 대표

EBS '가족이 달라졌어요', MBC '사주후愛', 한국직업방송 '新 직업의 발견' 등 다수

 

공연 안내

사이코드라마 힐링 金曜 공연

시간 : 매월 2/4주 금요일 오후7시30분 – 10시

장소 : 한국에니어드라마연구원(서울시 중구 신당동 309-45 승리빌딩 3층)

문의 : gowho21@naver.com / 010-7544-9150

블로그 : 에니어드라마 http://blog.naver.com/gowho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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