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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박증'이라는 이름의 덫
신승호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 승인 2018.01.03 07:32

[정신의학신문 : 신승호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강박, 강박사고 그리고 강박행동?

 

영화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As good as it gets, 1997)>에서 잭 니콜슨이 분한 멜빈 유달은, 강박증(Obsessive-compulsive disorder)을 가진 소설가이다. 그는 늘 정해진 루틴대로, 본인이 정한 스스로의 규칙을 엄격히 지킨다. 매일 같은 식당, 같은 자리에서 식사를 하며, 행여나 다른 이들이 오염물질이라도 묻힐세라 자신이 가져온 1회용 나이프와 포크를 사용한다. 보도블럭 위를 걸을 때면, 보도블럭의 틈을 밟지 않으려 애쓰고, 타인과의 접촉을 끔찍이도 피하려 한다. 영화의 초반부에서 묘사되는 그의 삶은, 가여울 정도로 메말라 있다.

 

강박(obsession)이라는 단어의 어원을 살펴보면, 'ob(toward, to, on, over, against)'와 'sess(sit)'가 결합하여 '붙어서(on) 앉아 있다'라는 obsess 라는 단어를 만들어 내는데, 이는 '(생각, 망상 등이)붙다, 들리다, 괴롭히다'라는 의미를 가진다. 결국 obsession은 '사로잡힘, 강박관념, 망상'의 뜻으로, obsessional은 '강박관념에 사로잡힌, 강박관념에 사로잡힌 사람'의 뜻으로, obsessive는 '붙어 떨어지지 않는, 강박관념의, 망상에 사로잡힌'의 뜻으로 쓰인다. 강박 혹은 강박관념이란 결국, 어떠한 생각이 머리에 들러붙은 것 마냥  머릿속을 떠나지 않으며, 이 생각이 지속적으로 자신을 괴롭히는 것을 뜻한다. 마치 외부에서 난데없는 생각들이 침투해 들어오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이를 침투사고(intrusive thought)라고 칭하기도 한다.

 

사람들은 어떤 일에 대한 생각이 계속 떠오르고, 그 생각을 떨쳐낼 수 없을 때 “강박관념을 가지고 있다”고 이야기하거나, 어떠한 특정 행동을 반복적으로 하게 될 때, “강박적으로 행동한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쓰는 강박이라는 단어에는 강박적인 ‘생각’과 ‘행동’ 둘 다가 포함되어 있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강박이라는 범주 안에 강박사고(obsession)와 강박행동(compulsion)이 존재한다.

 

불현듯 떠오른 강박사고가 머리를 헤집어 놓고, 불안을 비롯한 온갖 감정들을 유발하고 있다면, 인간은 이러한 불편함을 없애기 위해서 본능적인 대처를 하게 된다. 예를 들어, 낡은 건물의 화장실 문고리를 손으로 잡은 이후 느끼는 불쾌감을 잊기 위해 손을 수 십분 이상 씻는 행동을 하거나, 외출 준비를 하고 집을 나선 직후 다리미 스위치를 끄지 않아 집에 불이 날 것 같은 불안감을 느낀 이후, 다시 집으로 들어가 확인하는 행동들이다. 이처럼, 불안을 유발하는 강박사고를 없애기 위한, 혹은 불편감을 중화시키기 위한(neutralizing) 행동들이 바로 강박행동이다. 그리고 일정 한도의 역치 수준을 넘어선 강박 증상들은 우리의 삶을 잠식할 수 있다.

 

사진_픽사베이

 

강박, 누구에게나 있다. 그러나

 

정신분석의 아버지,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정상’상태의 기준이 '약간의 히스테리(a little hysteric), 약간의 편집증(a little paranoid), 약간의 강박(a little obsessive)을 가진 것' 이라 기술했다. 정상적인 인간이라면 누구나 약간의 강박을 가진다. 물론, 강박증을 진단하는 데 있어 가장 핵심적인 두 가지의 축은, 강박사고와 강박행동이다. 하지만, 위의 두 증상이 있다고 해서 정신병리적인 수준으로 여기는 것은 금물이다. 강박증을 비롯한 여러 정신과 질환을 진단하는 데 있어 증상 자체의 유무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증상들이 자신이 사회적, 직업적 영역에 있어 얼마나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가 하는 것이다. 자신에게 강박사고와 강박행동에 가까운 증상이 있다 하더라도, 자신의 삶에 아무런 지장이 없고, 자신과 주변의 사람들이 불편감을 크게 느끼지 않는다면 굳이 정신과적 문제로 진단하여 치료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1978년 브리튼을 비롯한 몇 명의 연구자들이, 124명의 정신적으로 ‘건강한’ 보통 대학생을 대상으로 자신의 정신 경험에 대해 연구를 한 적이 있다. 놀랍게도, 80%에 이르는 대학생들이 강박증 환자에게서나 볼 법한 수준의 생각이나 이미지를 경험했다고 보고했다. 그 강박사고의 내용들은, 앞에서 언급한 불결함에 대한 불쾌감이나 다리미 스위치에 대한 불안과 같은 흔한 종류의 생각들만이 아닌, 이유 없이 타인을 눈 앞의 과도로 찌르거나 높은 곳에서 밀어버릴 것 같다는 생각, 자신이나 가까운 이에게 엄청난 사고가 일어날 것 같다는 생각처럼 현 상황에 전혀 맞지 않고 끔찍한 생각들이었다.

 

즉, 건강한 정신으로 삶을 살아가는 이들도 아주 짧은 순간, 전혀 이치에 맞지 않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사진_플리커

 

정상과 강박증의 경계는 어디일까

 

그렇다면, 정상인이 겪는 ‘스쳐 지나가는’ 강박적 사고와 강박증을 경계 짓는 기준은 과연 무엇일까? 그 기준은, 강박적 사고의 기괴함과 불합리함이나, 사고 자체의 강렬함(intensity)보다는, 강박적 사고에 스스로가 부여하는 ‘의미의 정도’이다.

 

자신의 머릿속에 불현듯 떠오른 생각에 심한 불쾌감을 느끼거나, 실제 그런 일이 일어날 것만 같은 불안감이 엄습하기 시작한다면, 강박적사고는 그러한 감정을 양분삼아 암세포가 서서히 퍼져나가듯 머릿속을 잠식하게 된다. 점차 커진 강박사고는 점차적으로 더 심한 불안감을 만들어내며, 결국 이 불안을 중화시키기 위해, 아니 불안의 중화 보다는 ‘살아남기 위해서’ 본능적으로 어떤 행동이든 동원하게 된다. 불쾌감을 없애기 위해 몇 시간이고 정해진 방법으로 샤워를 하거나, 가전제품의 스위치나, 가스 밸브, 자동차의 손잡이를 반복적으로 확인하는 등의 병적인 강박 행동들이 시작되는 순간이다. 강박사고의 불안을 잠재우기 위한 강박행동은 임시방편이 될 뿐이다. 강박행동을 통한 불안의 해소는 오래가지 못하며, 이내 강박사고는 다시 의식으로 떠올라 불안을 유발한다. 그리고, 때로는 강박행동의 강도가 점점 더 증가하기도 하는 악순환을 겪기도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정상적인 이들은 강박적인 사고를 경험하는 순간, 평상시와 다른 생각임을 알아차리면서도 생각 자체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머리 안에 침투해 들어온 생각에 의미가 부여되지 않으면, 이내 바람에 모래가 깎여나가듯 생각은 서서히 사라진다.

 

사진_픽사베이

 

강박증의 덫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강박증을 극복하기 위한 열쇠는 여기에 있다. 물론, 뇌과학의 발전으로 강박증상들과 관련된 뇌 신경체계들이 발견되고,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SSRI)를 비롯한 약물치료가 강박증상 자체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 밝혀져 있지만, 약물치료를 통한 신경전달체계의 조절만으로는 강박증의 근본적인 변화는 어렵다.

 

자신의 머릿속에서 떠오른 강박사고가 다른 이들도 일상적으로 겪을 수 있는 생각임을 주지하는 것이 강박증을 대하는 가장 핵심적인 태도이다. 그리고 이를 판단하거나 반응하지 않으면서 일상생활에 전념할 수 있는 습관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이러한 습관을 들이기 위해서는 충분한 연습이 필요하다. 이를 반응 및 노출 방지 (exposure & response prevention, ERP) 기법이라 하며, 현재 강박증의 치료에 있어서 이 기법을 포함한 인지행동치료와 약물치료를 병행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물론, 혼자만의 노력으로 극복하기 어렵다면 전문가의 도움을 받을 필요가 있다.

 

 

신승호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powersal@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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