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대한소아청소년정신의학회 미디어팀]

 

사진_픽사베이

 

미국 아이들 중 11퍼센트가 ADHD로 진단되고 있으며 전 세계에서 생산되는 ADHD약의 86퍼센트를 미국이 소비한다고 한다. 그래서 미국을 ADHD nation이라고 부르고 싶은 호사가들도 적지 않다. 미국이 아닌 다른 여러 나라는 ADHD를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을 풀기 위해 폴랜직(Polanczyk)박사팀은 1993년부터 2003년까지 조사가능한 모든 나라의 현황을 종합하여 2007년 한 학술지(Journal of Health Affairs)에 발표했다. 조사 결과는 다음과 같다. 몇몇 예외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나라에서 아이들은 5퍼센트 정도 ADHD를 가지고 있었다. 이는 유전적으로 매개되는 기질 요인이 질환의 발생에 중요하다는 증거였다.

 

예외가 있었는데 세계 평균보다 훨씬 높은 미국, 그리고 특히 낮은 아프리카와 중동의 국가였다. 유병율이 낮은 이유로 ADHD의 존재 자체에 대한 국민의 인식이 낮은 점, 치료를 해 줄만한 의료기관이 부족한 점, 의무교육의 실시여부를 꼽을 수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어려운 경제 사정 때문에 죽고 사는 문제가 아닌 정신건강 문제에는 중요성을 부여하지 않는 분위기 때문이었다. 미국이나 호주 같은 나라에서는 땅이 넓은 관계로 한 나라 안에서도 지역별로 ADHD 유병율의 차이가 2배 이상 나는 경우도 있었고, 이스라엘의 경우 유태계와 아랍계의 유병율 차이가 컸다. 이는 경제적 요인 뿐 아니라, 의료시스템과 학교정책, 그리고 가치관과 양육문화가 ADHD라는 병을 진단하고 치료하는데 큰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ADHD 약 소비량의 추세도 흥미로웠는데 1993년에는 세계 31개국이 치료에 약을 일차적으로 선택하는 나라로 분류되었는데 2003년에는 55개국까지 늘었다. 10년 동안 전 세계적으로 약을 복용하는 아이가 3배 늘었고 총 약품비용은 9배 늘었다. 그것은 2000년에 작용이 긴 비싼 약이 쏟아져 나왔기 때문이다. 2000년부터 2010년 사이의 변화를 조사한 다른 연구에 따르면 미국에서 10년간 처방량이 32%퍼센트 늘어난 동안 다른 나라에서는 165%가 늘어, 이제 ADHD는 미국 백인 중산층의 성취욕구가 나은 문화현상이 아니라 전 세계적인 정신보건 문제가 되어가고 있다고 할 수 있었다.

 

나라마다 ADHD에 소비하는 의료비가 달랐는데 국내총생산(GDP)가 높을수록 ADHD에 많은 의료비를 소비하는 경향이 있었다. 미국, 캐나다, 호주는 GDP 대비 더 많은 ADHD 의료비를 쓰고 있었고, 유럽 국가들 대부분은 GDP 대비 더 적은 ADHD의료비를 쓰고 있었다.

 

그림_국가별 ADHD 관련 의료비 지출정도

 

(그림에서 진한 색깔의 나라일수록 ADHD관련 의료비 높음) 영국이 치료비용을 적게 사용하는 이유는 영국이 사용하는 엄격한 ADHD 진단 기준과 관련이 있었으며, 프랑스와 스웨덴은 처방에 대한 정부규제가 엄격하기 때문에 치료비용이 적게 든다고 한다. 캐나다, 호주는 미국과 달리 의사가 ADHD를 과잉진단해도 경제적 이득이 주어지지 않는 의료제도이므로 ADHD 진단이 많은 이유를 다른 데서 찾아야 했다.

 

이제 나라 별로 ADHD를 어떻게 진단하고 치료하는지 자세히 알아보려고 한다. ADHD는 의료비 지원과 처방규제 같은 정부정책, 그리고 적응이 힘든 학생에 대한 학교의 정책에 영향을 많이 받는데 자유를 가장 많이 허용하는 이스라엘부터 한국과 상황이 가장 비슷한 브라질, 가장 억제하는 중국(무관심한 아프리카나 중동 정부는 제외하고)까지 차례로 알아보려 한다.

 

1. 이스라엘

이스라엘이 ADHD에 관한 한 가장 자유로운 나라로 꼽힌 이유는 2011년 초 진단받지 않고 처방전 없이도 약국에서 ADHD 치료제인 메칠페니데이트(우리나라에서는 향정신성의약품으로 분류)를 살 수 있었기 때문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의사들의 반대로 다시 처방전이 필요해졌지만 이스라엘은 성인이라면 인지 개선을 위해 약을 자유로이 복용할 자유를 주겠다는 태도를 가지고 있다. 똑똑한 유태인들이 건국한 나라의 이미지에 걸맞게도 학교에서 공부를 잘 하라는 압력과 직장에서 생산성에 대한 강조가 다른 어느 나라에 뒤지지 않기 때문이다.

흥미롭게도 이스라엘 아동들의 평균적인 에너지 수준은 다른 나라 아동들에 비해 높아 과잉행동이 상당하다고 알려져 있으며 이것은 ADHD와 건강한 아이를 구별하기 힘들게 할 수 있다. 주로 학교에서 ADHD 아동을 의뢰하는데 절반 이상이 약을 복용하며 비싸고 길게 작용하는 약 대신 싸고 짧게 작용하는 약을 선호한다. ADHD 진단을 받으면 학교에서 특수교육과 함께 각종 입학시험에서 편의제공을 받을 수 있다.

 

2. 캐나다

ADHD 정책에 관한 한 가장 이상적인 모델은 캐나다이다. 사회주의 의료제도에 의해 치료비 부담이 없는 것도 좋지만 나라에서 진단과 치료 방침을 표준화하여 계속 업데이트하고 있으며 과학적 근거가 확실한 치료만을 적용하도록 국가가 지원한다.(우리나라는 과학적 근거가 없는 치료를 더 많이 지원) 50퍼센트 정도의 아이들이 약을 복용하며 심리치료와 행동치료도 병행한다. 학교에서 특수교육을 제공하지는 않지만, 부모교육이나 방학프로그램, 교실 내 도움은 제공한다. 캐나다는 정부가 제대로 된 정책만 펼치면 ADHD약의 오남용 위험도 적절히 관리하면서, ADHD가 제대로 치료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3. 호주

진단받은 아이들이 점점 늘어 소아청소년 인구의 10%가 넘어서 거의 미국과 비슷한 수준이 되었다고 한다. 약을 복용하는 아이도 진단받은 케이스의 절반이 넘는다고 한다. 교사가 부모에게 ADHD 진단을 권유하는 경우가 많으며 진단, 치료비의 85%를 국가가 책임진다. 1년에 12번 심리치료를 보장하며 행동치료도 시행되지만 도시 쪽이 치료사 사정이 좋은 편이다. ADHD 뿐 아니라 자폐스펙트럼장애 환자도 매년 가파르게 증가해서 2012년 기준 32명 당 1명꼴로 진단된다고 한다. 이에 대해 미디어에서는 환경독소나 영양소 부족을 원인으로 의심하는 보도를 자주 내고 있지만 전문가들은 편견이나 돈 때문에 치료를 꺼리지 않는 분위기를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한다.

 

 

사진_픽사베이

 

4. 독일

2000년부터 2010년 사이 독일의 ADHD 환자 수는 2배로 늘었다. 독일은 이웃 유럽 나라보다는 미국을 닮아가고 있다는 뜻이다. 늘어난 환자는 대부분 저소득층과 시골지역에서 발견된 것이다. 약을 먹는 비율은 미국보다는 낮고 호주, 캐나다와 비슷한 수준이다. 약물치료 단독만으로 치료하는 경우가 제일 많았으며 약물과 함께 시행되는 치료는 주로 작업치료이고 행동치료나 부모교육은 아주 드물게 시행된다. 독일의 통계는 중산층 이상에서는 ADHD 치료에 걸림돌이 적으므로 사회분위기나 정부정책의 영향을 덜 받지만 저소득층과 시골은 영향을 많이 받는다는 공중보건이론을 다시 확인시켜준다.

 

5. 노르웨이

최근 10년 간 ADHD 약을 복용하는 환자수가 20배 늘었으며, 이제 진단받은 아동 중 약을 복용하는 비율은 1/3 정도이다. 약물치료와 함께 가족치료, 부모의 부부치료, 놀이치료 같은 다양한 심리치료도 함께 제공되며 비용은 석유를 팔아 부유해진 국가가 댄다. 정부가 의료전문가들의 의견을 받아들여 ADHD를 널리 알리고 편견을 해소시키는 방향으로 정책을 진행해 온 결과이다. 그러나 의료 전문가들과 반대 진영 사이의 논쟁이 치열하다. 반대 진영에서는 ADHD는 정상과의 경계가 불분명한 병이므로 의사로 임의로 과잉 진단할 가능성이 많으며 약물치료도 장기적인 효과가 불분명하다고 말한다. 노르웨이는 학업성취의 압력도 아직 많지 않으며 ADHD 관련 예산을 줄여야 하는 압력도 적은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ADHD의 진단과 치료 선택에 대해 벌어지는 논쟁이 치열하다. ADHD에는 제약회사의 돈벌이와 학업능력 향상이라는 이슈도 있지만 인간이 어떤 것을 이루기 위해 어디까지 도움을 받는 것이 정당한지, 그리고 행동을 약으로 조절할 때 인간 이성의 가치가 훼손되는지에 대한 심오한 철학적 논쟁의 장으로 우리를 끌어들인다.

 

다음 편에는 우리나라와 가장 유사한 브라질 이야기로 이어가려 한다.

 

대한소아청소년정신의학회 미디어팀

www.adhd.or.kr

 

 

정재석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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