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_셔터스탁

 

진료실에서의 폭력 문제, 특히 응급실에서 발생하는 폭력 문제는 하루 이틀의 일은 아닙니다. 진료실에서 소아과 전공의에게 가해진 보호자의 심각한 폭력이 사회적 이슈가 된 적이 있었고 응급실에서의 폭행과 주취자의 난동도 자주 언론을 통해 알려지고 있습니다.

 

과거 한 피부과 의사가 치료 결과에 앙심을 품고 들어온 환자로부터 복부에 칼을 맞아 입원했다는 뉴스가 있었습니다. 그 얘기를 전해들은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같은 상황이 일어날 뻔했던 긴박한 상황이 있었습니다.

 

몇 년 전부터 정기적으로 영등포에 있는 무료진료소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보통 무료진료소에 오시는 분들은 건강보험이나 의료보호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복지 시스템의 사각지대에 있는 분들입니다. 이런 분들은 정신과 질환과 알코올 의존이 심한 분들이 많고 불규칙한 생활로 여러 만성질환을 같이 가지고 있는 경우가 흔합니다.

 

이곳은 응급실이 있는 곳이 아니어서 대신 저는 내과 외래진료를 맡고 있습니다. 그렇다 보니 외래진료는 익숙지 않아 간혹 환자들을 기다리게 할 때도 있습니다. 그 날도 많은 분들이 진료를 받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진료실에 앉아 접수 순서대로 환자를 보던 중이었습니다.

 

"안녕하세요. 어디 불편해서 오셨어요?"

 

인사하면서 보니 느낌이 이상했습니다. 환자는 붉게 상기된 얼굴로 자리에 앉더니 한참 뚫어지게 저를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어디가 아파서 오셨는지 얘기를 해주세요."

 

사진_픽사베이

 

다시 한 번 말을 거니 환자는 말없이 차트를 가리켰습니다. 차트에는 위염약을 처방받은 기록 외엔 없는 상태였습니다.

 

다시 한 번 어디 아파서 왔는지 물으니 속이 아파서 왔는데 차트 보면 딱 알아야지 왜 자꾸 물어보냐고 합니다. 배를 이곳저곳 진찰하면서 어디가 아픈지 물어도 제대로 된 대답이 없습니다.

 

술에 취한 상태라 진찰이 안 되는 상황으로 판단되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내일 술 깨고 다시 오셔서 진료를 보시자고 설명했습니다. 그러자 환자는,

 

“아 나, 금방 들어갔다 나왔는데 또 열 받게 하네. 교도소 좀 다시 가야겠구먼.”

 

하면서 품에서 뭔가를 천천히 꺼냈습니다. 지켜보고 있으려니 그것은 덮개가 덮인 과도였습니다. 깜짝 놀라 설마 하고 있는데, 이어 과도를 내리 잡더니 덮개를 풀었습니다. 당황스러웠지만 다행히 환자가 술에 취해 천천히 움직이고 있기에 일단 양 손목을 잡고 칼을 빼앗을 수 있었습니다. 결국 술 마신 상태에서는 진료 받을 수 없음을 설명하고 다음 환자들의 진료를 위해 다른 봉사자 분께 인계했습니다.

 

놀란 마음을 진정하고 다음 차례를 기다리던 환자들을 보던 중이었습니다. 밖에서 다투는 소리가 나기에 무슨 소리인지 들어보니 진료가 늦어진다며 한 환자가 항의를 하고 있었습니다. 곧 그 환자 순서가 되어 성함을 부르니 이분도 내원 전 한 잔 하신 듯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들어오면서 다짜고짜 소리를 지릅니다.

 

앞에 칼 든 놈 진료하는데 그렇게 오래 걸리니 뒤에 기다리는 사람들 진료가 늦어지는 것 아니냐며 항의했습니다. 칼 맞을 뻔 한 당사자는 겨우 마음 추스르고 진료 보고 있는데, 이건 또 웬일이냐 싶어 억울한 마음이 앞섭니다. 잘 달래서 설명하고 원하는 약 처방하고 나니 술 취해서 소리 질러서 죄송하다며 다시 순한 양 모드가 됐습니다.

 

사진_픽사베이

 

외래에서 겪은 폭력 문제로 기억나는 건이 또 있습니다. 실습학생으로 외래 참관수업 당시 산부인과 수술 후 입원 중인 환자의 남편이 술을 마신 상태로 들어와 교수님 멱살을 잡고 항의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땐 급히 레지던트 선생님이 달려와 상황을 해결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또 비뇨기과 환자가 진료에 앙심을 품고 진료했던 교수님 목에 칼을 들이대고 병원을 상대로 인질극을 벌여 뉴스에 나왔던 기억도 있습니다.

 

진료실에서의 폭력 문제는 드물지 않습니다. <의협신문> 기사에 따르면 의사의 63.1%가 진료실에서 직접적인 폭력을 경험했다고 합니다. 기물 파손 등 간접적 폭력까지 포함하면 무려 95%가 진료실에서의 폭력을 경험했다고 하네요. 단순히 운이 나빴던 것이라 치부하기에는 그 빈도가 너무 높죠.

 

안타깝게도 응급실에서는 폭력 상황이 더 자주 일어나곤 합니다. 술 취해서 119에 실려 오는 환자들이 얼큰하게 취한 기분에 의료진에 폭언·폭력을 휘두르는 경우는 비일비재합니다. 한번은 온몸에 문신을 한 조폭 환자가 칼에 다쳐 와서는 의료진에게 폭력을 휘둘러 강력계 형사가 출동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더 심각한 것은 경찰이 왔을 때 조용해진 환자 앞에서, 경찰이

 

“양쪽 얘기 들어보니 쌍방과실인 것 같은데, 지금은 환자가 조용한 상태이니 그냥 치료할 거 치료하고 돌려보내시라”고 할 때입니다.

 

사진_픽사베이

 

이럴 때 가장 큰 피해를 입는 사람은 물론 의료진이겠지만 옆에서 치료 중이던 다른 응급환자들에게도 고스란히 그 피해가 전가됩니다. 폭력 상황에서 모든 응급실 진료는 마비되기 일쑤이고 당장 사용해야 할 약품과 컴퓨터 등 집기들이 파손되는 경우도 발생합니다. 이건 보상이나 잘잘못을 따질 문제가 아니라 바로 환자의 생명을 담보로 하는 인질극에 다름 아닙니다.

 

여러 채널을 통해 환자와 의사의 믿음 관계가 개선돼 서로 존중하는 입장으로 진료를 볼 수 있게 되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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