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김양식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그림 1. Inside Out (2015, Walt Disney Pictures)

 

“아빠, 내가 해볼래.”

새로 산 우유팩을 뜯으려는데 아이가 자신이 해보겠다고 말을 합니다. 스스로 하려고 한다는 기특한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제대로 할 수 있을까 우유를 흘리지는 않을까하고 걱정이 됩니다.

 

“그래 너가 한번 해봐.”

아이가 원하는데로 맡겨봅니다. 아이는 우유팩 입구를 완전히 펴지도 않고 손톱으로 입구를 뜯어내려 합니다. 저러다가는 우유를 따를 때마다 옆으로 줄줄 샐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안 되겠다 싶어 1분도 안 되어서,

 

“안되겠다. 아빠가 해줄게.”

하지만 아이는 고집을 부리며 자기가 하겠다고 합니다. 아이도 많이 해봐야 우유팩도 잘 열고 할텐데, 당장 앞에서 바라보는 부모 마음은 아이가 사고를 치지는 않을까 조마조마하기만 합니다.

 

 

기억과 신경연결의 기본 단위: 시냅스 (synapse)

 

20세기 초, 신경과학이 태동할 당시에 과학자들은 기억이 어디에서 오는지에 대해 연구하였습니다. 뇌라는 신체기관은 알았지만 신경세포가 어떻게 생겼는지 어떻게 기능하는지를 몰랐기 때문입니다. 신경세포의 모양과 형태를 밝혀, 신경세포간 연결의 실마리를 제공한 위대한 과학자가 Santiago Raymon y Cajal (1852 - 1934, 그림 2) 입니다. 이후 여러 연구와 논의를 거쳐 신경세포는 시냅스를 통하여 소통하고 이 시냅스의 형성-유지-소멸이 곧 기억이라는 과학적 토대를 이루었습니다.

 

시냅스에서는, 앞의 신경세포가 축삭 (axon) 이라고 하는 긴 실과 같은 다발을 통해서 전기 신호를 전달해 오면, 축삭 끝에서 신경전달물질이 시냅스로 분비하게 됩니다. 뒤의 신경세포에서는 수용체를 통하여 신경전달물질을 감지하고 다음 신경세포로 전기 신호를 전달할 준비를 하게 됩니다. 이런 시냅스는 신호가 많고 활발한 신경세포에서 더 많이 형성하게 되는데, 이를 ‘헵의 규칙’ (Hebbian theory) 이라고 합니다. 함께 활성을 보이는 신경 세포는 함께 연결되어 있다 (Cells that fires together, wires together)라는 캐나다 심리학자인 Donald Hebb (1904 - 1985)의 통찰이 후세 신경과학자들의 연구를 통해 밝혀진 것입니다.

 

그림 2. 해마 (hippocampus)의 신경세포의 모양과 연결 (Santiago Ramon y Cajal).

 

애니메이션 영화 ‘Inside Out’ (그림 1) 을 보면, 장기기억을 저장하는 선반에 알록달록 여러 감정의 색깔을 가진 구슬들이 진열 되어 있습니다. 이 구슬 각각이 기억을 저장하고 있는 시냅스라고 볼 수 있습니다. 새롭고 강렬한 기억은 장기기억으로 저장되고, 오래되고 이제는 강렬하지 않은 기억은 암흑의 구덩이로 묻혀서 사라지는 기억과 시냅스의 생성과 소멸에 대해 아름답고 알기 쉽게 표현한 멋진 영화입니다. 이처럼 기억은 충분히 기억할 만한 이유가 있어야 하고 (registration - encoding), 유지할 필요가 있어야 하며 (maintenance - reconsolidation), 신경세포와 시냅스의 물리적인 용량이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경제적인 사용을 위해서는 강렬하지 않고 잘 사용되지 않는 기억은 폐기-소거 (extinction) 하게 됩니다.

 

어떤 사실이나 행동을 기억하고 학습하기 위해서는 강렬한 감정적 자극이 함께 있어서 중요한 의미를 가지거나 (valence), 반복적으로 노출되어서 중요성을 가져야 합니다. 더 오래 기억되기 위해서는 역시 감정이나 반복적인 노출이 있어야 더 오래 기억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기억 저장에는 수면, 특히 꿈을 꾸는 REM 수면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림 3. 장기 기억의 분류. 명료 기억 (declarative memory)과 비명료 기억(nondeclarative memory). Nature Reviews Neuroscience 11, 523-532 (July 2010)

 

장기 기억은 언어를 이용하여 명료하게 표현하고 구분할 수 있는 명료 기억 (declarative memory)과 그렇지 않은 비명료 기억(nondeclarative memory)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그림 3). 명료 기억은 시간과 공간적 요소가 함께 들어가서 이야기처럼 말할 수 있는 삽화 기억(episodic memory)과 어떤 대상에 대한 정의 및 지식과 같은 의미 기억 (semantic memory)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이는 주로 해마 (hippocampus)와 연관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비명료 기억은 또한 절차 기억 (procedural memory), 예비화 (priming), 고전적 조건화 (classical conditioning), 그리고 습관화 (habituation) 및 민감화 (sensitization)로 나눌 수 있습니다.

 

오늘 중점적으로 보고자하는 절차 기억은 수영, 자전거 타기와 같이 우리가 어떻게 몸을 움직이고 실행하는지 말로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한번 배워두면 시간이 지나도 잊지 않고 몸이 기억하는 그런 기억을 말합니다. 절차 기억은 정보를 처리하고 운동이나 말 등의 실행을 주관하는 대뇌 피질 (cerebral cortex)과 대뇌 피질 밑에 위치하여 대뇌 피질의 신경 세포의 연결을 받아서 그 세기와 활동을 민감하게 조절하는 기저핵 (basal ganglia)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기저핵은 여러 신경질환 및 정신질환과도 연관되어 있는 부위로, 파킨슨병, 헌팅턴병, 강박질환, 그리고 뚜렛질환과도 관련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기저핵은 보상체계의 핵심적인 뇌부위로, 적절한 보상을 통한 행동의 강화(reinforcement)가 큰 효과를 나타냅니다.

 

 

건강한 시냅스 연결을 위해서는 기다림이 필요합니다.

 

위에서 말씀 드린 것처럼, 절차 기억 - 우유팩을 열기, 숟가락을 사용하기, 양치질 하기, 걷기, 뛰기, 블럭놀이, 자전거 타기를 위해서는 책도 유튜브도 아닌, 반복적인 운동과 시행을 통해서 배워야 합니다. 언어적인 지식이 아니기 때문에 자세히 설명해주고 알려준다고 알 수 있는 기억이 아닙니다. 무조건 여러번 반복적으로 해봐야 익히게 되고 능숙하게 할 수 있게 되는 것이 바로 몸으로 익히는 기억입니다.

 

이처럼 반복적으로 해야만 하는 여러 행동들을 우리 아이가 더 잘 익히고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으려면,

 

첫 번째, 당연히 아이에게 시도하고 실패할 수 있는 기회를 충분히 주어야 합니다. 아이가 실수할까봐 마음 졸이고 걱정이 되더라도, 넘어져서 다칠 것이 염려되어도 큰 위험이 예측되는 상황이 아니라면 아이가 할 수 있도록 지켜보고 기회를 주어야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어른의 성숙한 뇌로 위험과 실패가 예측이 되어서, 아이를 막고 싶고 대신해주고 싶은 것이 당연하고 정확한 계산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의 성장과 계발을 위해서는 한번 더 생각하고 참고 기다려주는 것은 또한 쉽지 않은 일이기도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부모들은 위험한 상황을 피하면서도 아이에게 기회를 줄 수 있는 한발 더 앞서 나아가는 더욱 성숙한 판단이 필요합니다.

 

두 번째, 아이가 행동이 실패할 때든 성공할 때든 일관된 관심과 지지가 필요합니다. 아이는 어떤 행동을 하고 나서 부모의 반응을 살핍니다. 성공을 했을 때는 물개 박수와 칭찬으로 아이가 성공한 행동을 유지하고 성취감을 느낄 수 있도록 충분히 보상을 하여 성공한 행동을 유지하도록 하고, 실패를 했을 때는 아이 옆에서 묵묵히 지켜보면서 아이가 크게 좌절하지 않고 다시 시도할 수 있도록 격려해주는 부모의 반응이 필요합니다. 실패했을 때 무관심이나 잔소리 등 처벌이 있게 된다면, 아이는 그 행동을 다시 하고 싶어하지 않고 시도가 어려워지게 됩니다. 성공을 했을 때에도 칭찬 등의 보상이 충분하지 않을 경우에는 아이가 그 행동을 더 발전하려는 노력이 줄어들게 됩니다.

 

사진_픽셀

 

이와 같은 반복적인 행동을 통해서 대뇌와 기저핵, 그리고 여러 뇌부위 신경세포간의 연결인 시냅스에 절차기억을 저장하게 됩니다. 우리는 태어나서부터 여러가지 행동을 시도해보고 익히면서 절차기억을 충분히 만들었기 때문에, 걷고, 컵으로 물을 마시고, 수저로 밥을 먹고, 컴퓨터 자판을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게 되었고, 그 뒤에는 우리 부모님들의 기다림과 따뜻한 격려가 있었습니다. 세상이 너무 빠르게 돌아가고 4차 산업혁명이 휘몰아쳐서 아이들이 뭔가 빨리 배우고 익혀야 할 것 같지만, 살아가기 위해 꼭 필요하고 중요한 기본 - 아이들의 건강한 시냅스 연결과 뇌성장을 위해서는 부모들의 기다림과 따뜻함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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