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김주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이코드라마의 주인공(protagonist)은 그 날 가장 자발성이 높은 분이십니다. 아니 주인공을 ‘모시는, 선택의 순간’에서 가장 높은 자발성을 보이는 사람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장 먼저 주인공의 의사를 밝히신 참가자를 대부분 주인공으로 자연스레 모십니다.

하지만 거의 동시에 주인공 역할로 참여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힌 분이 2명 이상의 다수라면, 이때 사이코드라마 디렉터는 어떤 선택과 결정을 해야 할까요?

 

사진_픽셀

 

몇 가지 선택의 방법들이 디렉터에게 주어지는데, 모두 장단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선 가장 간단한 방법으로 사이코드라마 디렉터가 스스로의 판단으로 주인공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극의 시작인 준비과정부터 집단 전체를 바라보고 함께 작업해온 디렉터의 입장에서 가장 준비된 참여자가 누구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사이코드라마에서 말하는 텔레(tele)로 주인공을 디렉터가 선택하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디렉터의 텔레와 판단이 정확하다면, 그날에 가장 적합한 주인공을 선택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사이코드라마 디렉터도 인간입니다. 자신의 경험과 신체적 그리고 심적 상태에 영향을 지대하게 받습니다. 즉 디렉터의 역전이(countransference) 문제를 고려하지 않는다면, 최선의 선택이 아닌 최악의 선택이 될 수 있습니다. 디렉터가 많이 다루어보지 않은 주제들, 연령대 그리고 해결되지 못한 갈등을 자극하는 주인공 등은 자칫 디렉터의 주인공 리스트에서 배제되게 됩니다. 그러다보면 디렉터는 늘 자신에게 익숙한 그리고 편한 주인공만을 자신도 모르게 선택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점들을 사이코드라마 디렉터가 충분히 고려한다면, 아마도 가장 적합하고 준비된 주인공을 선택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진_픽셀

 

그리고 제가 많이 사용하는 방법이면서 사이코드라마의 기본 원칙 중 집단치료의 목적을 잘 살린 방법이라고 생각하는 것으로, 집단원들이 주인공을 선택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는 사회측정학적(sociometric) 방법을 활용한 것으로 디렉터의 개입(힘)을 줄이고 동시에 집단원(관객)의 참여도를 높이는 효과를 누릴 수 있습니다. 만약 10명 미만의 소집단이라면, 주인공으로 적합한 사람이 누구인지를 관객들에게 직접 물어보는 과정을 거쳐서 가장 많은 지지를 받은 주인공 후보자를 선택합니다. 하지만 집단의 크기가 클수록 이러한 방식은 많은 시간 소모와 자칫 지루해지는 흐름으로 인하여 사용하기 어렵습니다, 이렇게 집단의 크기가 클 때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이 바로 사회측정학적 선택입니다.

 

사회측정학적인 방법으로 주인공을 선택하는 방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관객들에게 자신들이 선호하는 주인공의 앞에 가서 줄을 서거나, 그 사람의 어깨에 손을 짚어서 자신의 선택을 공개하는 방법이 바로 사회측정학적 선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방법을 액션 소시오그램(action sociogram)이라고 명명하기도 합니다. 이는 집단의 선택을 행동으로 나타내고, 자신들의 선택이 매우 중요한 결정을 만들 수 있음을 직접 경험하는 자리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주인공의 선택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과제가 바로 선택당하지 못한 분들에 대한 고려 또는 배려입니다. 용기를 내어서 무대 위로 올라와 주인공을 자원하였는데 디렉터 또는 집단의 선택으로 주인공 역할을 얻지 못한다면, 그것 역시 마음의 상처가 될 수 있습니다. ‘나는 역시 안 돼!’ 부정적인 피드백이 선택받지 못한 분에게 본의 아니게 주어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상처를 보듬을 수 있는 대책을 사이코드라마 디렉터는 준비하고 있어야 합니다. 저도 디렉터 초년 시절에는 이러한 대비를 미처 생각하지 못하고 그냥 객석으로 돌려보낸 후회스런 장면이 꽤 떠오릅니다.

 

주인공으로 선택받지 못한 분들을 위한 배려 또는 고려는 바로 그들을 위한 작은 작업들 – 빈 의자(empty chair) 또는 비네트(vignette) -을 바로 진행하는 것이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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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의자(empty chair)는 사이코드라마의 가장 기본적인 장면 기법으로 아무도 앉아있지 않은 의자에 떠오르는 누군가를 앉히고(상상하고), 그 누군가에게 마치 그 자리에 있듯이 말을 하는 기법입니다. 심리적 투사(projection)를 드라마적으로 적용한 매우 간단하면서도 훌륭한 연극적 장치로 쓰일 수 있습니다. 이를 이용하여 무대 위에 올라오신 주인공 후보자들에게 자신이 원하는 것 또는 바라는 대상(인물)을 만나서 이야기하는 간단한 작업으로, 비록 작지만 그 마음을 담아드리는 작업을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조금 더 역할 연기(role playing)를 추가하여 상대 역할의 보조 자아가 등장하여 간단한 장면을 만들어서 진행하는 작업이 비네트(vignette)입니다. 얼마 전 공연에서 주인공으로 선택되지 못한 젊은 여성 참여자를 위하여 ‘그 분의 어린 시절 받아보지 못한 선물’인 거의 입어보지 못하였던 ‘예쁜 분홍색 원피스’를 엄마에게 직접 선물로 받는 가상의 장면을 즉석에서 장면으로 연기할 수 있습니다. 엄마는 딸이 남자 아이처럼 자라기를 바라는 마음이 컸기에 여자 아이의 옷을 잘 사주지 않으셨고, 그 여성 참여자는 늘 바지만을 입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워엄-업(warm-up)에서 지나간 기억을 떠올린 여성 참여자를 위하여 작은 장면을 즉석에서 만들어 드렸고, 살짝 눈물이 맺히는 장면이 연출되었습니다.

 

이렇게 참여자들의 마음과 마음을 소중히 담고 연결해나가는 작업이 사이코드라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사이코드라마가 한 사람의 이야기 즉 주인공(protagonist)과의 작업이라는 좁은 시각을 탈피하면, 참여자 모두와 함께 나누고 연결되는 집단 치료(group psychotherapy)라는 말의 의미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필자 약력

임상 사이코드라마 수퍼바이져,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現 솔빛정신건강의학과의원 및 한국에니어드라마연구원 원장

現 한국임상예술학회 회장 및 現 한국임상사이코드라마연구소 대표

現 은평구민과 함께 하는 심리극 月刊 공연 ' 나를 찾아떠나는 여행' 연출

前 '심리극회 거울과 가면' 및 'ACT심리극연구소' 대표

EBS '가족이 달라졌어요', MBC '사주후愛', 한국직업방송 '新 직업의 발견' 등 다수

 

공연 안내

사이코드라마 힐링 金曜 공연

시간 : 매월 2/4주 금요일 오후7시30분 – 10시

장소 : 한국에니어드라마연구원(서울시 중구 신당동 309-45 승리빌딩 3층)

문의 : gowho21@naver.com / 010-7544-9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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