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_셔터스탁

 

심장은 참 오묘한 장기입니다.

 

홀로 전기신호를 만들어 심방과 심실을 차례로 뛰게 만들고 혈액을 뿜어내는 과정을 생각해보면, 마치 시계 장인이 손수 부품을 끼워 만들어 낸 하나의 정밀한 기계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홀로 잘 뛰고 있을 때엔 모르다가 문제를 일으키기 시작하면 웬만한 장인이 아니고서야 수리가 힘든 시계처럼 치료가 쉽지 않은 장기이기도 합니다.

 

어느 날 아침, 119 대원으로부터 응급실로 전화 한 통이 걸려 왔습니다. 호흡곤란이 심한 할아버지 한 분을 이송중인데 혈압도 낮고 심전도도 이상해 미리 준비를 해달라는 내용이었습니다. 몇 분 지나지 않아 119 대원과 함께 도착한 할아버지는 숨이 차 헉헉대면서 말을 할 수도 없을 정도로 힘들어 하고 계셨습니다. 집에 혼자 사시는 터라 보호자는 함께 오지 않았고 따로 사는 따님이 신고하여 119 대원이 어렵게 문을 열고 모시고 나왔다고 합니다.

 

의식은 있었지만 언제부터 숨이 찼는지 물어도 헉헉대느라 대답도 못하는 상태. 당연히 흉통 여부나 심장질환, 호흡기질환 여부를 알 수 없는 상태였습니다. 일단 환자의 생명징후(vital sign, 혈압, 맥박, 호흡, 체온을 일컬음)부터 잡아야겠다 싶어 공급하는 산소를 올리고 혈압과 심전도부터 확인하기로 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모니터링 기계에 찍힌 심박동은 200회. 다행히 맥박은 있었지만 혈압은 잘 확인되지 않는 상황이었습니다. 이어서 확인된 심전도는 심실빈맥. 환자 상태가 안정적이고 혈압이 유지되는 상황이면 시간을 두고 지켜보면서 약물치료를 해볼 수 있겠지만 지금 제 눈앞의 환자는 그럴 상태가 아닙니다. 급히 제세동기로 심율동 전환(Cardioversion, 전기충격을 통해 불규칙한 심박동을 정상으로 되돌리는 술기)을 시도해야 할 상황이었습니다.

 

사실 응급의학과 의사에게 심실빈맥 환자를 제세동기로 치료하는 일은 흔한 일이 아닙니다. 오히려 심실세동(심장이 불규칙하게 부르르 떨면서 정상적인 펌프 기능을 잃은 상태)으로 의식 없이 실려 온 환자에게 심폐소생술을 하면서 제세동(Defibrillation, 전기충격으로 부르르 떠는 심장을 일시적으로 멈추게 하는 술기)을 시행하는 경우는 자주 발생합니다만, 의식 있는 환자에게 긴급하게 전기충격을 가하는 일은 사실 10년 응급실 생활에서 처음 있는 일이었습니다.

 

사진_픽사베이

 

그러고 보니 전공의 때 얘기 들었던 특이한 환자 한 분이 생각이 나네요. 자주 심실빈맥이 발생해 응급실에 걸어 들어와서는 전기충격을 해 달라는 아저씨가 있었습니다. 조심스럽게 에너지를 50J 로 적용하고 쾅 하고 전기충격을 가하고 나면,

 

“아악, 아냐, 이번 건 좀 약했어. 봐봐. 아직 안돌아왔지?”

 

이렇게 얘기하곤 꼭 100J 로 전기충격을 받고는 심율동 전환이 되어 피검사는 모두 거부하고 돌아가시는 분이었습니다.

 

응급의학과 전공의들은 그 분 덕택에 심율동 전환을 경험해볼 수 있었지요. 저는 직접 그 분을 치료할 일이 없어 응급실에서 심율동 전환을 해 보진 못했었습니다.

 

다시 현장으로 돌아오죠. 할아버지 보호자는 없고, 심장질환 여부는 모르고……. 이렇게 되면 잠시나마 고민이 됩니다.

 

‘전기충격을 해야 할까? 했다가 안돌아오거나 심장이 그대로 멈추면 어떻게 하지? 보호자한테 뭐라 말해야 할까? 혹시 의료사고 되는 것 아닐까?’

 

잠시지만 이런 고민을 하다 결심했습니다. 교과서대로 하기로.

 

사진_픽사베이

 

전기충격은 통증이 꽤 큰 술기 중 하나입니다. 드라마에서 보셨죠? 전기 충격이 들어가는 순간 온 몸의 근육이 강하게 수축합니다. 패들에 젤리를 잘 바르지 않거나 가슴에 정확하게 접촉시키지 않은 채 에너지를 전달하면 화상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그만큼 큰 에너지가 가해지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여유가 있으면 환자를 약물로 재운 채 술기를 진행해야 하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그런 배려를 하기엔 너무도 불안정한 상태였습니다. 진정제를 투여하고 잠시 기다려 봤지만 숨이 차서 그런지 주무실 것 같지가 않더군요. 패들에 젤리를 바르며 할아버지께 설명했습니다.

 

“할아버지, 상황이 많이 급해서 그러니까 조금 아프시겠지만 잠깐만 참아주세요!”

 

“다들 준비 되었죠? 하나 둘 셋, 클리어!”

 

전기충격이 가해졌고 할아버지는 으윽, 하고 손을 움켜쥐었습니다. 아프게 해 드린 것은 죄송하지만 여유를 부릴 상황은 아니라 바로 모니터링 기기를 확인하니 다행히 심실빈맥은 사라졌고 심방세동(심방만 부르르 떠는 상태, 심실의 정상 펌프 기능은 유지됨)이라는 부정맥만 남아있는 상태였습니다.

 

혈압도 100 이상으로 오르고 할아버지도 서서히 숨을 고르게 쉬시기 시작하고……. 큰 숨이 절로 나오는 상황이었습니다. 할아버지께서 응급실에 도착한지 이제 5분 좀 넘었을까요?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습니다.

 

이제 할아버지는 새벽의 긴박한 상황을 설명하실 수 있게 되었습니다. 갑자기 심장이 터져버리는 줄 알았다고, 그러더니 숨차서 말도 안 나와 119에 신고도 못하겠어서 죽는 줄 알았다고 하십니다. 그러더니 할아버지는 술기 전 투여한 진정제 때문인지 편안해져서인지 간밤에 못잔 잠을 마저 청하기 시작하셨습니다.

 

사진_픽사베이

 

심장내과에 환자를 인계하고 중환자실 자리를 하나 잡았습니다. 마침 먼 곳에서 출발했던 따님이 응급실로 도착해 상황을 설명 드리고 함께 중환자실로 모셨습니다. 오후엔 심혈관 센터에서 추가 검사를 하며 원인을 찾기로 했다고 하네요.

 

할아버지 심장도 터져버릴 뻔 했지만 제 심장도 오랜만에 활활 타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래도 별 일 없어서 다행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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