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배문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자녀가 성장함에 따라, 부모의 역할은 지속적으로 변한다. 영아는 혼자 생존할 능력이 없으며, 부모의 돌봄에 전적으로 의지한다. 그들은 점차 걷는 법을 배우며 세상을 탐색하고, 언어를 통해 타인과 소통하게 되는데, 어린 시기의 아이는 여전히 부모의 돌봄과 훈육이 필요하다. 아이는 신체능력 및 사고능력이 자라면서 혼자 힘으로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아지고, 특히 청소년기를 거치며 부모로부터 독립적인 인격체로서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게 된다. 그리고 성인이 되면 부모는 자녀에게 수직적인 돌봄과 훈육을 제공하기보다는, 수평적인 지지와 조언을 제공한다. 이처럼 부모-자녀 관계는 변화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이가 자라 성인이 된 이후에도 부모가 자녀 삶의 여러 부분에 개입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자율성을 가진 독립적인 성향의 자녀는 부모님과 데면데면한 경향을 보이고, 부모님과 친밀한 자녀는 자율성이 부족한 경향을 보인다. 이러한 상황은 일종의 딜레마로 느껴지기도 한다. 연인과의 관계 역시 서로 친밀해지면서 점차 상대방에게서 통제/구속 받는 느낌을 경험하기도 한다. 과연 가족 사이에서 또 연인 사이에서, 친밀감과 자율성은 공존할 수 있을까?

 

사진_픽셀

 

최근 여러 연구들을 통해 친밀감과 자율성 둘 중 하나는 포기할 수밖에 없다는 개념이 오류라는 것이 밝혀지고 있다. 여러 뇌 과학자들이 신경생물학적 연구를 바탕으로 감정에 대해 저술한 책 <감정의 치유력>에서 다니엘 휴스는 친밀감과 자율성의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방법을 소개한다. 그것은 바로 '상호주관성'을 가지고 감정을 소통하는 것이다.

 

'상호주관성'이란 두 사람 사이나 어떤 집단에서, 한 사람의 주관적 경험이 다른 사람의 주관적 경험에 영향을 미치고 그 반대도 성립하는 대인관계 과정을 의미한다. 한 사람의 경험은 다른 사람에게 인식되고 이해되어 소중하게 받아들여진다. 이 때 사람들은 서로의 주관적 경험에 영향을 받으면서도 자기 경험의 통합성과 고유함을 희생하지 않는다. 상호주관적 경험은 전혀 위압적이지 않으며, 상대방을 지배하지 않는다.

 

타인과 주관적 경험을 소통하는 것은 생각의 공유, 의도의 공유, 감정의 공유를 포함한다. 감정을 공유하는 것은 생각이나 의도를 공유하는 것보다 더 어렵다. 만약 우리가 타인과 감정 경험을 성공적으로 공유한다면, 그 사건이 일어난 순간에 그 사람과 함께 있었던 것처럼 느껴지기에, 우리는 그 감정을 더 잘 조절할 수 있게 된다. 이런 과정을 통해 우리는 경험을 더 잘 성찰하고 의미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한 사람이 어떤 사건에 대해 감정 표현을 하고 이를 상대방이 받아들이면서 궁금해하고 공감하면, 알게 되는 사람뿐 아니라 알려지는 사람의 경험 역시 특별해지고 풍부해진다. 두 사람 모두 이 경험에 몰두하게 되고, 처음의 감정 표현과 이에 대한 상대의 반응은 서로 깊이 관여하는 공유된 감정 경험으로 변형되며 마침내 둘 모두를 변화시킨다.

 

사진_픽셀

 

특정 상황에서 경험하는 감정에 정답이 있을까? 같은 상황에 처한 경우에도 각 사람들은 서로 다른 생각과 다른 감정을 경험할 수 있다. 경험은 단순히 존재하는 것이며, 옳거나 그를 수 없다. 서로의 성장을 촉진하는 최고의 상호주관적 경험은 바로 타인의 경험을 조건 없이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러한 무조건적 수용의 분위기 속에서 사람들은 서로의 경험에 대해서 진심으로 궁금함을 갖게 되고, 상대의 내적 삶을 이해하게 된다. 이 때 타인에 대한 호기심은 그를 조종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더 잘 알기 위한 것이고, 가능하다면 사랑하기 위한 것이다.

 

의사소통에 있어 상호주관성이 부족할 때, 타인은 그저 대상이 되고 각자의 의도는 그 대상을 변화시켜 자신과 똑같이 경험하도록 만드는 것이 된다. 이 경우 그 의도는 타인의 내적 삶을 통제하고 복종하도록 강요하는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의사소통이라 말할 수 있을만한 것은 존재하지 않는데, 각자의 주관적 경험이 인식되거나 이해되거나 존중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호주관성은 두 명의 성인 사이에서의 관계뿐 아니라, 아직 훈육이나 통제가 필요한 아이와 부모의 관계에도 적용될 수 있다. 부모는 어린 아이의 모든 행동을 허용할 수 없다. 예를 들어 자녀가 옆집 아이를 막대로 때리려 할 때 부모는 어떻게 해야 할까? 상호주관성을 가지고 아이와 소통하는 것은 통제가 필요한 순간 부모는 아이의 행동에 한계를 설정할 뿐, 아이가 그런 행동을 하도록 만든 생각이나 느낌, 동기 자체를 막으려 하지 않는 것이다. 부모는 아이의 행동을 제한한 후, 수용과 호기심과 공감의 자세로 아이를 그런 행동으로 이끈 감정과 생각, 의도에 관심을 보인다. 아이는 부모의 이런 태도를 느낄 때 자신의 내면을 부모와 공유하게 되고, 부모의 경험이 자신의 경험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사진_픽사베이

 

만약 부모가 아이의 내면을 통제하고 억지로 변화시키려 한다면, 아이는 자신이 불완전하다고 느끼며 수치, 두려움, 슬픔, 분노 등을 느낄 수 있다. 나아가 방어적인 반응을 불러일으키며, 아이는 자신의 내면을 드러내는 것을 피할 수 있다. 아이가 자신의 내면을 감출수록, 부모는 아이의 내면이 성장하는데 영향을 주기 어렵다. 결과적으로 아이들은 부모의 폭넓은 경험과 애정 넘치는 가르침을 얻기 어려울 것이다.

 

상호주관적 태도는 한 사람이 백지 같은 상태에서 수동적으로 상대방의 경험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다. 다니엘 휴스는 상호주관적 태도의 특징으로 장난스러움(playfulness), 수용성(acceptance), 호기심(curiosity) 그리고 공감(empathy)을 제시했다. 장난스러움은 즐겁고 긍정적인 분위기를 만들어서 함께 있는 것과 소통하는 것을 즐길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수용성은 대화에 안전감을 부여하는 바탕이 된다. 대화의 목적이 평가받는 것이 아니라 경험을 탐색하고 소통하는 것임이 느껴질 때, 사람들은 자신의 주관적 경험을 편안하게 표현할 수 있다. 호기심은 타인의 행동을 넘어 그 밑에 있는 의도, 감정, 생각, 의미들에 대해 궁금해하는 적극적인 자세이다. 호기심이 성찰적 요소와 연관되어 있다면 공감은 정서적 요소와 연관되어 있으며, 성찰적 요소와 정서적 요소가 맞물릴 때 의사소통의 역량은 가장 강력해진다.

 

나와 다른 생각을, 나와 다른 의도를, 나와 다른 감정을, 나와 다른 경험을 조건 없이 받아들일 수 있을까? 가르치거나 통제하려는 태도를 내려놓고 수용하고 공감할 수 있을까? 기꺼이 그 사람의 경험에 영향을 받을 마음이 준비된 상태에서 호기심을 가지고 대화하는가? 그러한 상호주관성이야말로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친밀감과 자율성을 함께 누리는 길이다.

 

 

저작권자 © 정신의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