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권용석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폐경(menopause)은 정기적으로 이어지던 월경이 1년 이상 일어나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폐경 전후의 기간을 합쳐 폐경 이행기(perimenopausal period)라고도 합니다. 폐경은 인간에게만 생기는 독특한 현상으로, 왜 이런 현상이 생기는지에 대해서는 여러 가설이 있지만 아직도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습니다.


 
폐경 전후에 에스트로겐과 프로게스테론과 같은 호르몬의 감소가 생기고, 여기에 여러가지 요인이 작용하면 신체적, 그리고 심리적 어려움이 생길 수 있습니다. 가장 흔한 신체 증상은 홍조(hot flashes), 야간 발한(night sweats)과 같은 혈관운동 증상이며, 질 건조감도 잘 동반됩니다. 이러한 신체증상은 에스트로겐 대체요법(Estrogen Replacement Therapy)을 통해 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심리적 어려움은 폐경기 여성이 경험하고 있는 정신사회 환경과 깊은 관련이 있어, 그 종류와 심각성이 다양해 일관된 해결책을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여기에는 피로, 예민해짐, 무력감과 같은 변화에서부터 수면장애, 우울증, 불안장애와 같은 정신의학적 질환까지 포함됩니다.

 

분명 폐경 전후 시기는 우울증과 같은 정신적 문제에 취약한 시기입니다. 하지만 모든 폐경기 여성이 정신적 문제를 겪지 않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대부분 정신적 문제가 크지 않으며, 잘 대처하고 있고, 이와 관련된 연구 결과도 일정하지 않습니다. 여성의 진화(Ancient bodies, modern loves) 저자인 웬다 트레바탄은 그녀의 책에서 폐경이 모든 여성이 겪는 자연스러운 현상임에도, 이를 치료가 필요한 질병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나타나는 것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물론 누구나 겪는 시기이기 때문에 이를 받아들이고 참는다고 어려움이 줄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에 대해 정확히 알고, 적절한 시기에 의학적 도움을 받는다면 폐경 자체를 "치료"하는 것이 아닌 이 시기에 “생길 수 있는 어려움"을 잘 극복하여 일상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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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폐경기에 우울증이 의심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번째, 가벼운 증상이라 해서 무시해서는 안됩니다. 우울증(Depression)은 우울한 증상(Depressive symptoms)과는 다릅니다. 복잡한 진단기준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에게 맡기고, 가장 큰 차이점 하나만 기억하면 됩니다. 우울한 증상은 평소와 다른 불편감이 분명히 있지만, 기능 수행(직업기능, 대인관계, 일상생활 등)에 영향을 덜 끼칩니다. 하지만 우울증은 기능 수행에 영향을 미쳐 삶의 질을 떨어뜨린다는 것이 가장 큰 차이입니다.

 

여러 증상 중 불면증은 폐경 전후 여성에게서 흔히 나타나는 심리적 문제로 특히 눈여겨보아야 합니다. 아직 어떻게 폐경이 불면증을 일으키는 지 명확하게 알려지지 않았지만, 혈관운동 증상(홍조, 발한)과 관련이 있는데, 이 경우에는 자다가 자주 깨는 형태를 보입니다. 그래서 수면의 질이 떨어져 피로감을 유발하고, 주의력 저하로 낮생활에 영향을 미칩니다. 그런데 우울증에서의 불면증은 혈관운동성 불면증과 달리 잠드는 것이 어렵고, 새벽에 일찍 깨어 더 이상 잠을 자지 못하는 것에서 다릅니다. 우울증이 없는 불면증도 적절한 의학적 개입이 없다면, 우울증을 유발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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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로, 우울증의 고위험군에 해당한다면 적극적인 주의와 관리가 필요합니다. 앞서 이야기한 것과 같이 폐경기 전후는 우울증이 잘 생기는 시기임에는 분명하지만 모든 여성에서 우울증이 생기지 않습니다. 여기에는 우울증 발생에 관련된 위험요인(risk factors)이란 개념이 있는데, 이 중 해당되는 것이 있다면 주의 깊게 살펴 보는 것이 좋습니다.

 

위험요인

폐경기 이전에 우울증을 포함한 기분장애를 경험했던 경우
가족 중에 폐경기 우울증(혹은 우울증)을 가졌던 경우
평소에도 불면증이 자주 생겼던 경우
경제적, 혹은 직업적 어려움이 지속되는 경우
일상 생활에서 과도한 스트레스가 지속되는 경우
폐경 전 월경주기에 맞추어 기분증상이 심했던 경우
혈관운동 증상이 오래 지속되는 경우 등

 

또 이런 위험요인을 가지고 있는 경우에는 증상이 생기기 전에 보다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자세로 삶을 산다면 우울증 예방할 수도 있다는 보고도 있습니다. 여기에는 사람들과 조화로운 관계를 유지하기, 긍정적 태도 갖기, 건강한 생활 습관 유지하기, 호르몬 대체요법 등과 같은 것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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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너무 급하게 그리고 혼자서 해결하려는 마음을 가져서는 안됩니다. 폐경기 자체도 길게는 수 년 이상 지속되기도 하며, 여러 증상이 생기면 생각만큼 이 시기가 금방 지나가지 않는다고 느끼게 됩니다. 더구나 우울증의 경우 성공적인 치료를 하더라도 재발할 수 있습니다. 예방이나 치료 모두 긴 시각으로 접근해야 일찍 지치거나 좌절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거기에 더 중요한 것은 이 모든 것을 혼자 감당하려는 생각도 좋다고 볼 수 없습니다. 가족, 연인, 친구, 직장동료 등과 함께 이 시기의 어려움에 대해 나누고, 공감하고, 함께 극복하려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이 것은 폐경기를 겪는 본인 뿐 아니라 그 주변인들에게도 해당합니다. 가족 중에, 혹은 가까운 사람이 폐경기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 그 어려움을 인정하고 잘 버티도록 지지대 역할을 해준다면 분명히 이 시기의 어려움을 잘 극복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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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치료를 받기로 결정했다면 적극적으로 치료에 임해야 합니다. 정신건강의학적 평가 결과 우울증이 확인되었다면, 약물치료, 정신치료, 인지행동치료 등 여러 치료에 적극적으로 임하는 것이 어려움을 극복하는데 중요합니다. 항우울제는 우울증의 1차 치료로 권고되며, 여러 종류의 약물이 있는데 단순히 치료 효과만 가지고 약을 고르지 않습니다. 동반된 폐경기 신체 증상에도 효과가 있고, 생길 수 있는 부작용을 고려해 충분한 평가 후 나에게 잘 맞는 약제를 고르게 됩니다. 증상이 나아지더라도 보통 수 개월 정도 유지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호르몬 대체 요법은 일부 신체증상을 줄여 주기 때문에 함께 사용하는 것도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폐경기는 피할 수 없는 시기이지만, 막연하게 두려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오히려 이 시기를 긍정적으로 경험하고 잘 넘기는 여성이 많습니다. 불편감이 생기더라도 할 수 있는 것은 다 하면서 버티다 보면, 어느새 자연스럽게 폐경 이후의 삶을 맞이하고, 변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참고
Hickey et al. Menopuase, Vol. 24, No. 6, 2017
Vousoura et al. Menopause, Vol. 22, No. 10, 2015
Li et al. Medicine (2016) 95:32
A.Hartz et al. Sleep Medicine 14(2013) 71-78 M.Terauhi et al. Maturitas 72(2012) 61-65



글쓴이_권용석

참정신건강의학과의원 원장
성균관대학교 강북삼성병원 정신과 수료
가천대학교 의과대학 외래교수
근로복지공단 정신과 판정심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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