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진료대기자 화면에 17세 남자 환자가 올라와 있었습니다. 근처 고등학교 축구부 학생들이 햄스트링(허벅지뒷근육) 손상이나 발목염좌로 자주 방문하기 때문에 ‘이번에도 또 누가 다쳤나보구나‘ 했지요. 지금까지 봐왔던 학생들보다 왜소했지만 심하게 찡그린 얼굴로 오른쪽 팔을 감싸고 들어와서 어깨가 다쳤나 생각했습니다.

 

“혹시 축구부? 오른쪽 어깨 다쳐서 오신거에요?”

“아니요, 오른쪽 어깨랑 팔이 옷만 스쳐도 너무 아프고 피부에 뭐가 많이 났어요”

 

옷을 벗으며 보여준 학생의 어깨와 위팔에는 발진과 몇 개씩 모여있는 물집이 있었습니다. 오른쪽 경추 5번, 6번 신경분절을 따라서 생긴 전형적인 피부병변, 5일 전부터 좀 쑤시기만 하다가 통증이 심해지면서 어제 발진을 발견했다고 말하는 것으로 보아 전형적인 대상포진이었습니다.

 

사진_픽사베이

 

“요새 많이 아프거나 피곤했어요? 혹시 앓고 있는 병이 있나요?”

“병은 없는데요, 늦게까지 학원 다니고 시험기간이라 많이 피곤해요”

 

갑자기 마음이 짠했습니다. 학교, 학원을 다니면서 늦게까지 공부에 매달리는 일상이 얼마나 힘들면 10대가 대상포진에 걸릴까… 10년 전 대학병원에 근무할 때만 해도 20-30대가 대상포진에 걸려서 오면 기본적으로 혈액검사에 결핵, 매독, 에이즈 검사가 추가되었습니다. 면역력이 매우 약해질 수 있는 질환이 없으면 젊은 사람이 대상포진에 걸릴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던 때였지요.

 

대상포진은 최근 환자 수의 급격한 증가로 주목 받는 질환입니다. 5명중 1명은 일생 중 한 번은 감염될 수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과거에는 나이가 많은 사람에게만 생기는 병으로 생각했지만 최근 한 조사에서는 10~40대 환자 수가 50%정도 증가했다고 보고되었습니다.

 

대상포진은 수두-대상포진 바이러스(Varicella-zoster virus)가 척수의 신경절에 오랫동안 숨죽이고 있다가 갑자기 활동을 시작하며 생기는 병입니다. 바이러스가 활성화되면 신경 분절을 따라 통증을 초래하고 피부 병변을 유발합니다. 대상포진의 첫 증상은 피부에 발진이 생기기 3~7일 전에 나타나지만, 이때는 대상포진을 의심하기가 어렵습니다. 열감, 피로, 두통 같은 다양한 증상이 나타나 감기 몸살로 생각하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지요. 환자의 70~80%는 피부 발진 몇 일 전부터 한쪽에만 간질거리는 느낌, 얼얼하거나 저린 감각 등이 생기며, 심한 통증을 경험하기도 합니다. 피부 병변이 생기기 전의 이런 증상을 전구증상이라고 하는데 길게는 15~30일까지도 나타날 수 있고, 이런 경우에는 대상포진인지 예측하기가 더 어렵습니다.       

 

피부 병변은 바이러스가 침범한 지각신경 분절을 따라 띠 모양으로 나타나는 특징이 있습니다. 또한 척추를 중심으로 봤을 때 중앙을 넘지 않고 몸 한쪽에 나타납니다. 양측에 같이 생기는 대상포진은 1% 미만에 불과합니다. 대상포진은 전신에 다 생길 수 있지만 약 50~70%가 몸통(흉추분절)에 생깁니다. 머리와 목/팔부위(경추분절)에 생기는 경우가 20%, 허리/다리부위(요추분절) 15%, 엉덩이부위(천추분절) 5% 정도로 보고됩니다. 대상포진이 재발할 때 같은 부위에 다시 생기는 경우가 50% 정도입니다.

 

처음에는 몇 개의 발진이 한 곳에 옹기종기 모여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그냥 넘겨버리기 쉽습니다. 점차 범위가 넓어지고 12~24 시간 뒤에는 발진이 수포가 되고, 3일째쯤 뒤엔 수포에 고름이 차기도 합니다. 대개 7~10일이 지나면 딱지가 생기기 시작합니다. 평균 피부 병변 기간은 약 2~3주이고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좋아집니다. 추가 감염을 예방하기 위한 상처 관리만 잘하시면 되겠습니다.

 

사진_저자

 

통증은 가볍게 시작하여 점차 심해집니다. 24시간 계속될 수도 있고, 간헐적으로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옷에 스치거나 바람이 닿기만 해도 비정상적으로 통증을 느끼는 <이질통>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사진_픽사베이

 

대상포진은 빨리 치료하면 회복에 큰 문제가 없습니다. 대상포진일 때는 신경 손상을 최소화하기 위해 발진이 생긴 뒤 72시간 내에 빨리 항바이러스제를 투약할 것을 권합니다. 약한 통증도 참지 말고 초기부터 강력히 다스려야 대표적인 합병증인 <대상포진 후 신경통>을 예방할 수 있습니다. 바이러스가 신경 손상을 일으키지만, 통증 자체도 신경 손상을 일으키기 때문입니다. 통증은 비스테로이드성소염제, 마약성 진통제, 항경련제, 항우울제 같은 약으로 다스립니다. 약물치료로 충분한 효과를 얻지 못할 때는 통증의 만성화를 막기 위해 신경주사치료를 할 것을 권해드립니다.

 

눈에 보이는 피부병변에 더 신경을 쓰고 통증을 무시하다가 나중에 더 오랜 시간 치료로 고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나이가 많거나 면역억제치료를 받는 환자, 암환자, 당뇨병 환자같이 합병증 발생 위험이 큰 환자는 특히 초기 통증 조절이 중요합니다. 가려움이나 벌레가 기어가는 것 같은 이상감각도 완전히 없어지도록 치료해야 합니다.

 

다음에는 대상포진의 합병증인 대상포진 후 신경통과 대상포진 예방접종에 대해서도 알려드리겠습니다. 내 몸을 제일 아껴줄 수 있는 사람은 바로 나 자신이라는 걸 잊지 마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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