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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 죽음공포증(thanatophobia, death anxiety)
허규형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 승인 2017.10.19 07:26

[정신의학신문 : 허규형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B씨의 사연:

 

저는 25살 취업준비중인 여대생입니다. 다름이 아니라 이런저런 고민 걱정이 있어서 제 얘기를 방송에서 다뤄주셨으면 해서 메일 보내게 됐어요.

 

저는 여태껏 저 스스로도 밝은 성격이라고 생각하고 살아왔고, 친구들 사이에서도 재밌고 웃긴 친구로 여겨지고는 했어요. 가끔 감정기복이 있긴 했지만 그래도 한 달에 한번 생리 전 증후군으로 호르몬 때문에 그런 거라 생각했어요.

 

그런데 요즘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아 갑자기 많이 우울해지고 힘들어졌어요. 1년 넘게 취업준비를하면서 혼자 지내는 시간도 많아졌고 자연스레 사람 만나는 일이 적어지면서 하루에 몇 마디 안하고 지나간 적도 많고요. 그러면서 점점 제 성격도 우울해지고 사고방식도 부정적이게 바뀌게 되더라고요. 그러던 와중에 할머니께서 갑자기 치매가 급성으로 오셔서 요양원에 가게 되셨어요. 그래서 할머니를 뵈러 요양원에 갔는데 편찮으신 분들이 많으셨어요.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죽음에 대해서 생각하게 됐는데, 제가 생각하기에 제 머릿속에 죽음이 맴도는 건 이것이 제일 큰 계기 같아요. 그 이후로 모든 사람은 죽고 결국 나도 죽게 될 텐데 삶이 너무 허무하게 느껴지고 죽는다는 게 너무 두렵게 다가와서 계속해서 생각나고 그래서 너무 괴롭습니다.

 

이렇게 되기 전에도 물론 죽음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은 있었어요. 그건 진리이고 내가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부분이라고 생각했었고 잠시 그런 생각을 한 뒤 별로 신경 쓰지 않았었죠. 하지만 지금은 tv를 보다가도 문득 생각나고 거리에 지나가는 사람을 볼 때도 부모님을 볼 때도 자꾸만 죽음에 대한 생각이 떠올라서 정신과 상담이라도 받아봐야 하나 싶어요. 이전 방송에서도 다뤄주셨지만 정신과 상담 이력이 취업에 전혀 피해가 가지 않는다고 하셨는데 그 방송을 듣기 전이기도 했고 그래도 왠지 불이익이 있을까 싶어서 선뜻 병원에 가진 못했어요. 당장 머릿속에 이 생각을 떨쳐 버리고 싶어서 운동도 시작하고 공부 장소도 사람 많은 학교도서관으로 옮기면서 정신 없이 지내보려고 하고 있어요. 조금은 그 생각에 몰두하는 데에 방해가 되는지 전보다는 덜해졌지만 아직 그래도 이렇게 되기 전처럼은 안 되는 것 같아요. 계속적으로 문득 생각나서 두렵고 자꾸 비관적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되고 사는 게 허무하게 느껴지고 그렇거든요.

 

해결 방법이 있을까 싶어서 인터넷 검색도 많이 해봤는데 전문적인 답변이 아니라 신뢰하기도 어렵고 해서 이렇게 사연 보냅니다. 저 말고도 죽음공포증으로 힘들어하는 분들이 꽤 있더라고요. 꼭 한번 다뤄주시면 그것만으로도 위로가 될 것 같아요.

 

사진_픽사베이

 

안녕하세요, 뇌부자들입니다.

저희 모두 사연을 읽으면서, 죽음에 관련한 불안과 여러 생각들 때문에 지치고 괴로우셨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운동도 시작하고 공부 장소도 바꿔보시는 등 여러 노력을 해보셨지만 아직 힘드시다니 더욱 안타깝습니다.

 

죽음에 대한 공포에 관련해서는 여러 가지 설명들이 있는데요. 죽음에 대한 생각이 불안의 근본적인 원인일 때 죽음공포증(thanatophobia, death anxiety)이라고 합니다. 죽음공포증은 특정공포증의 하나로 누구나 죽음에 대해서 두려워하고 걱정하지만 정도가 지나쳐서 일상생활에 지장을 줄 때 진단하게 됩니다.

 

힘들고 스트레스 받는 상황에서 자아의 기능이 약해지고 신체적, 심리적 문제가 많아질 때 죽음에 대한 불안, 공포가 커지게 됩니다. 프로이트는 죽음을 경험해 본 사람은 없기 때문에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은 죽음 자체를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해소되지 않은 어린 시절의 갈등에 대한 두려움이 표현되는 것이라고 했는데요. 어린 시절부터 가지고 있던 어떤 힘든 기억이 죽음에 대해 걱정하고 몰두하게 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프로이트는 죽음에 대한 공포가 사실 그 자체보다 무의식에 억눌려 있는 다른 무언가에 관한 내적 갈등과 상처의 변형된 표현이라고 생각했고, 죽음에 대한 공포는 사실 표현되는 정도만 다를 뿐 누구나 갖고 있어서 이것이 종교를 포함한 인간의 여러 사유/행위의 근간을 이루는 감정이라고 본 학자도 있습니다. 혹시 죽음에 관한 이런 생각, 감정들이 언제부터인지 모를 만큼 아주 이전부터 계속돼 왔다면 이런 죽음에 관한 생각에 취약한, 일종의 공포증(타나토포비아라고도 하죠)을 갖고 계신 게 아닐까 고려할 수도 있겠습니다.

 

사진_픽셀

 

그렇지만 말씀하신 최근의 여러 가지 힘든 변화들-이전의 밝은 성격과 다르게 우울한 감정과 부정적 사고에 빠지게 되고, 죽음에 관련한 침습적 사고(떠올리지 않아도 자꾸만 떠오르는 생각들을 뜻해요), 삶에 대한 허무감이 생겨나 일상 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지금 상태는 우선적으로 우울 장애가 아닌지 걱정이 됩니다. 우리의 기분과 생각, 행동은 서로 영향을 주고 받기 때문에, 우울감이 심해지면 부정적 생각이 더 많이 들고, 이전에 잘 해오던 활동도 의욕이 나지 않고 위축될 수 있어요. 혹시 이외에도 평소에 좋아했던 취미활동에서 이전만큼의 즐거움이 느껴지지 않거나, 불면이나 불규칙한 수면 주기, 반복적인 자책과 자괴감 등이 단순히 며칠이 아닌 한 달 이상 수개월 계속되어 오신 상태라면 우울증을 더 강하게 의심을 해봐야 합니다.

 

물론 우울증 수준까지는 아니더라도 1년 넘게 취업준비를 하는 스트레스 상황에서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아 마음이 지친 상태로 할머님이 계신 요양원에 가서 본 광경이 일종의 충격이 되어 겪는 일시적인 증상일 수도 있어요. 이런 상황을 겪는다면 누구라도 일시적으로 이런 고통을 겪을 수도 있을 테니까요. 이런 상태를 적응장애라고 부르기도 하며, 반드시 치료가 필요하지는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작년 이후부터 몇 달 이상의 기간 동안 고생하신 것을 생각하면 역시 우울장애 쪽에 가깝고, 여기에 대한 치료가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적응장애 수준이라고 판단되는 경우에는 본격적인 치료에 앞서 휴식과 함께 유산소 운동, 생활 환경의 변화 등을 권유하기도 하는데, 이러한 시도를 이미 해보셨는데도 아직 힘든 상태이시기 때문이기도 하고요.

 

우울증을 겪는 분들 중에 본인이나 가까운 사람의 죽음을 포함한 온갖 재앙적 사고들과 삶에 대한 허무감이 내가 원하지 않게 계속해서 머라 속에 떠올라 괴로움을 호소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기분의 건강을 되찾아가면서 이러한 생각들은 자연스레 줄어들게 됩니다. 이렇게 우울증이 나타난 데에는 최근의 지속된 스트레스가 계기가 됐을 수 있고, 그 외에도 타고난 소인과 호르몬의 변화, 불균형에 의한 반응 등등 여러 가지 원인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의무기록에 대한 걱정도 말씀을 해 주셨는데 단순 상담이라면 의료 기록으로도 남지 않으니, 자세하고 정확한 평가를 위해서 가까운 정신과 의원을 찾아 상의해 보시기를 권유 드려요.

 

사진_픽셀

 

장기간의 우울감, 또 말씀하신 여러가지 전에 없던 힘든 점들에 대해서는 약물 치료를 받아 보시는 것이 가장 빠르고 확실한 치료입니다. 면담 평가를 통해서 장기적으로 도움이 되리라 생각되는 분들에게 별도의 면담 치료를 함께 권유하기도 합니다. 명상의 치료적인 요소를 정신과적인 치료법으로 정립한 ‘마음챙김치료', 우울감을 일으키는 부정적 믿음을 찾고 교정하는 인지치료도 많이 시행되고 있습니다. 이를 포함해서 우울증의 비약물적 치료에 관해 시중의 책들이나 인터넷에 많은 정보가 있으니 찾아보시고, 시도해 보셔도 좋겠습니다. 그런데 위에 말씀드렸 듯, 급한 불에는 일단 소화기가 필요한 것처럼, 일상 생활이 힘들고 집중이 어려울 만큼 마음의 고통이 심한 상태라면 약물 치료가 가장 우선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여기까지가 저희가 드리는 조언입니다. 지금 고민에 대한 명쾌한 해결책을 드리지 못한 것 같아 안타깝지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랄게요.

 

하루 빨리 밝은 마음을 되찾으실 수 있게 되기를 기원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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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규형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brainrich6@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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