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김정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마음이 음식 챙기느라 바쁜 누나에게"

 

이번 명절에 보니까 마음이가 좋아하는 음식이 많아졌더라?!
마음이가 맛있게 먹는 모습 보니 너무 흐뭇하더라고.
누나는 하루종일 마음이 뭐 먹일까 고민 많이 하던데!
그래서 오늘은 내가 맛있는 그림책을 준비했어.

 

사진_생쥐와 딸기와 배고픈 큰 곰 (저자 돈우드 / 문진미디어)

 

표지를 보면 알겠지만, 이 그림책은 딸기에 관한 책이야. 하지만 그냥 딸기는 아니야. 너무 맛있는 딸기라, 배고픈 큰 곰이 빼앗아 먹으러 올 정도의 딸기, 굉장하지? 

그림책 속 등장인물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아.
하지만 그림만으로도 생각과 감정을 다 알 수 있어.
그러면 이 책을 어떻게 읽어 주냐고?
이 그림책은 책을 읽는 독자가, 그림책 속의 생쥐에게 직접 말을 거는 방식이야.
그림책 속의 생쥐를 보고 “생쥐야, 안녕? 너 지금 뭐하니?” 이렇게.
좀 어색하지 않냐고?
신기하게도 내가 하는 말을 생쥐가 정말 듣고 반응하는 것처럼 그림이 그려져 있어서,
자연스럽게 내가 그림책 속 인물인 것 처럼 느껴져. 

이런 구조 뿐만 아니라, 이야기 흐름도 신선해.
맛있는 딸기를 가지고 있는 생쥐에게, 우리가 말을 거는 거야. “생쥐야 그 딸기 정말 맛있겠다.” 하면서.
그런데 사람이 다 그렇잖아. 맛있는걸 보면 살짝 맛은 좀 보고 싶잖아?
그래서 우리가 생쥐에게 작업을 하기 시작해.

"그런데 너 그거 아니? 배고픈 큰 곰도 딸기를 좋아하는데,
이 딸기를 먹으러 올지도 모르겠다"

 

이런 식으로 능글맞게.
불쌍한 생쥐는 그 말을 철썩 같이 믿어.
그래서 딸기를 숨기기도 하고, 꽁꽁 묶어놓기도 하고,
딸기에게 안경을 씌우고 코와 콧수염을 붙여서 왕코 아저씨처럼 변장을 시키기도 해.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그렇게 하면 큰 곰이 딸기를 못 찾을 것 같아.” 라고 해버리면,
생쥐가 안심하고 나중에 혼자 딸기를 먹으려고 할 거 아냐.
우리도 맛을 좀 보고 싶은데. 그치?
그래서 우리는 그런 방법은 안 통할 것 같다고 계속 말해서 생쥐가 점점 포기하게 만들어.
이 생쥐의 귀여운 꼬리가 힘없이 축 처져 버릴 때 까지.
바로 그 때 속삭이는 거야.


“사실 방법이 하나 있는데... 딸기를 나랑 나눠 먹어서 없애버리자.” 이렇게.


이렇게 쓰다 보니깐 이거 정말 나쁜 책이다. 그치?
우리가 생쥐에게 큰 곰이 딸기를 뺏으러 온다고 위협하면서 잔뜩 괴롭힌 다음,
그 딸기를 얻어내서 먹어버리는 얘기잖아.
사실 곰은 그림책에 나오지도 않는다구!
‘생쥐와 딸기와 배고픈 마음이랑 엄마’가 이 책의 진짜 제목인거야.

 

사진_픽사베이

 

이렇게 사악한 이야기를 마음이에게 추천하는 이유는 두 가지야.
    
첫 번째, 마음이가 좋아하는 것은 물론이고, 누나도 즐거워 할 테니까.
마음이와 같이 그림책으로 놀 때, 누나도 즐겁다면 훨씬 더 잘 놀아줄 수 있어.
누나가 즐거워야 놀아줄 힘이 나니깐.
그림책이 줄 수 있는 메시지보다, 그게 더 중요한 거야.
그래서 그림책을 고를 때, “아, 내가 이 책으로 마음이와 즐겁게 놀 수 있겠다.” 싶은 책을 고르면 돼.
사실 그림책을 고르다 보면 지식적인 내용을 전달하는 책이나, 누나가 마음이에게 하고 싶은 말을 대신해주는 책에 어쩔 수 없이 손이 가기 쉬워.
그런데 마음이가 그 내용을 이해하기엔 아직 어려.
게다가 마음이에게 흥미 없는 내용을 그림책을 통해 무리하게 전달하려고 하면,
마음이도 뭔가 불편한 걸 느껴. 그러면 이렇게 될 수도 있어.

엄마와 책을 같이 보는 건 불편해, 책은 좀 불편한 건가봐.

 

이렇게 불편함이라는 감정이 책이랑 연결 되는 거야.
이건 우리가 원하는 게 아니잖아.
그러니까, 그림책을 고를 때 누나가 마음이와 즐겁게 놀아줄 수 있는 걸 골라.
부담 갖지 마. 누나가 잘하는 거잖아.

생쥐에게 딸기를 뺏어 먹는 흉내를 '냠냠' 내보고, 누나 딸기도 마음이에게 하나 뺏겨보고,
마음이 딸기도 누나가 하나 빼앗아 먹고 하면, 즐겁게 하루를 보낼 수 있을 거야.
요즘 마음이가 먹는 거에 욕심을 부린다며?
이렇게 놀다보면 나눠먹는 것도 웃으면서 배울 수 있을 거야.

 

사진_픽사베이

 

혹시나 해서 말하는데, 누나만 즐겁게 놀 수 있는 책을 고르라는 건 아니야.
그러니까, ‘세일러 문’은 아직 마음이가 이해 못 해.
그건 누나랑 내가 봐야 재미있는 거야. 알았지?    
    
두 번째, 그림책 속의 딸기가 정말 맛있게 생겨서. 이건 더 설명할 필요 없겠지?
진짜 딸기를 사진을 찍어놔도, 이 그림책 딸기보다 맛있게 느껴질 수는 없을 것 같아.
빼앗아 먹는 것 같아서 더 맛있게 느껴지는 건가? 조금 헷갈리네.
아무튼 사진 기술이 아무리 발달해도 그림은 나름의 가치가 있다는 것을,
이 그림책을 보면서 느낄 수 있어.

물론 내가 딸기를 좋아하기는 해.
하지만 그런 것은 철저히 배제하고 객관적으로 이 책을 골랐다는 걸 알아줘.
    
이렇게 편지 쓰다 보니깐 시간 참 잘 간다.
오늘은 내가 말이 너무 많았던 것 같아. 밤인데 배가 고프네.
이 시간이면 누나랑 마음이는 꿈나라에 있겠지. 잘 자고, 다음에 연락할게.

추신: 안타깝게도 이 책은 절판이 됐네. 그래도 중고서점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으니깐 발품을 좀 팔아야 할 것 같아.


2017.10.12

마음이 삼촌 겸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김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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