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김주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이코드라마는 역할 놀이(role playing)를 도구로 하여 진행하는 일종의 즉흥 연극입니다. 사이코드라마의 시조인 모레노(J. L. Moreno)가 제창한 근본이념인 자발성과 즉흥성 그리고 창조성의 원리는 여전히 유효합니다. 이를 어떻게 구현하느냐에 대한 방법론적인 문제에 다양한 의견이 현 시대에서는 공존하고 있습니다.

 

무대 위에서 주인공과 상대 역할의 보조자아가 의자에 앉아서 대화를 나누는 아주 기본적인 장면에서 죽은 자와 여행을 떠나는 마술적인 장면까지 매우 넓은 스펙트럼의 장면 설정이 사이코드라마에서는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이러한 사이코드라마 장면 연출, 즉 디렉팅(Directing)에는 어떤 원칙이 있을까요?

모레노의 부인이자 현대적 사이코드라마의 체계를 완성한 분이신 제르카 모레노 여사(Zerka Moreno)가 설명한 사이코드라마의 기본 원칙에 대해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사진_Zerka Moreno (출처_moreno museum association)

 

우선 사이코드라마의 기본 구조입니다, 사이코드라마는 워엄업(준비) – 액팅 아웃(행위화) – 쉐어링(나눔)의 세 구조로 이루어져있으며, 이들 중 어느 하나가 빠져도 사이코드라마라고 부를 수 없습니다. 자발성의 준비와 도약의 과정으로 사이코드라마를 보면, 이러한 흐름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방향입니다. 집단과 디렉터 그리고 주인공이 서서히 자발성을 끌어올리고 다가올 행위화 작업을 준비합니다. 행위 갈망(action hunger)이 높아진 주인공이 무대 위에서 자신의 삶을 연기합니다. 디렉터와 관객들은 주인공의 이야기에 공명(resonance)하면서 극에 참여합니다. 주인공의 실제 현실과 잉여 현실을 함께 체험하고 극은 마무리됩니다. 행위화 단계가 끝나면, 이제 나눔 단계로 들어갑니다. 주인공의 이야기에 공감한 관객이 자신의 이야기를 주인공과 타 관객들에게 전해주는 소중한 시간입니다. 이렇게 진행되면 주인공과 관객들은 서로 공평하게 되고 서로 삶이 연결되어지게 됩니다.

 

사이코드라마는 일종의 즉흥 연극입니다. 잘 짜여진 각본도 훈련된 배우도 없습니다. 오직 공연 당일 모인 괸객들의 자발성과 이를 밑바탕으로 한 행위화 작업 그리고 공감적 나눔만이 사이코드라마를 ‘사이코드라마’답게 만들 수 있습니다. 보통 사람의 평범한 이야기가 그 날의 주제가 되기 때문에 사이코드라마 디렉터는 이것을 무대화시키는 작업에 능숙해야합니다. 주인공의 마음을 눈에 보이는 장면으로 변환시키는 작업이 바로 사이코드라마 디렉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이코드라마는 주변에서 시작하여 중심으로 향하여 진행되고 다시 주변으로 나오는 흐름으로 움직입니다. 이는 주인공의 현재에서 시작하여 가까운 과거로 그리고 보다 먼 과거 즉 핵심 갈등이 이루진 시기로 진행되는 흐름을 뜻하기 도합니다. 시간의 흐름 속에서 필요한 장면을 설정하고 행위화하는 작업을 자연스레 진행합니다.

 

사진_픽셀

 

수주 전에 진행된 사이코드라마 공연에서 실제로 진행된 예로 설명해 드리면, 다음과 같습니다. ‘사람들 사이에서 자신의 위치를 정할 수 없다’는 고민을 가진 20대 여자분이 주인공이 되셨습니다. 극의 시작은 최근에 일어난 상황을 재연하는 것이었습니다. 직장에서 주인공은 어느 그룹에도 끼지 못하는 신세였습니다. 이쪽 동료들과도 저쪽 동료들과도 편하게 어울리지 못하고 왕따 아닌 왕따 신세인 것처럼 보였습니다. 무대 위에서 주인공은 양편으로 갈라져 있는 회사 동료들 집단에 속하지 못하고 혼자서 중앙에 서있었습니다. 주인공의 외로움이 관객들에게 전달되었습니다.

 

이러한 주인공의 상황과 유사한 일이 과거에도 있었는지를 물어보았습니다. 주인공은 어린 시절의 가족 상황을 연기하였습니다. 늘 싸우시던 부모님 사이에서 외동딸인 주인공은 엄마의 편도, 아빠의 편도 들 수가 없었습니다. 무서운 아빠와 연약한 엄마 사이에서 주인공은 매우 독립적인(?) 아이로 성장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여섯 살 꼬마 아가씨가 엄마를 열심히 챙깁니다. 자기 마음은 억누른 채, 소중한 엄마를 위해서 노력하는 주인공의 모습이 무척 안쓰러워보였습니다. 어려서부터 자신의 마음(감정)을 표현하기보다 엄마의 감정을 수용하고 도와주는 역할에 익숙해진 주인공은 마땅히 표현할 수 있는 자신의 말조차 표현하기 매우 힘들어하였습니다. 이중자아(double)의 도움을 통해서 주인공의 마음을 엄마에게 전달하도록 힘을 실어주었습니다. 이제 극은 핵심으로 들어갑니다. 엄마에게 적절히 받지 못했던 관심과 사랑을 충분히 받는 시간을 가상의 잉여현실(surplus reality) 장면으로 진행하였습니다. 딸을 사랑하는 적극적인 엄마는 주인공을 품에 안아주었습니다. 엄마의 품에 안긴 딸은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이렇게 극의 줄거리를 정리해보니, 무척 단순한 구조의 흐름이었다는 생각이듭니다. 하지만 실제 극에 참여해보면, 글로 정리한 것보다 훨씬 길고 복잡한 내용이라는 것을 체험하실 수 있을 겁니다. 주인공과 디렉터가 극의 진행도중 자연스레 대화를 이어갑니다. 주인공에게 궁금한 질문을 던지기도 하고 주인공의 감정을 관객들에게 전달하고자하는 의도로 대화를 이어나가기도 합니다. 관객을 보조자아(auxiliary ego) 역할로 선택하도록 주인공에게 기회를 제공합니다. 관객은 언제든지 극에 투입될 수 있으므로 긴장을 놓지 못하고 극에 몰입하게 됩니다.

 

사진_픽셀

 

사이코드라마 디렉터는 늘 주인공과 호흡합니다. 주인공의 바로 옆에서 또는 주인공의 얼굴을 바라볼 수 있는 맞은편에서 주인공의 표정과 몸짓에서 나오는 수많은 신호들을 적시에 받아들이기 위해 준비되어 있어야합니다. 능숙한 디렉터는 숙련된 이중자아(double)이기도 합니다. 주인공의 감정을 보다 명료하게 표현시켜주며 주인공의 작은 감정을 보다 크게 증폭시키는 매우 중요한 역할이 이중자아 즉 분신(double) 역할입니다. 디렉터가 극중에서 직접 구체적인 역할로 참여하는 유일한 통로가 바로 분신이며, 그렇기 때문에 디렉터는 그 역할에 대해 보다 신중한 자세를 가져야합니다. 디렉터가 주인공에게 마치 정답을 가르쳐주고 있는 태도로 느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이코드라마에서는 디렉터가 ‘어쩔 수 없이’ 매우 강력한 위치에 머물게 됩니다. 공연의 시작부터 끝까지 전과정을 이끌고 책임져야 합니다. 주인공의 이야기를 역할 연기(role playing)를 포함한 장면으로 무대 위에서 진행되도록 연출해야 합니다. 그리고 주인공과 관객이 서로 공감하며 연결되도록 디렉터는 시종일관 노력해야 합니다. 이러한 작업들이 조화롭게 이루어지면 그날의 사이코드라마는 성공적으로 마무리될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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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현의 Psychodrama] 사이코드라마 만들기 - 행위화(Enactment) 1

[김주현의 Psychodrama] 사이코드라마 만들기 - 행위화(Enactment) 2

 

 

필자 약력

사이코드라마 수퍼바이저, 정신과 전문의

現 솔빛정신건강의학과의원 및 한국에니어드라마연구원 원장

現 한국임상예술학회 회장 및 現 한국임상사이코드라마연구소 대표

現 은평구민과 함께 하는 심리극 월간 공연 ' 나를 찾아떠나는 여행' 연출

前 '심리극회 거울과 가면' 및 'ACT심리극연구소' 대표

EBS '가족이 달라졌어요', MBC '사주후愛', 한국직업방송 '新 직업의 발견' 등 다수 참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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