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_픽사베이


모두 퇴근하였을 것 같은데, 불이 켜져 있는 빌딩을 보면 생각나는 환자분이 있습니다.

2년 정도 된 것 같습니다. 월요일 아침 일찍 유방통을 호소하는 환자가 오셨습니다. 막 세수를 마치고 온 듯한 얼굴에 아직 완전하게 마르지 않은 머리가 아침 일찍 서둘러 병원에 들르신 듯 했습니다. 게다가 하품을 계속하면서 말씀하시길래, 주말에 바쁘셨구나, 피곤하신가 보다 했습니다. 아침 일찍 검사를 마치고 출근하실 것 같은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진찰을 시작했는데, 다행히 환자분에게는 만져지는 혹이나 분비물 등은 없었습니다. 그래도 가슴이 아프다고 하여 유방 촬영과 초음파 검사를 시행하자고 하였습니다. 초음파 검사를 시행하면서 환자분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초음파 검사가 20여 분 걸리기 때문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게 되면 환자분들은 무척 긴장하시거든요.

 

“월요일 아침이라 바쁘시죠? 약간 피곤해 보이시네요.”

 

제가 말을 꺼내자 환자분께서 그 이유를 이야기를 해주시기 시작했습니다. 본인은 청소를 하면서 먹고 산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밤에 출근해서 빌딩 청소를 하고 나서 아침에 퇴근하여 집으로 돌아온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아침까지 일하고 샤워한 뒤에 지금 퇴근하는 길인데, 최근에 가슴이 너무 아파서 오게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사진_픽사베이

 

“밤에 그렇게 계속 일하시면 힘드시겠어요.”

 

이렇게 말씀드리자, 또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일을 15년째 해오고 있는데, 이제 자식들도 다 컸으니 그만할까 생각 중이라고 하셨습니다. IMF 때 남편의 사업이 기울기 시작하면서 경제적으로 힘들어 15년 전부터 일을 시작하였다고 하셨습니다. 사업이 잘 될 때에는 사모님 소리도 듣고 그랬는데, 청소 일을 처음 시작하실 때에는 너무 힘들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서 밤에만 일을 하다 보니 몸이 점점 상하는 것 같아서 걱정된다는 말씀도 하셨습니다.

 

사실 밤에 일을 많이 하게 되면 유방암이 더 잘 생깁니다. 여러 차례 연구가 되어 있는 부분인데, 일주일에 밤 근무를 3번 이상 하게 되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유방암의 위험도가 약 4배 정도 증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아무래도 밤에 일을 하게 되면 멜라토닌(melatonin)이라는 호르몬이 적게 나오게 되고 줄어든 멜라토닌만큼 에스트로젠(estrogen)이 더 분비되게 되어 그렇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유방암 환자에서 멜라토닌의 수준은 암에 걸리지 않는 사람들보다 낮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 외에도 밤 근무 자체가 당뇨와 혈압 같은 만성질환을 야기할 확률이 높고, 이 역시 유방암에는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사진_픽사베이

 

아니나 다를까 오른쪽 가슴 위쪽 바깥쪽으로 땅콩만 한 의심스러운 혹이 발견되었습니다. 그 당시 저희 병원에는 처음 오셨지만, 타 병원에서 2년 전에 시행한 검사에서는 특별한 문제가 없었다고 하셨었습니다. 확진을 위하여 조직 검사를 시행하였고 유방암이 발견되었습니다. 물론 이 유방암이 밤에 일한 것 때문에 생겼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그렇지만, 어느 정도는 기여했다는 것은 분명할 것입니다.

 

이런 상황의 환자분들을 보면 문득 그런 생각이 듭니다. 사회경제적인 지위가 건강에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생각입니다. 경제적으로 힘들기 때문에 밤에 일해야 하고, 밤에 일하기 때문에 병에 더 잘 걸리고 병에 걸리면 또 경제적인 문제가 또 생기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느낌이 듭니다.

 

그 환자분은 지금은 일 그만두고 잘 치료받고 계십니다. 가끔 병원에 오셔서 웃으시면서 치료에 관한 질문하시지만, 당시에 흘리던 눈물이 아직도 기억이 납니다.

 

그전에는 밤에 빌딩 불을 끄지 않고 퇴근을 하나라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제 환자 같은 분들이 일하고 계신 것은 아닌가 합니다. 저희 같은 사람들을 위해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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