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회 역사 - 전후 재건과 르네상스

(1960년대) 당시는 폐허에서 일어날 때였다.

우리 학회는 1945년 창설이 되었지만 재건학회가 일정기간 활동했다.

유석진 선생이 많은 공헌을 했는데 그 중 하나가 정신건강협회 창설이었다.

1960년이 WHO의 ‘정신건강의 해’로 지정된 해이다.

근 2~3년 동안 우리 정신의학계가 활짝 피었다.

 

최초의 국립정신병원

‘중곡동 정신병원’ 탄생했다.

당시엔 최신식의 이상적인 병동으로 자랑했었다.

창살이 없는 정신병원이었기 때문이다.

트레이닝을 위한 One-way Mirror가 유행했다.

배고프지만 희망은 있었다.

‘어딜가면 밥을 얻어먹을 수 있을까?’

어떤 면에선 (요즘보다) 더 순수했다.

어찌보면 순진했다.

 

학회 역사 - 정신보건법 상정 폐지

내가 회장일 때인 82~83년에 당시 정신보건법 시안을 수정했다.

그 안이 상정될 때는 훨씬 나쁘게 변했다.

환자의 인권 문제였기에 재야 단체들이 전부 들고 일어났다.

김광일 선생의 많은 공로가 있었고, 이호영 선생이 인맥을 통해 (정부에) 악법이란 걸 직접 호소했다.

그때 기록을 확인하니 전국 의과대생 이름으로 호소문을 내고 교회 이름을 걸어 내기도 했다.

네트워크를 잘 형성한 점이 주효했다.

 

학회 역사 - 지역사회 연계, 정신보건법 제정

이후로 발전을 거듭하여 90년대(95년)에 재활협회가 탄생했다.

재활방법을 지역사회 중심 보건으로 결정했다.

95년 제정된 정신보건법에 대부분 반영이 됐다.

기본 철학 없이 제대로 된 법은 없다.

결국 ‘인간을 어떻게 보는가?’에 대한 문제이다.

정신치료자의 입장에서는 심리학, 사회학, 문화적 관점을 같이 보기에 다소 다르다.

정신보건법은 시대의 산물이므로 계속해서 바뀔 것이다.

서로 싸우고 토론하면서 지금까지의 역사로 보면 점차 나아질 것이다.

 

학회가 앞으로 나아갈 길

‘전 국민의 정신건강 교육’이 가장 중요하다.

초등학교 교과에 들어가야 하고, 국회의원, 법조인, 공무원, 의료 인력, 교사, 경찰, 이런 사람들의 교육이 필요하다.

더 중요한 것은 매스미디어다.

정신보건법 이야기를 다룬 신문기사에 ‘정신과 환자를 신고한다’ 하여 난리가 났었다.

(환자를) 등록시키려던 것이다.

제일 먼저 그런 내용을 접해 큰 활자로 내는 일을 기자들이 한다.

WHO에서 늘 강조하는 것이 매스미디어에 자살방법을 절대 보이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신문에 난 뒤 자살률이 높아진다는 통계가 있는데도 높은 빌딩에서 떨어졌다고 유리창 앞에 신발을 놓은 모습을 낸다.

교육은 학회가 해야 할 일 중 아주 중요하다.

 

 

[인터뷰 영상] 이부영 선생님의 발자취로 돌아보는 정신보건의 역사 (1)

[인터뷰 영상] 이부영 선생님의 발자취로 돌아보는 정신보건의 역사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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