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김정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늘 고민이 많은,
두 돌 반 마음이 엄마인 누나에게"

 

이제 꽤 날이 선선하네. 아이랑 외출하기 좋은 날씨야.
이 편지로 시원해진 날씨 만큼이나 누나 마음속의 고민을 풀어주려 해.

 

지난 편지에서 아이가 왜 유튜브를 좋아하는지, 어떤 것을 얻고 잃게 되는지에 대해 말했었지.
아이가 혼자서 유튜브를 볼 때, 얻을 수 있는 인지적 효과가 생각보다 크지 않다고 한 거,
...기억나지?

 

그런데 아예 유튜브를 못 보게 하라는 말은 아니니까, 너무 인상 쓰지 않아도 돼.
아무 쓸모없는 석사 논문도 냄비받침으로 쓸 수 있는 것처럼, 도구는 활용하기 나름이야.
오늘은 약속했던대로 유튜브의 활용에 대해서 얘기할게.

 

출처_픽사베이

 

유튜브로 아이 혼자 노는건 이전에 말했던 것처럼 추천하지 않아.
하지만 부모가 아이와 함께 유튜브를 보면서 놀아준다면 얘기가 달라져.
그림책을 같이 보면서 놀듯이, 주인공의 감정을 언어로 표현해 주거나, 색깔 말하기나, 숫자 세기 등을 같이 하면서 보는거야.
아이에게는 심지어 낙엽도 장난감이 될 수 있잖아, 유튜브도 활용하기 나름일거야. 
단순히 유튜브를 아기에게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아이와 함께 유튜브를 가지고 노는 것, 알았지?

 

그렇게 유튜브를 같이 가지고 놀면, 부모가 단순히 스마트폰을 주거나 뺏는 존재로만 느껴지지 않을거야. 부모와 함께 노는 것이 1순위로 재미있는 것이 될 거고, 스마트 폰으로만 노는 것이 2순위가 되겠지.
인간과 관계를 맺는 것의 즐거움을 알게되고, 기계가 그 과정을 도울 수 있다는 것도 깨닫게 될 거야.

 

우리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 조금 더 이해하기 편해.

어렸을 때, 최신 게임기 샀다고 놀러오라고 하는 친구들 있잖아.
똑같은 게임기를 가지고 놀더라도, 어떤 친구랑 놀면 재미있고 어떤 친구랑 놀면 별로 재미없어.
같이 놀아서 재미있는 친구는, 친구와 놀기 위해 게임기를 활용했기 때문이야.
반대로 같이 놀아도 재미없는 친구는, 게임을 하기위해 친구를 활용했기 때문이지.

 

유튜브를 아이와 함께 가지고 놀더라도 너무 긴 시간은 추천하지 않아.

홍콩 보건국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만 2세 미만의 아동은 액정이 있는 모든 전자기기의 사용을 피하라고 권고하고 있어.
그리고 만 2세에서 6세 아동은 하루에 2시간 이하 사용을 권장하니까 참고하길 바랄게. 
(국내 가이드라인은 내가 찾지 못했어.)

 

출처_픽사베이

 

대부분의 우리 부모님 세대는 어렸을 때 우리 세대처럼 많은 책을 보지 못하셨겠지.
하지만 우리를 키우실 때, 우리가 책을 접할 수 있도록 노력해 주셨어.
세상이 달라졌으니까.
지금 우리가 겪는 일도 비슷한 것 같아.
우리는 어렸을 때 유튜브나, 스마트폰 같은 게 없었지만, 지금은 흔해졌지.
그래서 우리가 아이들에게 이런 신기술의 기쁨을 접할 수 있게 노력하고 있고.
하지만 책과는 다른 점도 있어.
책은 부모님이 골라서 구입하기 때문에, 적절한 내용을 선택할 수 있고, 쉽게 중독되지도 않아.
하지만 유튜브나 스마트폰 같은 신기술은,
사실상 부모님이 컨텐츠를 골라주기 어렵고, 중독가능성도 높지.
이런 차이를 부모가 잘 이해해야 신기술을 아이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적용할 수 있어.

 

내가 너무 부모의 역할을 강조했나?
지금쯤 누나는 이렇게 말할 것 같기도 해. 


사실 그냥 아이에게 휴대폰을 주고 좀 쉬고 싶은 마음도 있어.

그 마음도 잘 알고 있어.
육아는 바쁘고 힘들잖아.
직장은 일하는 시간이 정해져 있지만, 육아는 그렇지도 않지.


내가 제안한 것들은,
반드시 해야된다는게 아니라, 부모로서 가능하다면 하는 게 좋겠다는 정도의 의미야.

 

누나가 아이에게 핸드폰을 줄 때는,
엄마로서 너무 힘들 때, 아니면 어떻게 해도 아이가 계속 보챌 때 주는 거 잘 알고 있어.
그렇게 아이에게 핸드폰을 주고, 잠시 한숨을 돌릴 수 있다면 난 그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
그렇게 누나가 힘을 충전하고, 그 힘으로 아이와 더 잘 놀아줄 수 있다면 아이에게는 그게 더 좋을거야.
작전 상 후퇴를 하는거지.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의 양도 중요하지만, 시간의 질도 중요하니까.
오늘도 길고 재미없는 얘기 듣는다고 고생했어.
궁금한게 있다면 언제든지 물어봐, 잔뜩 지루하게 해줄테니까.

 

오늘도 마음이와 행복한 하루 보내.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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