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_픽사베이

 

아침 일찍 진료실에 77세 어르신이 들어오셨습니다. 병원에 방문하신 이유는 말하지 않아도 한눈에 알 수 있었습니다. 오른쪽 목에 신생아 머리만 한 혹을 달고 오셨거든요. 20년 전에 갑상선 수술을 하셨고 매일같이 갑상선 호르몬제를 복용하고 있지만 본인의 병이 무엇이었는지 어떤 수술을 받았는지 기억조차 희미하다고 하십니다. 2년 전부터 오른쪽 목이 불룩하게 불러오더니 최근 1년간 더 악화가 되었다고 합니다. 첫눈에 환자 상태가 심상치 않다고 느끼고서는 초음파 검사를 하자고 했는데 돈이 부족하다고 주저주저하십니다. 30분여 간 실랑이 끝에 초음파를 오른쪽 목에 댄 순간 머리가 하얗게 변합니다. 혹이 너무 커서 초음파에 다 보이지가 않았거든요. 20년 전 수술로 이미 갑상선은 모두 제거된 상태였고 12cm가 넘는 그 혹은 결국 조직 검사 결과 갑상선 유두암의 림프절 전이로 밝혀졌습니다. 

 

갑상선암은 최근 몇 년 사이에 논란의 중심에 섰습니다. 우리나라 갑상선암은 몇 년 사이 급격히 증가하여 1년에 4만 명이 넘는 환자가 수술을 받았고 그 증가 추세는 세계적으로도 이슈가 되었습니다. 갑상선암 수술이 늘어난 것은 과잉진단 때문이라는 논문이 나와서 주목받기도 했죠. 갑상선암은 일반적으로 혹의 크기가 커지고 림프절 전이가 생겨서 만져지거나 기도나 식도, 혈관이나 신경을 침범해서 증상이 생기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소요됩니다. 즉, 대부분의 갑상선암 환자는 증상이 없이 우연한 기회에 발견되죠. 목 불편감이나 쉰 목소리 등 증상이 있었던 환자들도 엄밀히 따지면 갑상선암과는 관련성이 떨어지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우리나라는 외국에 비해 비교적 초음파 검사에 대한 접근성이 좋아서 건강검진이나 사소한 증상에도 쉽게 검사를 받을 수 있고 작은 갑상선 암도 척척 진단하게 되었죠. 하지만 전체 갑상선암 환자 중에 진행성 갑상선암 또한 증가하고 있어 갑상선암의 증가가 단순히 작은 갑상선암의 과잉진단이라고 폄하하기에는 위험한 면이 있습니다.

 

사진_editor

 

최근에는 “갑상선암은 수술할 필요가 없다”, “갑상선암은 더 이상 암이 아니다” 등의 자극적인 제목으로 갑상선암은 또 한번 매스컴을 타게 됩니다. 최근 새롭게 개정된 갑상선암 진료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5mm 이하의 작은 갑상선암이 림프절이나 원격 전이의 증거가 없고 갑상선 내부에 위치할 경우 환자에게 충분한 설명 후 즉시 수술을 하지 않고 수술 시기를 늦춰서 경과 관찰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이것을 ‘적극적 감시’ (Active surveillance)라고 합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수술 시기를 연기해서 환자가 수술 후 발생할 수 있는 합병증과 갑상선 호르몬제 복용과 같은 불편함을 장기간 느끼는 것을 줄여주기 위한 방법이지 갑상선암의 1차 치료는 수술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그리고 갑상선암이 다 같은 갑상선암이 아닙니다. 갑상선암에는 여러 가지 분류가 있는데 그 분류에 따라 예후가 다르게 됩니다. 물론 가장 흔한 것은 갑상선암에 거북이암이라는 별명을 붙여준 “유두암”입니다. 대체적으로 진행 속도가 느리고 림프절 전이를 잘 하고 폐나 간 등 원격 전이는 드물게 발생합니다. 하지만 모든 유두암이 똑같은 패턴을 가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 안에도 미만성 경화형, 키 큰 세포 형, 원주세포 형 등 진행 속도가 빠르고 재발이 잦은 나쁜 예후를 갖는 타입도 있습니다. 또한, 갑자기 빠른 속도로 전이를 일으키면서 거북이암에서 토끼암이 될 수도 있습니다. 여포암의 경우 림프절 전이는 거의 없지만 종양의 크기가 유두암에 비해 상대적으로 크고 폐나 간, 뼈에 원격 전이 가 더 많습니다. 

 

그리고 갑상선 수질암은 RET gene이라는 유전자에 의해 발병하여 가족력이 있는 경우가 많고 부신이나 부갑상선, 뇌하수체 등 다른 내분비 기관에 질환을 동반하고 있을 확률이 높습니다. 따라서 가족 중에 갑상선 수질암 환자가 있다면 꼭 갑상선 검사를 해보셔야 합니다. 

 

사진_픽사베이

 

대부분의 갑상선암이 착한 암 또는 거북이암으로 불리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습니다. 바로 역형성암입니다. 갑상선 역형성암은 환자가 빠르게 커지는 목의 종괴로 내원하게 됩니다. 진행이 워낙 빠르고 주변 조직을 침범하며 전이도 빨라서 발견 당시에 이미 손을 쓸 수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갑상선 절제술로 병을 치료하기보다는 기도가 좁아져서 호흡곤란이 왔을 때 기관절개술을 한다던지 식도가 막혀서 식사를 못 할 때 위루를 만든다던지 하는 완화치료를 하게 됩니다. 워낙 진행이 빨라서 진단된 지 수주 안에 사망에 이르기도 합니다. 
 

저는 갑상선 질환을 보는 의사로서 매스컴이나 인터넷 등의 매체를 통해 여과 없이 정보가 무분별하게 전달되는 것은 참으로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갑상선암은 분명 ‘암’이고, 적절한 진단과 치료를 했을 때 높은 생존율을 보장할 수 있는 것입니다. 같은 질환이라 하더라도 환자마다 개개인에 맞춰 최선의 치료가 결정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단순히 ‘갑상선암’이라는 이름과 크기 만으로 결정한다는 것은 너무나도 위험한 생각이고 무책임한 결정입니다. 하루 하루 빠르게 변해가는 세상에서 의학도 새로운 정보와 지식들이 나날이 쌓여가고 있습니다. 의학은 어디까지나 근거를 중심으로 과거에서부터 누적된 결과로부터 탄생하기 때문에 과거에 옳다고 믿었던 것이 현재에는 잘못된 정보일 수도 있습니다. 요즘은 환자 맞춤치료라는 말이 유행이죠? 갑상선암은 이미 환자마다 “환자 맞춤치료”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저작권자 © 정신의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