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병원에서 수련 받던 시절, 저는 주로 잇몸과 관련된 치료만을 했습니다. 대학병원은 철저한 분업화된 진료를 제공합니다. 덕분에 환자들은 1층부터 꼭대기 층까지 수도 없이 오르락내리락 힘든 길을 걷곤 했죠. 물론 각 과와의 협진을 통하여 수립된 치료 계획에 따른 결과였지만, 엄청난 이동거리와 더불어 시간과 비용을 만만찮게 지불했던 환자분들을 생각하면 정말 고도의 인내심을 갖고 방문한 것이라고 느껴집니다. 하지만 신기했던 사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환자들의 만족도는 낮지 않았던 것입니다. 잇몸치료 3개월, 충치 및 신경치료 2개월, 임플란트와 인공뼈 이식 6개월 및 최종 보철까지 진행하다 보면 1년이 훌쩍 넘어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사진_공사중인 에펠탑_픽사베이

 

치과치료는 마치 땅 위에 집을 짓는 것과 비슷하다고 많이 생각합니다. 어떤 곳에 모래와 자갈이 가득한 황무지가 있습니다. 옆에는 웅덩이가 있고 심지어 경사가 심하게 기울어져 있죠. 이곳에 집을 짓기 위해서는 당연히 지반을 다지고 웅덩이를 메워야 합니다. 경사진 언덕을 깎아서 편평하게 만들어야 하고요. 집을 올릴 때는 적절한 설계에 맞춰 좋은 재료를 씁니다. 집의 완성도를 생각하면 내진설계도 하고 싶고, 채광과 통풍 및 인테리어도 예쁘게 하고 싶습니다. 이상적인 집의 완성이죠. 각 과정마다 세부 분야의 전문가들이 함께 한다면 시간과 돈은 많이 들겠지만 명작이 탄생할 것도 같습니다. 하지만 조금만 미니멀리즘을 추구한다면–웅덩이를 피해서 짓고 내진설계와 예쁜 인테리어를 뺀다면- 80점짜리 무난한 집을 적절한 비용과 시간을 들여 가질 수도 있습니다.

 

사진_픽사베이

 

어금니를 6개 정도 빼야 하는 환자가 오면 머릿속이 복잡해집니다. 구강 내 치석과 치태(세균) / 전신 질환과 약 복용 여부 / 환자의 악습관(이갈이, 이 악물기) / 교합 양상 / 심미적 관점 / 흡연 그리고 환자의 요구와 경제적 능력 등 고려해야 할 많은 요소가 있습니다. 치과의사들은 이 모든 것들을 고려해서 치료 계획을 제안합니다. 마치 건축가가 건설 계획서를 제출해서 입찰을 따내듯이 말이죠. 여기에서 치과의사의 치료 철학에 따라 세부내용이 많이 변할 수 있습니다. 보수적인 치과의사는 지반 정리와 내진설계를 꼭 넣고 싶어 할 것이고, 심미적인 치과의사는 미적인 요소를, 속도를 중요시하는 치과의사는 빠른 완성을 어필할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기술의 발전은 다양한 선택지를 제공하고 그것 모두 받아들일 수 있을 만한 결과를 가져다준다는 것입니다.

 

사진_픽사베이

 

대학병원은 오랜 시간을 들여 가장 보수적인 집을 짓는 곳이며 환자들은 그 사실을 대략적으로 인지하고 내원하기에 만족도가 높은 편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의학의 발전에 따라 빠르고 튼튼한 집, 빠르고 예쁜 집도 지을 수 있게 변하고 있습니다. 환자들이 만족스러운 치과를 찾기 힘들어하는 것도, 치과의사들이 환자를 보며 스트레스를 받는 것도 이런 다양성에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하지만 다양성은 견고한 원칙 위에서 존재해야 합니다. 집이 무너지면 안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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