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상담’이란 문화가 보편화되지 않은 우리나라 현실에서 자녀와 함께 상담센터를 찾기까지 어머니들은 정말 많은 시간 고민하고, 망설이게 됩니다.

 

‘정말 우리 아이에게 문제가 있는 것일까?’
‘아이가 성장하면서 자연스럽게 나아지는 문제는 아닐까?’
‘별 문제가 아닌데 내가 너무 예민하게 느끼는 것은 아닐까?’
‘상담을 받는다고 하면 다른 사람들이 우리 아이를 정신적으로 문제있는 아이로 생각하지 않을까?’

 

이런 많은 생각들과 함께 모든 것이 다 내가 아이를 잘못 키운 탓으로 여겨져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그렇게 오랜 시간 심사숙고하고, 용기를 내어 상담센터의 문을 두드리는 어머니들은 걱정되고, 두렵기도 하지만, 이제부터 나도 내 아이에게 좋은 엄마가 되어줄 것이라는 굳은 결심을 하게 되지요.

 

오랜 시간을 두고 어렵게 내린 결정이었던 만큼 어머니들은 그동안의 미안함을 씻어버리고 싶은 마음에 상담을 시작하면서 새로운 각오로 아이들에게 ‘착한 엄마’가 되어주고자 노력하게 됩니다.

사진_픽셀


몇 번 보지도 않은 상담선생님을 너무 잘 따르는 아이를 보면 섭섭한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나는 왜 그동안 상담선생님처럼 아이를 잘 받아주지 못했나 하는 미안함에 아이의 요구를 가능한 받아주고, 혼내지 않는 ‘착한 엄마’의 역할에 충실하고자 합니다.

 

상담을 시작한 처음에는 나의 양육태도가 변함에 따라 아이와의 관계도 좋아지는 것 같아 보람을 느낍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아이의 요구는 끝이 없고, 항상 웃으면서 상담선생님처럼 받아주기에는 울컥울컥 화가 치솟기도 합니다. 그러다보면 1주일에 하루 정도는 감정이 폭발하여 아이를 심하게 혼내기도 하고, 때로는 회초리를 들기도 합니다. 나름대로 아이를 위해 화를 참으면서 ‘화내지 않는 착한 엄마’가 되어보려고 최선을 다했지만, 전과 다를 바 없는 현실에 조금씩 지쳐갑니다.

‘역시... 이 녀석은 별 수 없구나.’
‘이 아이는 왜 나를 힘들게 할까?’
‘아이와 이혼할 수 있다면 이혼하고 싶다’


내 아이인데도, 도대체 어떻게 키워야 할지 막막한 마음도 들고, 아이에 대한 원망, 상담에 대한 불신들로 오히려 상담을 시작하기 전보다 더 힘들어지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어머님들이 흔히 하시는 오해가 있습니다.

 

어머님들께서 아이들의 모든 요구를 들어주셔야 ‘좋은 엄마’, ‘착한 엄마’가 된다는 ‘착각’에서 벗어나십시오. 어머님들은 자녀에게 때로는 상담자처럼, 때로는 선생님처럼, 때로는 친구처럼 대하실 수는 있지만, 본 모습은 ‘어머니, 엄마’이며, 그래야만 합니다.

 

사소한 일로 동생과 싸우는 아이를 보고, 욱하는 마음에 소리치고 싶지만 어금니 꽉 깨물고 연기하듯이 “우리 ○○는 엄마가 동생만 너무 예뻐하는 것 같아서 너무 속상했나 보구나. 그렇지만 ○○가 동생을 때리면 동생이 너무 아프겠지?...”라고 이야기하는 우아한 연기파 엄마보다는 “너희들이 싸우니까 시끄러워서 너무 정신이 없잖아”라고 엄마의 감정을 편하게 이야기한 후, 서로의 입장을 말해보도록 하는 엄마가 더 편하지 않을까요?

 

어머님들의 감정을 베일 속에 감추면서 1주일간 우아하고, 착한 엄마의 모습을 보이다가 본인의 감정이 폭발하여 어느 날 갑자기 아이들에게 ‘욱’하고 화를 내시는 것보다는, 엄마의 감정을 자연스럽게 언어로 표현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상담을 하다보면 “선생님, 제가 속상해하는 걸 아이가 어떻게 알았을까요? 저는 아무 말도 안 했거든요.”라고 하는 엄마들을 자주 만납니다. 아이들은 엄마가 말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엄마의 마음을 알았을까요?

깊은 한숨
차가운 눈빛
싸늘한 말투

사진_픽셀


아이들에게는 엄마의 이러한 비언어적 표현들이 직접적인 말보다, 어쩌면 더 크게 다가옵니다. 속마음과 다른 거짓된 감정표현과 해결되지 않고 꾹꾹 눌러놓은 감정들은 아이들의 눈에는 다 보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아이들의 불안감을 키우는 불씨라는 것을 기억하시고, 엄마의 감정에 솔직해지세요. 마음이 편한 엄마에게서 느껴지는 편안함은 속마음을 감춘 엄마의 깊은 한숨과 차가운 눈빛, 싸늘한 말투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것입니다. 

“감정”에 솔직해지기 위해 아이들에게 심한 체벌이나 폭언을 해도 된다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물론 ‘기본적인 감정조절’이라는 자체 필터링을 거친 후의 감정표현이어야 하겠지만, 엄마가 느끼는 ‘희노애락(喜怒哀樂)’의 감정을 너무 감추고, “엄마는 항상 아이들에게 밝고 행복한 모습만을 보여주어야 한다!!!”라는 잘못된 신념을 버리시라는 것입니다.

 

엄마도 기쁨, 행복 뿐 아니라 복잡한 세상을 살면서 삶이 내 맘같이 되지 않을 때 느껴지는 속상함, 외로움, 슬픔, 분노 등의 부정적인 감정을 느낄 때가 있지만, 이런 스트레스 상황을 어떻게 해결하고 감정을 조절하는지를 보여주는 것이 아이들에게 더 필요한 교육이 아닐까요?

때로는 욱하는 마음에 아이에게 과하게 화를 내기도 하지만,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엄마.

우울할 때는 노래방에서 노래도 부르거나,
매콤하고, 달콤한 음식을 먹으며 기분 전환도 하고,
화가 날 땐 동네 한 바퀴를 걸으며 화를 다스리는 엄마.


아이들은 나보다 아는 것도 많고, 친구도 많고, 요리도 잘 하고, 모든 것을 척척 해내서 완벽하게만 보였던 엄마가 이렇게 시행착오하는 과정을 보면서 ‘실수’가 ‘실패’가 아니라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또한, ‘내’가 우울하고, 슬프고, 화가 날 때는 나의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과 감정을 조절하는 방법도 습득하게 되지요.

 

아이를 키우는 일은 정말 쉽지 않은 과정입니다. 하지만, 이 과정을 통해서 엄마와 아이가 하루하루 성숙한 인격체로 성장하게 되는 축복된 경험입니다.

그리고 그 과정은 언제나 현재 진행형입니다.

엄마도 사람이라 실수할 수 있지만, 언제든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그 실수를 다시 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면 당신은 그 자체만으로 ‘충분히 좋은 엄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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