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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과 을, 심리실험 속에서 탄생하다. - 엑스페리먼트 Das Experiment, 2001
권순재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 승인 2017.09.11 22:42

[정신의학신문: 권순재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진_엑스페리먼트(수입 및 배급 : 시나브로엔터테인먼트)

 

갑과 을에 대한 사회의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도 뜨겁다. 자신의 제자를 폭행하고 인분을 먹인 교수, 부하 병사에게 전자팔찌를 채워 자신의 개인 노예처럼 부린 상관, 계약에 없는 교육비를 받으면서도 점주들의 따귀를 때리고 모욕을 준 프랜차이즈 대표 등 우리 사회에서 이제까지 밝혀지지 않았던, 그러나 모든 곳에서 일어나고 있던 약자에 대한 강자의 횡포가 연일 뉴스를 타고 있다. 그리고 뉴스에 이러한 비인간적인 ‘갑질’이 보도될 때마다 사람들은 인간의 내면에 감춰진 잔인성에 대하여 이야기하며 그 끔찍함에 몸서리치곤 한다.

 

2001년 개봉된 독일의 영화 ‘엑스페리먼트’는 심리 실험 속에서 갑과 을이 발생하고 이것으로 인한 강약관계가 약자에 대한 강자의 끔찍한 학대와 강자에 대한 약자의 무조건적인 복종으로 이어지는 과정에 대한 영화이다. 이 영화는 1971년 미국의 심리학자 ‘필립 짐바르도’(Philip Zimbardo)에 의해 설계되고 실행된 ‘스탠포드 감옥 실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사진_엑스페리먼트(수입 및 배급 : 시나브로엔터테인먼트)

 

실험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사전에 모집된 정신적으로 건강한 24명을 무작위로 두 군으로 나눠 각각 ‘교도관’과 ‘죄수’의 역할을 부여하였다. 실험장소는 실제 감옥과 같이 꾸며졌으며, 실제 상황처럼 보이기 위하여 교도관 역할의 피험자는 교도관의 복장을 하고 감옥열쇠, 호루라기, 곤봉 그리고 교도소 내의 질서 유지에 필요한 권한을 부여받았다. 반대로 죄수 역할의 피험자들은 이름 대신 번호로 지칭되었으며 감옥에 도착하자마자 몸수색을 당하고 죄수복으로 갈아입혀졌다. 그리고 이들의 행동은 교도관 역할의 피험자들에 의해 24시간 감시 및 통제되었다. 그리고 연구진들은 이들의 행동의 변화를 관찰하였다.

 

사진_엑스페리먼트(수입 및 배급 : 시나브로엔터테인먼트)

 

놀랍게도 단 하루 만에 교도관군과 죄수군 사이에 말투와 행동의 변화가 나타났다. 특히 교도관들은 자신들의 권위를 세우기 위하여 권위적이고 폭력적인 행동을 일삼았다. 자신들의 통제에 따르지 않는 죄수들에게 소화기를 뿌리고 옷과 침대를 빼앗아 동물처럼 발가벗고 바닥에서 자도록 만들었던 것이다. 또한 수감자들이 폭동을 일으키려하자 팔굽혀펴기를 시키고 협조자에게 보상을 주고 협조하지 않는 자는 모욕을 주고 고립시켰다. 죄수들은 점차 저항을 포기하기 시작하였으며 3일째 스스로를 완전한 죄수로 여기기 시작하였다. 이들은 스스로를 번호로 불렀으며, 단지 실험임에도 불구하고 변호사를 부르거나 보석금을 내고서라도 교도소를 나가고 싶어하였다. 대부분의 죄수들은 극심한 우울감과 무력감, 통제불능의 분노와 일부는 착란증세를 나타내었다.

 

사진_엑스페리먼트(수입 및 배급 : 시나브로엔터테인먼트)

 

실제 ‘스탠포드 감옥실험’은 위와 같은 문제로 단 6일만에 종료되었다. 원래 실험은 14일로 계획되어 있었다고 한다. 영화 ‘엑스페리먼트’에서는 이에 약간의 각색을 더하여 교도관군의 피실험자들이 폭주하여 죄수군의 피실험자를 살해하고 연구진들마저 제압하여 감옥을 점거하는 상황을 그려낸다. 결말은 약간 다르지만, 실제 실험에서 교도관군이 죄수에게 가한 물리적, 정신적 학대의 정도를 미루어보았을 때, 만일 실험이 조기종료되지 않았다면 비슷한 일이 현실에서도 일어났을지도 모른다.

 

‘스탠포드 감옥실험’은 비슷한 시기에 실행된 스텐리 밀그램의 ‘복종에 대한 행동연구’ 실험과 함께 사회 속에서 권력 및 권한에 따른 인간의 행동변화를 연구한 대표적 실험 중 하나이다. 그리고 이들의 실험은 필연적으로 다음과 같은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사진_엑스페리먼트(수입 및 배급 : 시나브로엔터테인먼트)

 

“인간의 타인에 대한 폭거는 그의 본성에서 기인하는가

아니면 사회 환경의 영향인가?”

 

밀그램과 짐바르도의 실험은 아무리 선한 사람이라도 사회적 압력과 부여된 권위에 따라 얼마든지 악행을 저지를 수도 있다는 씁쓸하고도 불편한 가능성을 제시한다. 물론 단지 몇가지 심리실험의 결과만을 가지고 인간의 악의 근원을 함부로 결론 내려서는 안될 것이다. 하지만 이들 실험들과 이를 바탕으로 한 영화 ‘엑스페리먼트’에서 표현된 몇 가지 인간의 사회심리학적 특성은 오늘날 우리나라에서 벌어지는 갑을 논쟁에 대단히 중요한 점을 시사한다.

 

첫째, 인간이 타인을 학대하는데에 있어서 사회적 상황은 대단한 힘을 가진다. 최근에 이슈가 된 사회적 약자에 대한 강자의 갑질은 대부분 위치적으로 고립되거나 독자적인 권위가 지배하는 곳에서 일어났다. 부하에 대한 상관의 학대는 ‘군대’라는 단절되고 상하관계가 명확한 곳에서 일어났다. 비행기 이륙을 지연시키고 승무원을 내리게 한 항공사 임원의 폭거에 대하여 항공사는 항공보안법보다 회사 내의 위계질서를 우선하였다. 그리고 이들의 갑질은 그들의 실상이 언론을 통해 외부에 알려지자, 즉 고립성과 독자적 권위성을 잃게 되자 더 이상 진행되지 못하였다. 영화 ‘엑스페리먼트’에서는 폭주하던 교도관 군의 실험자들은 실험을 중단하려는 연구진을 제압하고 교도소를 외부와 고립시키는 선택을 한다.

 

둘째, 최소한 이들의 갑질이 지속되는 동안 이들은 평소에 비하여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였다. 스탠포드 감옥실험에 참여하였던 사람들은 대부분 평범한 사람이었다. 75명의 지원자들 중 선발된 24명은 심리검사를 통하여 정신건강이 파악된 비교적 건강한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이들 중 상당수는 단 5일만에 타인에게 끔찍한 학대를 저지르는 상태가 되었다. 이들 중 정신질환이나 범죄경력이 있던 사람들은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이들은 자신들이 하는 학대행위가 교도소 내부의 질서와 안전을 위한 행위임을 확신하는데 아무런 위화감을 느끼지 못하였다. 영화는 서로 농담을 주고 받으며 자신의 가족 사진을 서로에게 보여주던 평범한 사람들이 점차 끔찍한 학대자와 무기력한 피해자로 변화하는 모습을 생생하게 묘사한다.   

 

사진_엑스페리먼트(수입 및 배급 : 시나브로엔터테인먼트)

 

연구진 : “ 또 폭력을 쓰면 실험에서 빼겠소. ”
교도관 : “ 질서를 위해 불가피했으니 상관하지 마시오!”

 

셋째, 강자의 약자에 대한 폭거 주변에는 언제나 이들의 폭거에 대하여 침묵하는 제 삼자가 있었다. 감독은 실험 참가자의 심리상태 못지않게 실험설계자들의 심리 변화를 중요하게 묘사하였다. 그리고 오직 소수의 연구진만이 실험 중에 일어나는 행위의 비도덕성을 비판하였다. 실험을 설계한 연구진들마저도 제한된 장소에서 일어나는 갑과 을의 갈등에서 갑에게 동조했던 것이다.

 

사진_엑스페리먼트(수입 및 배급 : 시나브로엔터테인먼트)

 

“뭔가 잘못되었어요. 이렇게 될 줄은 몰랐죠. 우리는 통제력을 잃고 있어요.”

 

관찰자들마저도 사회적 상황으로 인한 심리 변화에서 자유롭지 않았다는 점은 매우 중요한 점을 시사한다. 우리 사회에서는 조직에서 일어나는 비도덕적인 일에 대해서 제동을 걸거나 외부로 공론화하는 행위에 대해서 하극상이나 배신으로 여기는 풍조가 있다. 그리고 이는 우리 사회의 여러 곳에서 일어나는 강자의 폭거를 빈번하게 만드는 중요한 요인 중 하나이다. 실험의 책임자 필립 짐바르도는 훗날 감옥이 통제불능상태로 변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상대적으로 무관심했음을 고백하였다. 그리고 자신의 무관심을 ‘악’이라고 규정하였다. 갑질이 일어나는 곳에서 침묵하고 있는 대다수의 제 삼자는 사실 ‘무관심한 타인’이 아니라 ‘침묵으로서 동의하는 공범자’라는 것이다.
 
 

사진_위키미디어공용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나치가 저질렀던 대규모 인종청소 등의 끔찍한 전쟁범죄가 드러남에 따라 사람들은 인간이 저지르는 타인에 대한 악행의 원인을 찾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특정 인간에서만 존재하는 어떠한 잔인한 특질이 인간이 저지르는 악행의 원인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필립 짐바르도는 때때로는 매우 선한 인간마저도 특정 사회적 상황 안에서는 아무런 죄책감 없이 악마와도 같은 행동을 저지를 수 있음을 경고한다. 그리고 폭거를 저지른 사람 뿐만 아니라 이를 허용한 사회 시스템과 그 사회 시스템을 아무런 비판 없이 받아들인 나머지 사회구성원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말한다.

 

'엑스페리먼트'는 독일인 감독인 '올리버 히르쉬비겔'의 영화 데뷔작이다. 훗날 그는 히틀러와 나치 독일의 광기와 최후를 다룬 걸작 '몰락'(Der Untergang, 2004)을 만들어내게 된다. 사회적 환경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인 결과 발현된 인간의 어두운 본성을 영화로 그려냈던 그가 2차 세계대전 자신의 조국에서 나라의 이름으로 벌어진 거대한 악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아마 우연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영화에서 독일 국민들과 함께 최후를 맞게 된 히틀러의 오른팔 ‘파울 요제프 괴벨스’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사진_영화 몰락(수입 및 배급 : 피터팬픽쳐스)

 

“다시 말하지만 난 그들을 동정하지 않아! 우리는 한 번도 그들에게 강요한 적이 없어. 우리는 한 번도 우리가 할 것을 감추지 않았고. 그들은 그들 스스로 우리에게 위임했지. 그리고 이제 지금 그들이 그 대가를 치르고 있는 것 뿐이야.”

- 영화 ‘몰락’(Der Untergang) 중에서

 

 

권순재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wanderag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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