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엔 어떤 이야기를 들려드릴까 고민하고 있던 찰나였습니다. 마감일이 촉박해 오면 저도 모르게 마음이 급해지죠. 제 마음을 알고서 일이 터지는 걸까요? 사건이 터진 새벽, 잠 한숨 못 자고 결국 하얗게 불태웠습니다.

 

사진_작가

 

주말 낮 근무를 마쳐가던 저녁시간. 응급실이 한창 확장공사 중인 덕에 먼지에 소음에, 게다가 주말답게 많은 환자의 방문으로 녹초가 되어 퇴근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아내로부터 문자가 오네요.

 

"오늘 집에 빨리 와줘요. 아이들이 엄청 보채서 너무 힘드네..."

 

첫째, 둘째가 유치원에 가지 않는 주말이라, 손에서 떨어지려 하질 않는 7개월짜리 셋째까지, 셋을 혼자 보고 있으려면 힘들지 않은 것이 이상한 일일 겁니다. 그래서 평소 어지간해선 힘들다 소리를 안 하는 아내인데, 오늘따라 더 힘든가 보다 생각하며 급히 집으로 향했습니다.

 

집에 도착해보니 첫째는 만화 삼매경에 푹 빠져있고 둘째, 셋째는 잠들어 있었습니다. 완전히 녹초가 되어 지친 아내는 소파에서 선잠이 들었네요. 인기척에 일어난 아내에게 물으니 셋째가 분유도 먹지도 않고 계속 보채서 다른 날보다 특히 더 힘들었다고 합니다. 지금은 쌔근쌔근 잘 자고 있으니 ‘그냥 컨디션이 안 좋았나 보구나.’ 하며 별생각 없이 넘어갔습니다.

 

혼자서 세 아이들에게 치이고 지친 아내에게 자유시간도 줄 겸 아이들과 산책 준비를 하던 중이었습니다. 방금 잠에서 깬 셋째를 일으켜 기저귀를 갈려고 들여다보니 아뿔싸, 기저귀에는 초콜릿 색 변과 혈흔이 가득했습니다. 그제야 아내가 얘기했던 유난한 칭얼거림이 이해가 됩니다.

 

사진_작가

 

초콜릿 색 변이 어떤 의미인지 궁금하시죠? 장벽에서 장으로 빠져나온 혈액이 우리 몸의 긴 장을 통과하면서 시간이 지나 변색되면 짙은 갈색의 초콜릿 색, 또는 검은 자장면 색을 띠게 됩니다. 간질환 환자에서 또는 위궤양 환자에서 위장출혈이 발생하면 자장면 색 변을 보게 되죠.

 

늦었지만 일단 상황 파악부터 해봐야겠습니다. 언제부터 칭얼거렸는지, 언제 마지막 변을 봤는지 물으니 아침부터 칭얼거리고 먹지 않으려 했다는군요. 아침에 정상변을 보고 이 혈변이 첫 변이라 합니다. 아이 배는 말랑말랑하고 열도 없고... 그렇다면 첫 번째 의심 질환은 인투, 장중첩증이 됩니다.

 

의사들이 인투라고도 부르는 장중첩증에 대해서 먼저 설명을 드려야겠죠? 장은 튜브 같은 긴 관으로 이루어진 기관입니다. 식도와 위를 지나 소장과 대장으로 이어지죠. 그중에서 소장과 대장이 만나는 부분, 또는 소장과 소장 사이에서 문제가 생기는 경우가 있습니다. 흡사 주사기로 약물이 주입될 때처럼, 튜브 안쪽으로 튜브가 말려들어가듯 장이 막혀 복통, 혈변을 일으키는 질환입니다.

 

이 질환은 대부분 6개월에서 2세 사이 건강한 소아에서 갑자기 발생합니다. 보통 심하게 자지러지는 복통이 5~10분 간격으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흔하고 시간이 지나면 구토와 혈변, 그리고 젤리 같은 변을 보는 특징이 있습니다. 장벽에 있는 점액질이 함께 나오는 것이겠죠. 진단은 초음파로 장이 겹쳐져 막힌 부분을 확인하는 것이고 치료는 항문을 통해 공기나 조영 물질을 섞은 액체로 장을 밀어내어 펴주는 치료를 하게 됩니다. 간혹 관장 정복에 실패하거나 장천공이 발생하면 수술적 치료가 필요한 경우도 생깁니다.

 

그림_위키미디어

 

사진_작가

 

혈변을 확인하자마자 급히 달려간 대학병원 응급실에서 다행히 장중첩증 진단과 치료를 잘 마칠 수 있었습니다. 정복을 마치고 보는 첫 변에서 혈흔이 약간 비치긴 하지만 정상변에 가까운 변을 보는 게 어찌나 반갑던지요. 평소 아이를 보다 보면 힘들 때가 많지만 역시 잘 먹고 잘 자고 잘 싸는 게 이렇게 행복하고 감사한 거구나, 새삼 느낍니다.

 

제가 글을 써서 그런가요? 세 아이들이 때맞춰 자꾸 큰 일을 겪는 듯한 생각이 듭니다.

 

"얘들아, 아빠 글감 없어도 좋으니까 그만 도와주고 건강하게 지내자.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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