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동우 선생님 인터뷰

 

정신보건에 영향을 주는 요소는 다양하지만, 그 중 정책이 주는 영향은 무시할 수 없다. 정신보건이 가지는 특수성으로 인해, 많은 예산이 지속적으로 필요한데, 이를 지원할 수 있는 곳은 국가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렇게 중요한 정책을 기획하고 집행하는 과정에서 정신의학 전문가의 의견 수렴은 적절하게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뿐만 아니라, 2017년 5월 '정신건강증진 및 정신질환자 복지서비스 지원에 관한 법률'이 시행되는 과정을 보면 전문가의 의견이 배척되는 모습까지 볼 수 있었다.

당연히 정신보건 정책에 관한 임상 전문가들의 의견과 정책 전문가의 의견은 쉽게 수렴되지 않는다. 각자가 중요하게 바라보는 부분이 너무나 다르기 때문이다. 임상 전문가가 현장에서 환자의 개인적이고, 정신적인 면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면, 정책 전문가는 운영자의 입장에서 사회의 전체적이고, 경제적인 면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렇다면 임상 전문가이면서 동시에 국가 기관에 소속되어 정책을 기획한 경험이 있는 사람은 어떤 입장을 취할까? 물론 둘 다 경험해 본 사람이 취하는 입장이 옳다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이런 경험이 있는 사람은 두 분야의 가운데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그 자신만의 또 다른 시선을 제시할 수 있지 않을까?

 

현재 우리나라의 정신보건을 바라보는 또 하나의 시선으로, 김포한별병원 진료원장으로 재직 중이며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으로 활동하셨던 서동우 선생님을 인터뷰했다.

 

사진_정신의학신문

 

• 정신보건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나요?

대학교에 다닐 때부터 사회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고등학생 때 광주민주화운동을 경험하고, 대학교 때 사회 운동도 많이 하면서 자연스레 ‘사회’에 관심이 생겼다. 친구들은 학교를 그만두고 현장으로 가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그러지 못했다. 우리 세대의 부채 의식이다. ‘친구들은 저렇게 까지 하는데’라는 생각이 가슴을 짓누르고 있었다.

인간을 바라보는데 사회를 바라보지 않고는 인간을 알 수 없다는 생각이 자연스레 들 수밖에 없는 시절이었다. 개인과 사회는 같이 변화해 가야한다. 이 관심이 정신과 수련 중에도 이어져서 정신보건학을 공부했다.

개인적인 차원에서 환자와 의사의 관계도 중요하지만,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해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정신과 의사 개인도 중요하지만 정신과 의사들이 열심히 일 할 수 있는 환경도 중요하고, 환자가 스스로 회복할 수 있는 환경도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보건대학원에서 보건정책 관련 석사를 수료하고, 미국에서 정신보건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그러면서 국책 연구기관(한국보건의료연구원)에 취직을 하고 관계 된 일들을 해나가기 시작했다.

 

 

보건복지부에서는 어떻게 일을 시작하게 되었나요?

보건복지부에서 일을 시작한 것은 정신보건법이 최초로 시행되면서부터다. 한국에서 정신보건법이 최초로 시행되면서 이 방면에 전문가가 필요했다. 한국보건의료연구원 기관장님이 손학규 장관에게 다리를 놓아서 특채로 정신보건과 사무관으로 일을 시작했다.

우리나라에도 정신질환자의 치료와 재활을 위해 정신보건법이 만들어지고 정신보건과가 생겼다. 정신질환이 만성질환의 하나로만 취급되다가 별도의 과로 만들어졌다는 것은 중요한 변화다. 이는 우리나라 여러 건강문제중에서 정신질환의 우선순위가 높아진다는 말이다.

초반에는 다양한 업무가 많았지만 환자나 보호자로부터의 민원 전화도 많이 받았던 기억이 난다. 이후 정신보건법의 구체적 시행과 관련된 행정을 구체화하는 작업과 정신보건발전을 위한 중장기계획 수립도 하기 시작했다. 또한 의료급여제도, 건강보험수가, 노숙자, 노인, 아동, 장애인복지, 음주문제, 치매 등 정신보건과 관련이 있는 다른 부서나 다른 부처 업무에도 관심을 갖고 참여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정신질환의 특수성에 대한 고려 없이 많은 정책이 수립되어 가다가 정신보건의 목소리가 반영되도록 노력했다고 할 수 있다.

(내가 한 일 중에 가장 자랑스러운 것은 서울과 경기도에서 시범사업으로 시작했던 지역사회 정신보건 사업을 전국으로 확산하기 위해 노력했던 일이다)

 

 

• 정신보건에 대한 정부의 인식이 어떻게 변화되어 왔는지?

특정인의 인식의 변화보다 시스템이나 구조의 변화를 봐야 한다. 예전의 정신보건이 후진적이었던 것은 우리나라 자체가 후진적이었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사회자체가 농경사회나 산업사회에 머물러 있었고, 권위적이고 규격화되어 있었다. 이때는 자연스럽게 정신과 환자들이 잠재적 위험성으로 인식된다.

우리나라는 IMF를 통해서 사회에 대한 이런 관점이 잘못 된 것이라고 인식하기 시작했다. 개인의 창의성과 인권이 중요함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정신보건에 대한 인식 역시 이에 맞추어 바뀌기 시작했다. 1997년 정신보건법이 생기면서 정신보건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으로의 변경을 시작하게 되었다.

부정적이고 어두컴컴한 장기입원수용 중심의 억압적인 시스템에서, 긍정적이고 밝은 탈원화 중심의 개방적 시스템으로 바뀌고는 있지만 여전히 부족한 것이 많다. 아직도 옛날 관성에 의해서 남아있는 문제점들이 많이 있기 때문이다. 굳어진 과거의 틀속에굳어진 후진적인 정신과 건강보험 및 의료급여제도도 바꾸기가 어려운 것도 아쉽다.

 

사진_정신의학신문

 

사회 시스템 변화에 따른 정신보건의 변화에 대해서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해 주세요.

농경사회는 물리적으로 서로 거리가 있는 환경이다. 또한 씨족 사회기 때문에 정신질환자가 배척당할 일이 적었다. 농업이라는 일 자체도 정신질환이 있더라도 할 수 있는 일이다. 이때는 정신질환이라기 보다는 귀신들린 사람으로 인식하고 가족 친지들이 가엾게 여기며 보살폈다.

산업 사회가 되면서 물리적 거리가 가까워졌다. 아파트에서는 밤에 잠을 자지 않고 소리를 지르거나 쿵쾅거리면 층간 소음 문제로 살인도 나는 사회다. 또한 이 당시에는 정신질환이 유전병이고 난치병이며 전염병을 옮기는 노숙하고 부랑하는 사람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당연히 분리하고 수용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정보 사회는 인구가 줄어들고 생산량이 부족한 시대다. 또한 좋은 약이 투여 되면서 만성화 되는 것을 막고 기능이 떨어지지 않게 유지할 수 있다. 조금만 신경 써서 도와주면 사회 구성원으로 역할을 잘 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정신질환 자체가 치료불가능한 유전적 질환이라기 보다는 환경의 스트레스도 중요하게 고려되어야 하며 치료가능한 질환이라는 방향으로 인식이 바뀌고 있다. 누구나 정신질환에 걸릴 수 있다고 질병관 자체가 바뀌고 있으며 실제로도 그렇다. 앞으로는 이런 정신보건의료 시스템은 유전적으로 결정된 소수의 특별한 사람만을 위한 특별한 서비스가 아니라 모든 사람을 위한 보편적 서비스라는 인식이 확산될 것이다.

 

 

현재의 정신보건법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일부 개선된 점도 있다고 생각한다. 민간병원의 비중이 높은 우리나라 환경에서 정신질환자의 입원 결정에 있어서 정신과 의사의 결정에 견제 받는 시스템이 있어야 한다는 취지에는 어느 정도 동의한다. 하지만 현행 법에는 그 시스템이 제대로 마련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사법입원 제도가 반드시 좋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일단 사법부에서 일부 선진국처럼 준비가 되어있지 않을 거다. 사법부가 이 분야에 얼마나 이해를 하고 있을까? 권력기관인 사법부 논리가 정신보건의 특수성을 압도하게 되어 치료받은 환자나 보호자, 의료기관 모두 상당한 불편이 예상된다. 선진국마다 다양한 제도가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가 현행 제도의 개선으로 갈 것인지 사법입원 제도로 바꿀 것인지 생각해 볼 문제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영국처럼 법조인의 참여가 확대된 정신보건 심판위원회가 좀 더 활성화되고 실질적인 운영이 되도록 하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다.

다른 맥락에서는 나아진 부분이 보이지 않는다. 의료급여 시스템이 획일화 되어 있어서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잘하는 병원은 더 잘해주고, 나쁜 병원은 경영이 어렵게 되어 자연적으로 퇴출되도록 해야한다. 그런데 의료급여가 거의 획일화 되어있기 때문에 나쁜 병원은 잘 되고, 잘하는 병원은 힘들다. 정신요양원, 기도원, 문제가 있는 병원들에게는 큰 불편함이 없는 법이다.

 

• 좋은 병원과 나쁜 병원은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요?

병원이 너무 폐쇄적인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환자와 가족들의 의견이 투영되고, 시스템과 절차들이 개방적이고 투명해지면 저절로 해결 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현재는 인력 기준과 의료 행위가 이루어지는 과정을 보고 결과를 예측하는 시스템을 활용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사진_정신의학신문

 

• 현 정신보건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리나라는 빠르게 변화하긴 하지만, 제대로 변화하지는 못하고 있다. 사회가 안정되고 경제가 잘 돌아가기 위해서는 마음의 건강이 중요하다는 우선순위 문제가 해결이 되어야 한다. 아직도 정신보건에 대한 예산은 다른 예산들보다 우선순위가 매우 낮다. 사람에게는 밥만큼이나 마음의 양식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 필요가 있다. 당연히 정신건강을 위해 적절한 세금을 거두고 비용을 지불하도록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야 한다.

이를 위해 국민들이 공감할 수 있는 좋은 정보를 많이 제공해야한다. 국민들의 시각에서 우울증이 되면 일의 능률이 얼마나 떨어지고, 분노를 조절하지 못하면 얼마나 많은 사회경제적 비용이 드는지 알 수 있게 도와줘야 한다. 국민 정신건강이 개선되면 무엇이, 얼마나, 어떻게 좋은지 데이터도 만들고, 국민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어야 한다.

이는 정신과 의사만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정부와 정신과 의사들은 물론, 많은 관련 인력들이 같이 해나가야 한다. 정신과 치료와 정신보건서비스에 대한 안 좋은 편견을 벗기고, 좋은 이미지로 쉽게 다가갈 수 있게, 심리적, 지리적, 경제적 접근성을 낮추도록 해야 한다.

 

 

• 서동우 선생님 약력

서울대의대 졸업.
서울대병원 전문의수료.
존스홉킨스 정신보건학 박사.
보건복지부 정신보건과 사무관.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
현) 김포한별병원 진료원장/김포정신건강증진센터장

 

정정엽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광화문숲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한양대 의과대학 학사석사, 서울고등검찰청 정신건강 자문위원
보건복지부 생명존중정책 민관협의회 위원
한국산림치유포럼 이사, 숲 치유 프로그램 연구위원
저서 <내 마음은 내가 결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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