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김정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매일 뛰고 나는 누나에게"


오늘 하루도 정신없이 보냈지?
마음이가 걷고 뛰기 시작하니깐 누나는 뛰고 날더라. 고생했어.
마음이가 하루하루 원하는 게 많아지는 것 같아.
물론 그게 잘 자라고 있다는 증거긴 하지만, 부모 입장에서는 좋으면서도 힘들겠지.
어제 보니까 마음이가 현관 앞에서 낑낑거리고 있더라고.
그래서 난 ‘왜 저러고 있는거지?’ 했는데, 누나가 와서 ‘지금은 밖에 나가면 안 돼’ 하더라.
신기했어, 어떻게 그걸 알아들은거야.
아무튼, 누나 말을 듣고 마음이가 슬픈 토끼마냥 시무룩해지는 걸 보니깐 안쓰러웠어.
그런 마음이를 위해 오늘은 이 그림책을 준비했어.

 

사진_ 두드려 보아요(저자 안나 클라라 티돌름 / 사계절출판사)


‘두드려 보아요’라는 책은 책장을 넘길 때 마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는 것처럼 구성돼있어.
거기에다가 책장 한 장 한 장이 두꺼워서, 단순히 책장을 넘기는 게 아니라, 문을 여는 듯한 느낌이 들어. 물론 책장이 찢어질 일도 없겠지.
이건 아마 누나한테도 장점일거야. 마음이 손에 들어갔던 책은 다 망가졌잖아.

 

구성은 간단해. 책을 펴면, 책장 한가득 그려진 문이 나와.
그 그림 문을 진짜 문 두드리듯 똑똑 두드리고, 책장을 넘겨서 문을 열면 돼.
그리고 문 너머 방 안에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마음이랑 보는거야.
그렇게 정신없이 보다 보면, 오른쪽 모퉁이에 다른 색 문을 찾을 수 있어.
그러면, 다시 똑똑 하고 들어가는거야.
마음이가 밖으로 나가서 놀 수 없을 때, 이 그림책과 같이 놀면 충분히 위로받을 수 있어.
그렇게 열고 싶었던 문을 몇 번이나 열 수 있으니까!

 

사진_픽사베이

 

그러고 보니 마음이는 이제 까꿍 놀이를 재미있어 하지 않더라.
왜냐하면 어떤 대상이 눈앞에 보이지 않더라도, 세상에 계속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이제는 알고 있거든. 돌 이전에 마음이는 자신의 눈 앞에서 어떤 대상이 안 보이면, 그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거라고 알고 있었어. 
그래서 까꿍 놀이가 마음이에게는 아무것도 없는 빈손에서 장미꽃을 꺼내는 마술이었지.
그러니 까꿍 놀이를 그렇게 좋아할 수 밖에 없었던거야.
지금은 누나가 안보여도 마음이가 혼자서 잘 놀 수 있잖아.
눈 앞에 누나가 없어도, 이 세상 어딘가에 계속 존재는 하고 있다는 개념이 생겼기 때문이야.

까꿍 놀이를 졸업했다고 해도 마음이는 아쉬울 게 전혀 없어.
이제 두 다리로 뛰어다니면서 세상을 탐험할 수 있으니까.
그래서 뛰어다니는 시간이 모자라기만 한 마음이에게는, 문을 열기만 하면 새로운 세상을 만날 수 있는 이 책이 딱일거야.

이렇게 마음이가 정신없이 그림책의 문을 열어서 탐험하다 보면,
어느덧 처음 열었던 파란색 문을 다시 만나게 돼.
마지막 문을 열면 보름달이 환히 떠있는 들판이 보여.
난 이 장면이 좋아.
책장을 넘기면서 경험한 환상 속 세계가, 현실과 묘하게 섞여 들어가게 되거든.
마지막 장에 갑자기 우리 집 거실이나 침실이 나오면,
지금까지 경험한 환상이 현실과 대비되면서 속상할 수도 있잖아.
마치 너무 행복한 꿈에서 깨면 오히려 슬픈 것처럼.

 

사진_픽사베이

 

환상의 기쁨을 깨지 않고 부드럽게 현실로 돌아올 수 있게 해주기 때문에,
이 그림책 여행이 좀 더 행복하게 느껴져.

이런 그림책을 보면 나는 마음이 좀 편안해져.
어른인 우리도 가끔 현실에서 피하고 싶을 때가 있잖아,
그 순간 그림책으로 피해서, 환상 속을 여행하다가, 부드럽게 다시 현실로 돌아올 수 있기 때문인가 봐.
내가 느낀 이 편안함을 누나도 마음이와 함께 느낄 수 있길 바랄게.


2017.9.2

마음이 삼촌 겸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김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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