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우리는 진료 외의 상황 속에서도 의사에게 많은 것을 기대해야만 할까?

 

그림_저울질하는 사람(이중섭,1941)

 

전문직 여부와 상관없이, 한 개인이 인간으로서 지녀야 할 모든 덕목들을 함양하거나 삶의 모든 분야에서 훌륭한 결정을 할 수 있지 않다. 한 사람에게 가질 수 있는 나약함을 피하고, 악덕을 섬기지 않으며, 편견 없이, 꾸물거리지 않고, 심술이나 탐욕과 같은 마음은 가지지 않는 마치 “신화에 등장하는 인물이 되기를 바라는 것은 큰 욕심이다.  

 

의료 전문직에게 좀 더 고차원적인 개인 특성을 바라며 이렇게 하도록 부여하는 기준들은 이와 마찬가지로 합당해 보이지는 않다. 의료 행위 중 발생하는 실수들을 인정하는 많은 수의 전문적인 법적 장치(apology policies, medical malpratice suits, morbidity and mortality rounds)들은 의사에게 좀 더 고차원적인 개인 특성을 바란다는 것의 증거이다.

 

내용 자체의 타당성의 여부와 상관 없이 환자는 삶에서 범죄를 저지른 의료 전문직은 결코 신뢰해서는 안 된다고 대부분 생각한다. 이 말은 의사들이 고차원적인 개인 특성을 가지기를 바라는 명분 중 가장 흔히 이야기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명분은 충분치 않다. 환자가 단순히 그러하기를 바라기 때문에 의사에게 가장 엄격하고 높은 기준의 행동 수칙을 유지하도록 요구하는 것은 의사가 왜 그렇게 행동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규범적인 이유를 제시하지 못한다.

 

사진_위키미디어공용

 

이러한 물음에 대한 대답의 시작은 우선 왜 우리가 의사를 가치 있게 여기는지에 대한 생각으로부터 시작한다. 사람들은 임상적 방법론(clinical methodology)을 통해 의사가 수련 받았기 때문에 그들을 가치 있게 생각하는가? 혹은 그들이 말 그대로 “선한 사람”들이기 때문인가?

 

나는 아마도 첫 번째 이유 즉, 임상적 방법론을 통해 의사들은 수련을 받고 이를 통해 얻은 믿을만한 임상적 역량과 전문지식 때문에 사회가 의료 전문직을 가치 있게 생각한다고 믿는다.

 

예를 들어 수술이 불가능한 뇌종양을 진단 받은 환자가 있다고 생각해보자. 과연 그녀는 오래전부터 믿음직스러운 환자 의사 관계를 형성한 평소에 봉사활동도 열심히하고 인격적으로도 훌륭하다고 소문이 난 일반의(GP)에게 치료법을 구하고 싶을까? 아니면 막되먹은 놈이라는 평판이 있지만 좀 더 획기적인 치료법을 제공할 수 있는 전문의에게 치료법을 구하고 싶을까?

 

환자는 아마도 이전에 관계를 형성하지 않았던 전문의를 찾아 갈 것이다. 환자는 이 전문의의 성격에 대해서 전혀 모르지만 그가 가진 임상적 역량이 바로 이렇게 선택하도록 만들 것이다. 물론 의사가 만일 좋은 캐릭터의 소유자라면 이것은 분명히 가산이 되는 부분이다.

 

하지만 시한부와 같은 환자들의 경우 과연 별로 좋지 못한 개인 성격을 지니고 있다하여 전문의의 전문지식을 거부 할 것인가? 이러한 사고방식은 전문의 의사면허 교부와 규율과 관련된 법에도 반영되어 있다. 이는 단지 의사로서 필요한, 최소한의 의사로서의 역량을 요구한다. 이것은 결코 모든 면에서 완벽한 의사를 요구하고 있지 않다.

 

사진_픽사베이

 

그러나 이러한 관점에서만 생각하게 될 경우 또 다른 문제가 있다. 의료 전문직을 임상적 역량을 기반으로만 판단하고 다른 중시되는 특성(신탁 의무가 가져야 할 원칙)들은 언급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환자는 나무랄 만한 점이 있더라도 노련하고 숙련된 전문의를 마음씨 고운 일반의보다 선호한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주장하기를 합리적인 환자라면 만일 전문의가 환자의 이익보다 자신의 이익을 우선시 한다면 그러한 전문의를 환자는 더 선호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다.

 

한 예를 상상해보자. 한 외과의사가 있다. 그는 누구와도 견줄 수 없는 전문지식을 가지고 있으며 가장 정교한 수술을 정밀하고 조심스럽게 수행해낸다. 그의 기술적 자질과는 상관없이 만일 그가 환자의 동의 없이 자신이 원하는 술기를 시행하고 개인 자율권(autonomy)과 같은 환자의 권리를 침해한다면 그를 과연 역량 있는 의사라고 불러도 되는 것일까? 개인적으로 그는 결코 역량 있고 훌륭한 의사라 불릴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의료 전문직을 판단하는 데 있어 중요한 것은 임상적 역량과 더불어 신탁 의무(fiduciary duty)의 원칙을 얼마나 충실히 이행하는가를 기준으로 삼아보자. 그리고 전문지식을 제대로 갖춘 의사가 환자에게 보이는 자세가 앞서 언급하였던 올바른 태도들이었다고 생각해보자. 이런 의사들에게 직무에 필요한 사항 이상의 것 혹은 진료 외 시간에 그에 부합하는 행동을 하도록 바랄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한가지 예를 들어보겠다. 많은 사람들은 다음과 같이 생각할 것이다. 허위 서류를 정부에 제공한 의사라면 아마도 자신의 환자들에게도 정직하지 않을 것이라고 여기며 해당 의사의 역량마저 심판대 위에 오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가정은 옹호받을 수 없다. 일관된 도덕 행위에 대한 사회 과학 연구 조사에 따르면 성격 특성들이 다른 여러 분야에 걸쳐 동일하게 나타날 것이라는 가정은 명확한 인과관계가 없음으로 밝혀졌다. 심리학 학자들은 오래기간동안 사람의 행동은 기질적인 것(일관된 성격 특성에 기반)이 우선이가 아니면 상황적인 것(놓인 상황이나 환경에 따라)이 우선되어 작용하는가에 대하여 논의를 벌여 왔다.

 

상황에 따른 행동주의자들은 행위자가 놓여 있는 맥락의 문제라 믿는다. 이 말은 즉 자신의 개인적인 삶에서 사기를 치거나 혹은 기만하는 경향이 있더라도 그것이 전문직으로서의 삶에서도 사기를 치거나 기만할 가능성이 반드시 높을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오늘날 대부분의 현대의 이론가들은 행동은 기질적인 요소와 상황적인 요소 모두로부터 영향을 받아 유발된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이 두 가지의 균형 사이에서 행동은 유발되지만 이는 상황에 따라 매우 다르다고도 한다.

 

예를 들면 기질적 혹은 개인 특성에 기반 한 요소들은 때때로 직장과 같은 “strong situation”에서는 행동에 덜 반영될 것으로 여겨진다. 이러한 strong situation에서 개인 행동은 매우 한정되어 있으며 오히려 규범이나 정해진 대본 혹은 업무의 일과와 같은 사항에 의해 이끌린다. 쉽게 말하자면 집에서 설거지를 미루고 싱크대에 내버려두는 사람일지라도 직장에서는 완벽하게 일처리를 하는 사람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개인별 특성(personal characteristic)이 전문직 행위를 예측할 수 있게 해주는 요소일지라도 의사를 개인의 특성을 기반으로 평가하는 일은 규범적으로 정당화될 수 없다.

 

한 가지 사례를 상상해보자. 후향성 연구를 통해 보타이를 매는 의사가 80퍼센트 정도 더 의료 과오를 저지르는 경향을 보였다고 하자. 분명히, 이러한 단 하나의 연관성으로 사회적 비난을 정당화 하거나 이를 전문직 규율로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의사의 부족한 교육이라던지 부실한 수련 그리고 능숙한 의료 행위의 기반을 형성해주는 특성(환자 이익 우선, 의료윤리 등)들이 부족한 것에 대한 개별적인 확인 없이는 이를 정당화할 수 없다.

 

사진_픽사베이

 

요컨대 만일 사회가 의료 전문직을 가치 있게 여기는 이유가 의사들이 가지고 있는 믿을 만한 임상적 능력과 이러한 능력의 수행을 신탁 의무의 원칙을 기반으로 행하기 때문이라면 우리는 의사를 평가하는 것에 있어 이러한 것을 기반으로 평가해야지 업무 외 시간의 행동들로 그들을 평가해서는 안 된다. 의사가 술집에서 타인과 시비가 붙는 경향이 강한 것이 그 의사가 전문직으로서의 역할을 충분히 수행 하지 못할 것이라는 지표가 되기에는 부족하다.

 

물론 환자 개인이 일차 진료의를 정할 때 의사의 행동에 대한 기대치를 자유롭게 설정해서 바라보아도 된다. 어떤 사람은 정기적으로 종교 활동하는 사람을 일차 진료의로 선호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선호는 개인의 선호일 뿐이지 전문직으로서 혹은 사회적으로나 법적으로 기대되는 의사의 행동에 도덕적으로 고려해야 할 요소가 아니다. 의료 전문직에게 다른 나머지 사회 구성원들도 함양하기 어려운 덕목들을 무조건적으로 보이기를 요구하는 것은 비현실적일 뿐만 아니라 의사에게 요구되는 환자와의 의사소통 능력이나 돌봄의 자세에 있어서도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사안이다.

 

 

의사에 대한 잣대 - 한 사람으로서의 의사, 전문직으로서의 의사 (1) 왜 의사인가?

 

 

 

저작권자 © 정신의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