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MBC 웹드라마 퐁당퐁당 러브

'퐁당퐁당 러브'는 고3 수험생 단비가 700년 전 기우제를 지내던 조선 구중궁궐 한가운데로 떨어지면서 시작되는 '수포자'(수학포기자)와 조선 왕과의 로맨스를 다룬 웹드라마이다. 새롭지 않은 스토리인데도 한 달도 되지 않아 조회수가 600만을 돌파하고 온라인에서 시즌2 요구가 빗발치고 있을 정도로 인기다. 이른바 '헬조선'에서 '금수저' 없이 태어나 '수포자'가 되면서 평생 '루저'가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시달리는 아이들의 모습을 작위적인 느낌 없이 단비 캐릭터에 입힌 것이 그 첫 번째 이유라고 연합뉴스에서는 설명하고 있다.

 

MBC 드라마국 김지현 PD는 2014년 말 모교에 강연을 갔다가 자신을 '수포자'(수학포기자)라고 소개한 학생으로부터 질문을 받았다고 한다.

"수포자라서 좋은 대학을 못 가는데도 PD가 될 수 있겠느냐"는 물음이었다.

아이들은 수학을 포기하면 인생을 포기해야 한다고 믿고 있었다. 김 PD는 쓸모없어질까 봐 두려워하는 아이들에게 힘을 북돋아줄 드라마를 만들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고 한다.

 

‘수포자’ 되는 건 어쩔 수 없어요.

 

‘수포자’라는 신조어가 학생들 사이에서 유행처럼 번진 지 오래다. 수학을 포기한 사람들이란 뜻이다. 전 과목을 통틀어 수학만큼 많이 투자하고 눈물 흘리게 되는 과목은 없다. 그래서인지 수학에 투자할 노력을 일찌감치 거두고 차라리 영어나 국어에 집중하는 이들이 많다. 유독 수학이 학생들 사이에서 난공불락으로 통하는 까닭은 뭘까?

여러 설명들이 있겠으나, 기본적으로 수학은 매우 고위의 다양한 인지기술(cognitive skill)을 요구한다는 점이 특기할 만하다. 먼저, 언어기술(linguistic skill)이 있어야 수학용어에 대한 이해가 가능하고, 언어로 표현된 문제를 수학기호로 변환할 수 있다. 지각기술(perceptual skill)은 표현된 수학기호를 알아보고 이해할 수 있으며, 수의 집합을 일정한 규칙에 따라 정렬하는 능력을 말한다. 주의기술(attentional skill)은 숫자를 정확히 베끼고 연산기호를 제대로 파악하는 기능이다. 마지막, 수학기술(mathematical skill)은 기본적인 가감승제와 일정한 순서에 따라 연산을 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수학 문제 하나를 풀려고 해도 이들 기능이 동시에 복합적으로 작용해야 하니, 학생들 입장에선 머리가 지끈거리거나 멍해져버리기 십상이다. 더구나 수학은 일정한 수학규칙을 근간에 두더라도 매우 넓은 영역의 응용문제를 생산해낼 수 있기 때문에, 단순한 암기에 의한 학습방식과는 애초에 거리를 두는 학문이다.

그런데, 수포자를 두둔할 만한 소재가 하나 있다. 단순히 개인의 노력부족이나 열악한 교육환경 탓이 아니라, 애초에 수학을 잘할 수 없게끔 태어난 ‘그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전 세계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들이 가장 즐겨본다는 정신질환의 진단 및 통계 편람(5판)에는 ‘특정 학습장애(specific learning disorder)'라는 항목이 기술되어 있다. 이 ‘공부를 못하는 질병'에는 하위 항목들이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수학적 계산능력의 손상(impairment in mathematics)’이다.

이 질병에 걸린 사람은 숫자 계산에 결함이 있고, 수학적 규칙을 기억하기도 어려우며, 수학적 개념을 이해하거나 추론하는 능력이 떨어져 있고, 수학적 과정을 문제해결에 적용할 수 없다. 이들은 공식 집계로 초등학생 이하 아동 중 1-6%에 해당하며, 중, 고등학생까지 더한다면 수치는 훨씬 올라갈 것으로 생각된다.

이들 수포자의 발생 원인에 대한 가설로서, 우측 후두엽의 뇌활성도 저하, 출생시 저체중 등이 언급되나 확실치는 않다. 이유야 어떻든 이들은 수학을 일찌감치 포기하게 되고 곧 학업은 지루해지게 된다. 수학을 못하는 이들 중 많은 수는 읽기장애나 쓰기장애도 함께 갖고 있어 설상가상이다.

이들이 초등학교 4-6학년이 되어서야 자신이 수학적 능력에 뭔가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므로 꽤 오랜 시간 '좌절감'이나 '부적절감'을 경험하게 된다. 이러한 '부정적 감정'은 학교거부나 무단결석, 비행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수학만 포기하는 게 아니라 인생까지 포기하는 것처럼 군다면,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선천적으로 수포자로 태어났는데 부모나 교사가 좋은 수학성적을 내길 끊임없이 원한다면, 안타까운 일들이 벌어지는 것은 명약관화다. 물론 수학을 잘 할 수 있는데도 수포자의 길을 걷는 것도 문제겠지만 자신의 인지기능 중 무엇이 약점이고 강점인지 파악해볼 기회도 갖지 못한 채 학업 전부를 포기해버리는 건 분명 큰 손실이다.

 

드라마는 우리에게 "쓸모없음에 너무 얽매이지 말라"고 넌지시 알려준다. '수포자' 굴레에서는 벗어났지만 여전히 고단한 일상을 보내는 20,30대들에게 인기를 끄는 것도 그 덕분이다.

"사람이 쓸모가 없으면 좀 어때, 사람인데", "아직 오지 않은 날들 때문에 오늘을 버리고 도망하지 마라"는 이도의 말에 울컥했다는 누리꾼들이 적지 않다.

 

 

김일빈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강남차병원 교수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한양대학교 구리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임상 조교수
한양대학교 뇌유전체의학(자폐) 석사
KAIST 뇌유전체의학(자폐, 조현병)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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