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문 선생님 인터뷰

 

2017년 7월 18일 정신건강복지사업 일자리 창출 및 비정규직 정규직화 방안에 대한 국회토론회가 열렸다. 문재인 대통령의 공공부문 일자리 81만개 충원 공약에 발맞추어 보건의료노조, 양승조, 정춘숙, 윤소하 국회의원 주최로 개최되었다.

외현적 확장을 보여주기 위해 정신건강증진센터의 개수만 늘리느라, 정작 정신건강복지사업의 소프트웨어를 담당할 정신보건전문가들의 처우는 무시한 채 진행되어 왔던 정신건강복지사업에 무척이나 고마운 소식이다.

이 자리는 전국 각지에서 올라 온 정신보건전문가들로 가득 채워졌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반가운 얼굴이 있었다. 정신보건전문가들이 마치 아버지를 바라보는 듯한 존경과 신뢰, 따뜻함의 눈길이 향하는 곳에는 이영문 선생님이 자리하고 있었다.

 

 

지역사회정신보건과는 어떤 인연인가요?

전공의 시절 환경치료를 공부할 기회가 있었다. 당시에는 모든 정신과 의사들이 그렇듯 나 역시도 정신분석에 관심이 있었다. 하지만 충남 홍성의 한 정신병원으로의 우연한 파견 근무가 나의 진로를 바꾸었다. 그 병원의 현장은 말로 설명하기가 힘들었다. 전문의 취득 후 그 병원으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자리가 없었다. 할 수 없이 우리나라 최대 정신병원인 용인 정신병원에 지원을 하였다. 당시에는 거기가 정신질환자 수용의 대명사였다.

용인 정신병원에서 직업재활부터 시작해서 환경치료를 기반으로 여러 활동들을 하였다. 94년도에 아주대 병원으로 옮기면서는 낮병원을 중심으로 운영을 하기 시작했다. 또한 정신보건연구회 활동도 지속적으로 하면서 정신보건법을 만드는데 힘을 보탰다. 96년에는 경기도에서 시행하는 정신보건 시범사업에 남정현 선생님과 함께 참여하였다. 시범 사업은 농촌형과 도시형으로 나누어 진행하였다.

농촌형 정신보건센터는 양평에서 남정현 선생님께서 담당을 하셨고, 도시형 정신보건센터는 수원에서 내가 황태연 선생(현재 국립정신건강센터 본부장)과 함께 시범사업을 하였다. 97년부터 경기도 정신보건사업이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 기획평가단을 만들고 초대 단장이 되어 정신보건현장을 만들기 시작하였다. 이후 정신보건센터가 전국적으로 확산이 되는 현장을 함께하면서 여기까지 오게 됐다.

 

• 정신보건연구회에서 정신보건법을 만드는데 힘을 보탰다고 하셨는데 그 과정이 어땠나요?

1980년 대 중반, 보건사회부(현재 보건복지부)에서 정신보건법 안(보건사회부안)을 처음으로 제시했다. 1986년 아시안 게임과 1988년 올림픽을 앞두고 거리의 부랑자들을 가만히 두고 볼 수 없었던 것이다. 오로지 정치적 목적을 위한 수용 중심의 안이었다. 당시 대한신경정신의학회에서 김광일 선생님, 이부영 선생님, 이호영 선생님께서 주축이 되어 이를 막아내셨다. 이때 정신보건특별위원회를 조직하였고, 이 정신보건특별위원회가 지금의 정신보건위원회의 전신이다.

정신보건특별위원회에서 보건사회부가 제시한 법안을 검토하고 수정하여 1991년 김이영 선생님을 중심으로 ‘정신의학회안’을 새롭게 제시하였다. 하지만 이 역시도 여전히 병원 중심의 방안이었다. 이에 1992년 대한신경정신의학회와는 별도로 사회 정신의학에 관심이 많은 정신과 선생님들 중심으로 민간 ‘한국정신보건연구회’를 발족하였다. 이 한국정신보건연구회에서 장기 입원을 없애고 탈수용화 방향으로 진행하자는 안을 다시 제시하였다.

‘정신의학회안’과 연구회에서 제시한 안은 같은 정신과 의사들이 제시한 안 들이지만 내용은 달랐다. 초기 서비스 내용은 유사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다른 방향으로 향하게 될 안들이었다. 병원 중심으로 정신보건이 운영이 될 지, 사회 중심으로 정신 보건이 운영이 될 지의 문제였다. 정답은 당연하지만 이 당시 정신과 의사들에게는 주도가 어디인지가 중요한 문제였던 것 같다. 아직도 이런 편협함을 버리지 못하는 정신과 의사들이 많이 있다. 정신보건이 제대로 펼쳐지기 위해서는 정신과 의사들의 리더십이 중요하게 작용한다. 넓게 보고 정신과 의사가 아닌 다른 직역의 전문가들과 협치가 중요하다.

이 ‘정신의학회안’과 연구회에서 제시한 안, 그리고 행정부에서 제시한 안을 절충해서 1995년 우리나라 최초로 정신보건법안이 국회를 통과하였다. 이때, 정신질환에 대한 정의를 새롭게 내리고, 지역사회 정신보건을 도입했으며, 정신과 병원 병상수를 300병상 이하로 제한하는 등 여러 가지 변화가 있었다. 또한 정신요양시설의 확산을 막으며 정신전문병원이나 사회복귀시설로 도입하려는 초기 안을 제시하였다.

그 후 중요한 사회적 이슈가 발생하고, 사회적 요구들이 변함에 따라 정신보건법이 개정되어 왔다. 그런데 이번 개정법처럼 사회적 요구도 무시하고 전문가 공청회를 거치지도 않은 채 엉터리로 법을 개정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 이번 정신건강복지법에는 어떤 문제들이 있나요?

이번에 새롭게 개정된 정신건강복지법의 가장 큰 문제점은 ‘정신질환의 정의’ 자체가 잘못 되었다는 것이다. 마치 헌법에서 국민의 자격을 좁혀 놓은 것과 같은 의미이다.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치에서, 국민이 우리가 생각하는 국민이 아니라면 무슨 소용인가? 그 다음 이어지는 국민을 위한 법적 규제와 지원들은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다. 정신질환의 범위는 한국내 편견의 문제가 아닌 과학적 합의로 도출된 근거중심의 산물이다. 주의력결핍 과다행동장애부터 치매에 이르기까지 사고와 감정, 행동(행위)에 장애를 일으키는 모든 질병이 정신질환에 포함된다. 이를 단순한 행정상의 편의로 범위를 좁혀 놓은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두 번째, 장기 입원을 조장하는 몇몇의 정신병원들도 문제이지만 더 큰 문제는 정신요양원이다. 많은 인권문제들이 정신요양원에서 발생하고 있다. 5년, 10년, 평생을 요양원에 갇혀 지내는 경우가 태반이다. 그런데 이번 개정법에서는 이 부분을 규제할 의지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시장군수 단위로 허가권한이 내려가 질낮은 정신요양시설의 양산이 우려되는 것이다.

세 번째, 세계 어디에도, 어느 분야에도 전문가가 내린 결정을 다른 동료 전문가가 평가하는 경우는 없다. 단순히 생각해도 전문가를 전문가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이는 정신과 의사들의 자존심 문제이고 우리들은 이런 현실을 부끄러워해야만 한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는 정신과 의사들의 대표로서 이를 책임져야 한다. 이는 행정적 제소가 필요한 부분이다. 지금까지 나타난 인권문제들과 정신보건사업의 실패를 단순히 정신과 의사들의 잘못으로만 생각지 않고는 이런 발상이 나올 수 없다. 이런 발상을 한 사람이 누군지 너무 궁금하다.

네 번째, 이와는 반대로 입원적합성 평가에는 전문가가 없다. 단순한 서류 작업에 행정적인 비용만 늘리는 행위를 추가하였다.

다섯 번째, 2인 진단을 통해 환자의 개인 정보가 이 병원, 저 병원으로 돌아다니게 된다. 한양대에서 진료를 봤는데, 서울대에서도 이 환자가 한양대에서 진료한 기록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건 개인 정보에 관한 것이다. 환자, 보호자들이 대규모 반대를 해야 되는 부분인데 산발적인 작은 목소리만 나올 뿐이다. 이 역시도 학회 차원에서 환자와 보호자들을 제대로 리드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물론 서구 정신보건에서는 정보의 공유가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정보공유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존재할 때 가능한 일이므로 별도의 논의가 필요한 것이다.

 

 

제대로 된 정신보건법이 개정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될까요?

정신보건법의 기본 철학은 정신장애를 앓는 사람이 지역 사회 안에서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것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근본적인 취지는 가장 낮은 곳에서 시작해야 한다. 환자와 보호자가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의료계의 수직적 모형, 행정부의 수직적 모형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런 권위와 인위적인 위계에서는 불평등과 폭력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의사, 환자, 가족, 정신보건전문가 집단이 모두 같이 회의하고 치료 방향을 결정하는 평등적 개념이 도입되어야만 한다.

해리 스택 설리반에 의하면 정신의학이란 관계에서 발생하는 정신적 갈등을 다루기 위해 나온 학문이다. 인간사회, 인간내면의 갈등을 다루기 위한 것이다. 이 정신의학의 중심에 있는 정신과 의사들이 스스로 가지고 있는 기득권을 내려 놓아야 한다. 역설적이지만 기득권을 내려 놓으면 오히려 의사들의 위치는 더 공고해 질 것이다.

 

좋은 자리이지만 조금 안타까운 부분이 있습니다. 그렇게 노력하던 정신보건부분의 확장과 개선이 정신보건의 필요성에 의한 것이 아니고 일자리 창출이라는 공약 때문이라는 점입니다.

꼭 그렇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세계보건기구는 2005년 ‘정신건강 없이는 어떤 건강도 없다’는 선언을 통해 정신건강이 국가와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과 중요성을 알렸다. 현 정부도 이를 알기에 이 분야에서 일자리 창출을 시도하는 것이다.

사실 지금도 정신보건 분야로  적지 않은 예산이 예산이 들어가고 있다. 건강보험 예산 중 절반 가까이가 정신 장애인을 위해 쓰이고 있다. 그 많은 예산의 대부분이 수용 중심의 시설로 들어갈 수밖에 없는 구조가 문제인 것이다. 지역사회와 병원의 균형있는 치료와 재활, 예방 모형이 필요한 것이다.

 

• 앞으로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들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우리가 바라는 모습의 지역사회정신보건이 실현된다면 당연히 수용 시설로 들어가는 예산들이 정신보건의 다른 분야를 위해 쓰일 것이다.

다른 정신보건전문요원이 규모도 커지고 질적으로 성장하는 동안 우리 정신과 의사들은 모르고 있었다. 정신과 의사들은 전문간인 자신들이 주도가 되어 정신보건을 이끌어야 한다고 끊임없이 주장하지만 사실 제대로 모른다. 센터에서 일하는 정신보건전문요원보다 모르는 게 사실이다. 전공의들의 수련방법부터 바뀌어야 한다. 지역사회정신의학을 필수적으로 공부할 필요가 있다. 학회는 이런 고민을 해야 한다. 정신과 의사들이 먼저 병원을 벗어날 필요성이 있는 것이다.

정신보건에서 가장 중요한 두 축은 정신보건의 전달 체계와 질적인 부분이다. 정신보건의 핵심은 우선, 올바른 전달체계의 확립이고, 두번째는 서비스 질을 촘촘하게 유지하는 일이다. 둘 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이 두 축을 공고하게 하는 첫 단계가 정신보건법의 제정이다. 이를 통해 정신질환에 대한 정의를 내리고 서비스 전달체계의 구조를 만들고, 서비스 질을 연결 유지해야 하는 것이다.

정신보건센터를 예로 들면, 모든 정신보건서비스의 시작점이 되어야 한다. 평가를 통해 입원이 필요한지, 외래서비스가 필요한지, 직업재활이 필요한자, 낮병원 경험이 필요한지, 전달체계를 결정하고, 각 전달체계에 합당한 서비스가 유지될 수 있도록 서비스 질 평가와 공급이 이루어져야 한다. 질 평가는 서비스 제공자 만이 아니라 서비스 이용자들의 다각적인 평가를 통해 피드백이 이루어져야 하고 건강형평성, 접근도, 소비자 선택권 등이 고려된 인권의 문제까지 연결되어야 한다.

병원에서 환자를 잘 돌봐주는 것도 매우 중요한 일이지만, 단지 병원 일에만 얽매이지 않고, 법 제정부터, 정신보건의 올바른 전달 체계 확립과 서비스 질을 높이는 일까지, 전반적인 정신보건을 위해 힘쓰는 것 역시 우리 정신과 의사들이 반드시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정정엽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광화문숲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한양대 의과대학 학사석사, 서울고등검찰청 정신건강 자문위원
보건복지부 생명존중정책 민관협의회 위원
한국산림치유포럼 이사, 숲 치유 프로그램 연구위원
저서 <내 마음은 내가 결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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