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온안 정신건강의학과의원 김총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진 연합뉴스 TV

법원은 팔달산 토막살인 사건의 범인인 박춘풍씨와 시화호 토막살인 사건의 범인인 김하일씨의 뇌를 촬영하여 정신 감정 분석에 반영하기로 하였다. 범죄자의 정신 감정은 사실 예전부터 있어왔고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정신적인 문제는 때에 따라 범인의 의사판단 능력의 결여를 인정하여 양형을 감하거나 가하기도 했다. 그러나 심리검사나 정신과 전문의의 면담, 관찰에 따른 보고서 이외에 뇌영상검사에 따른 결과를 심리에 반영하기로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물론 그간 있어온 정신감정에서 정신과 전문의가 환자의 뇌영상 검사 결과를 참고하고 감정 보고서에 반영한 것은 늘 있어 왔던 일이지만 이번의 사건의 경우는 범인의 뇌 영상 촬영을 통한 정신 감정을 법원이 이화여대 뇌인지과학 연구소에 직접 의뢰해 실시 하였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지난 12월 22일 서울고법 형사5부 심리로 열린 박씨의 항소심 속행 공판에 증인으로 나온 김지은 이화여대 뇌인지과학연구소 교수는 박씨의 MRI 뇌 영상을 분석한 결과 전두엽 부분이 상당 부분 손상된 것은 맞지만, 범행 당시 박씨가 사물을 제대로 변별할 수 있는 상태였던 것으로 보인다고 이야기했다.

이와 같은 뇌 영상 검사가 의뢰된 이유는 박씨가 1심부터 항소심까지 살인 의도가 없었으며 우발적인 폭행치사라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재판 중 박씨가 어렸을 때 사고로 눈을 다친 사실이 전해지면서 범행에 영향을 미칠 만한 뇌영상학적 소견이 있는지 분석하게 된 것이다.

범인으로 검거된 박씨는 2014년 11월 26일 수원시 매교동 소재의 집에서 동거하던 피해자 A씨를 목 졸라 살해한 뒤 시신을 훼손한 살인, 사체손괴, 사체유기 혐의 등로 구속 기소되었다. 조사 결과 박씨는 증거를 없애기 위해 또 다른 월세 집을 계약하거나 시신을 수원 팔달 산 등 5곳으로 나눠 유기하는 등 계획적인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이와 같은 잔혹한 범죄에 다만 어린 시절 눈을 다쳤다는 사실이 어떤 연관성을 가질 것이라 추측되어 뇌 영상 검사까지 의뢰가 되었던 것이었을까.

인간의 뇌가 다른 영장류와 구별되는 가장 큰 특징은 인간이 유독 큰 전두엽(frontal lobe)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전전두피질(prefrontal cortex)은 전체 피질의 29%를 차지하며 인간 고유의 인격기능을 수행한다고 알려져 있다. 통찰력, 자기인식, 계획, 의사결정, 작업기억, 언어 생성과 신체적 표현, 여러 정보의 통합, 계획 개념의 형성, 행동수행, 주의, 동기 ,인지, 이성적 사고, 지남력 등 인간이 동물과 구별되는 복잡한 인지적 능력에 관여하는 것이다. 그리고 뇌의 가장 앞쪽 영역인 전전두피질에서도 특히, 안구가 담긴 안와기저 영역 근처의 안와전두 영역(orbitofrontal region)이 바로 어린 시절 사고로 넘어지며 눈을 다쳤다는 범인 박씨의 뇌에서 손상되어 범행에 영향을 주었을 것이라 의심되었던 영역이었다.

안와전두영역은 감정을 처리하는 변연계(limbic system), 그리고 그 중 편도체(amygdala)와 연결되어 욕구 또는 동기와 관련된 정보를 처리하는 데 관여한다고 알려져 있다. 처벌과 보상 등 감정적-정서적 정보들을 상황에 맞게 조절하여 적절한 사회적 행동을 수행하게 한다. 소위 이야기하는 사이코패스나 반사회적인격장애 환자들의 경우엔 이러한 변연계-전전두엽 회로 기능의 결핍으로 충동적 감각 추구 행동이나 타인의 고통에 대한 공감결여가 나타난다는 연구가 있다. 감정정보를 인지적으로 처리하는 회로에 장애가 생길 경우 반사회적 행동으로 그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R. J. R Blair 등의 연구에 따르면 실제로 정상인과 사이코패스 성향을 지닌 사람들과의 뇌영상을 비교하였을 때, 감정 자극을 주었을 때나 감정적 학습 프로그램 진행 중에 나타나는 편도체-안와전두 피질의 반응이 사이코패스 성향을 지닌 사람들에게서 유의하게 감소되어 있었다고 한다.

박씨의 4차 공판에서 김지은 교수는 ‘다른 재중동포의 뇌와 달리 박씨의 안와전두엽이 아래로 많이 내려와 있고 손상되어 있으며 뇌손상이 박씨의 공감 능력이나 죄책감 결여에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고 이야기 했으나 ‘다만, 사이코패스나 반사회적 인격장애의 기준에는 미치지 못한다’고 말했다.

물론 이와 같은 결과는 박씨의 검사 협조가 잘 이루어지지 않아 기능적 자기공명영상(fMRI)를 활용한 뇌 활성도 검사는 시행하지 못한채 구조적 자기공명영상(sMRI)만을 분석한 결과이다. 반사회적 인격장애의 뇌 영상 연구에서는 구조적으로 전두엽이나 편도체의 크기 감소 등이 보고된 바도 물론 있지만, fMRI를 활용한 뇌 활성도와 연관성에 대한 연구가 많이 밝혀져 있으므로 이번 검사 결과가 의학적으로 충분한 정보는 아닐 수도 있을지 모른다. 또 이러한 검사 결과가 박씨의 양형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에 대해서도 법원에서 언급한 바는 없다.

의학적 결과를 떠나 반사회적이고 반인륜적인 극악범죄에 대한 엄중한 처벌과 사회로부터의 격리가 필요함 또한 분명할 것이다. 그렇지만 이처럼 사법부가 뇌영상-정신의학에 직접 자문을 의뢰했다는 점에서 정신의학과 정신건강에 대한 사회적 시각의 변화가 엿보인다는 점은 무척 흥미롭다.

인체의 분자적, 세포-생물학적, 기계적 인과관계에 따른 병리와 치료를 연구하는 현대의학에서 정신의학이 갖는 독특한 포지션은 생물학적 원인 이외의 심리적 병인과 치료를 파헤친다는 부분에 있을 것이다. 그간 정신과 질환에 대한 대중들의 인식 역시 대부분 이러한 소프트웨어적인 부분에서 이해되어 왔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밝혀지고 있는 뇌정신의학과 정신신체의학, 정신심리의학과의 필연적인 연관성에 힘입어 최근에는 인간정신에 대한 통합적인 모델과 치료적 접근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이번 팔달산 토막살인 사건에 대한 뇌영상학적 정신 감정에서도 볼 수 있듯, 인간의 감정과 사고는 단순히 정신적이기만 한 것이 아니며 해부학적이며 생리학적인 원인과 과정을 동반하고 있다. 이렇듯 복합적이고 복잡한 정신의 구조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연구를 통해 여전히 미지의 영역에 있는 정신세계의 신비가 한꺼풀씩 벗겨져 나가길 기대해본다.

김총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온안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학사, 석사, 전공의
한양대학교병원 외래교수
저서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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