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남자가 있다. 질풍노도의 청소년기에 친구들과 함께 술에 입을 댄다. 호기심에 몇 잔 기울이다가 술이 매우 달게 느껴지기 시작한다. 하루, 이틀, 몇 달을 그렇게 술에 취해 사는 것이 좋다. 20여년이 지난 지금 알코올전문병원을 수십차례 드나들면서도 술 없이는 아무런 즐거움이 없다고 단언한다.

우리가 흔히 떠올릴 수 있는 술에 중독된 사람의 이야기이다. 태어날 때부터 술과 뗄 수 없는 운명을 타고나, 술이 술을 부르는, 술이 인생 최대의 낙이라 할 만한 사람에게서 보여지는 중독의 원형이다.

그런데 이런 경우도 생각해보자. 한 여자가 있다. 건실하게 직장도 다니고 있고, 슬하에 두 명의 자녀도 있다. 물론 남편은 둘도 없는 인생의 유일무이한 짝이다. 그런 남편이 어느 날 바람을 피우게 된다. 2년 후 여자는 모든 사실을 알게 되고 이혼하게 된다. 하지만 상처는 쉽게 가라앉지 않는다. 술을 입에 대기 시작한다. 그녀에게 술은 결코 달지 않지만 쓰디쓴 현실을 위로해줄 건 술밖에 없다고 단언한다.

두 번째의 경우는 첫 번째와 뭔가 다르다. 알코올을 탐닉하게 된 배경과 의미가 다르다. 중독의 원인이 ‘관계의 단절’에 있는 경우이다. 일찍이 알코올 중독을 유형 I과 II로 나누어 다르게 보려는 시도의 배경이 여기에 있다. I과 같은 선천적인 기질을 타고난 사람도 있지만, II처럼 험난한 현실에 조응하여 알코올에 빠져드는 경우도 있는 것이다.

마약과의 전쟁을 취재해온 영국의 저널리스트인 요한 하리는 중독이 관계의 단절을 반영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브루스 알렉산더 교수 팀의 실험을 근거로 든다. 아무것도 없는 ‘쥐감옥’의 격리된 쥐들은 마약 성분이 들어있는 물을 탐닉하지만, 놀거리가 많은 ‘쥐공원’의 쥐들은 서로 어울리며 마약물이 아닌 일반 물을 마신다는 것이다. 격리와 단절이 쥐들을 중독으로 이끌었던 것이다.

관계의 단절과 중독 사이의 관계는 단지 알코올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우리는 스마트폰, SNS에 일상적으로 중독되어 있기도 하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매체는 시간과 장소에 구애 받지 않고 그 누구라도 서로 연결될 수 있게 해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상 마음 한 켠이 공허한 사람들은 관계의 부재를 실감하며 그 공허함을 달래줄 중독될 만한 무언가를 찾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중독을 치료할 수 있는 근본적인 원천은 친밀과 진정성 있는 소통일 수도 있겠다.    

김일빈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강남차병원 교수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한양대학교 구리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임상 조교수
한양대학교 뇌유전체의학(자폐) 석사
KAIST 뇌유전체의학(자폐, 조현병)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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