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김주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이코드라마(psychodrama)는 제이콥 레비 모레노(Jacob Levi Moreno)라는 미국의 유태계 정신과 의사가 창시한 즉흥 연극이자 치료이다.

우리나라 의료 현장에서는 정신치료극이란 이름으로 건강보험 수가가 등재된 집단정신치료(group psychotherapy)로 알려져 있고, 일반 대중에게는 심리극이란 이름이 더 친숙한 것이 바로 사이코드라마이다.

저자는 1995년부터 사이코드라마와 인연을 맺고 지금까지 끊임없이 무대에 섰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왔다. 정신의학신문에 연재하는 내용을 통하여 사이코드라마의 실제를 독자들과 함께 경험하고 나누고자한다.

 

사진_픽셀

금요일 저녁 공연의 메인 워엄-업(warm-up)인 ‘구명보트’ 상황극이 시작되었다.

관객 집단을 둘로 나누고, 한 집단은 자신의 가족들과 여행을 가는 상황을 주고 같이 갈 가족 구성원을 4명씩 선정하도록 하였고 다른 집단은 그 가족 구성원 역할을 부여받아서 연기하도록 요청하였다 . 자신을 포함하여 5명이 여객선 여행을 떠나는 것이 기본 설정이었다. 그리고 그 즐거운 가족 여행 중 불의의 사고가 발생하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강력한 태풍을 만나서 안타깝게도 그들이 탄 여객선이 좌초하는 비극적인 상황을 만나는 것이었다.

 

이러한 비극적 상황에서 참여한 관객은 매우 곤란한 결정을 강요받게 된다. 다행하게도 내 자신이 구명보트를 확보할 수 있게 되었는데, 안타깝게도 가족 일행들 중 단 한명만 보트에 태울 수가 있다는 상황설정이었다. ‘과연 나는 누구를 구명보트에 태울 것인가? 아니 가족들 중 누구를 살릴 것인가?’에 대한 매우 난처한 상황을 참여한 관객들에게 요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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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한계 상황을 설정하면, 비록 연극이지만 참여자들은 주어진 상황에 더욱 깊숙이 몰입하게 되고 자신의 가족 관계를 돌아보는 소중한 기회를 얻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매우 선택을 어려워하고, 그냥 자신이 구명보트에서 내리겠다고 하는 경우도 다수이다.

 

이날도 역시 참여자들이 자신의 선택에 대해 힘들어하셨고, 많이 망설이다가 어렵게 결정을 내렸다. 자식을 선택하거나 어머니를 선택하는 분들이 많았고, 이는 다른 집단과의 작업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나는 모습이다. 하지만 부모라도 아버지를 선택하는 경우는 매우 적은데... 이는 아버지와의 관계가 우리 사회에서는 어머니에 비해서 친밀하지 못하다는 씁쓸한 결론을 시사한다.

 

이렇게 짧고 강렬한 상황극을 통하여 참여자들은 자신의 가족 관계를 생각하고 느껴보게 되고여기에서 발생한 행위 갈망(action hunger)이 본격적인 작업, 즉 주인공이 나오고 적극적인 role playing을 통한 행위화 단계로 들어가게 하는 중요한 에너지를 공급하게 된다.

 

드디어 주인공(protagonist)을 모시는 시간이 되었다. 필자는 주인공을 사전에 선정하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대부분 당일 ‘자발적으로’ 주인공이 되기를 원하는 관객을 극의 주인공으로 선택한다. 이날도 약간의 기다림이 있은 후에 한 여성이 무대의 중앙으로 나왔다. 남편에 대한 감정들-분노, 서운함-을 해결하고 싶다는 욕구를 지닌 분이 주인공이 되셨고, 마음 여행을 함께 떠나게 되었다.

 

사진_픽셀

극이 시작되었다. 주인공에게 지금 이 순간 만나고 싶은 사람을 물었다. 주인공은 남편을 만나고 싶다고 하였다. 관객들 중에서 남편 역할을 맡길 분을 선택하도록 주인공에게 요청하였다. 필자가 진행하는 사이코드라마에서는 극중 주어지는 대부분의 역할을 주인공이 선택하도록 요청 드린다. 이는 주인공의 자발성을 촉진할 수 있고, 관객들이 주인공과 자연스레 작업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에 필자는 이러한 방식을 선호한다.

 

주인공은 관객들 중에서 자신의 남편 역할을 할 사람을 선택하였다. 남편 역할로 지목당한 남자분이 다소 어색한 표정으로 무대에 올랐다. 사이코드라마에서는 마치 배우(actor)처럼 연기할 필요는 전혀 없다. 이미 주인공이 자신의 내적 세계를 무대 위로 투영(projection)하고 있기 때문에, 주인공의 상대역으로 올라온 관객, 즉 사이코드라마의 보조 자아(auxiliary ego) 역시 적극적으로 연기해야한다는 부담을 ‘내려놓고’ 주인공 앞에 ‘그냥 서서’ 그녀의 내적 현실을 투영해내는 ‘스크린(screen)’과 같은 역할을 수행하면 극은 그대로 잘 흘러간다.

 

주인공은 남편에게 그 동안 살아오면서 느끼고 쌓아온 감정들을 이야기하였다. 자신에게 든든한 지지자가 되어주지 못한 남편에 대한 원망과 분노를 차근차근 털어놓았다. 남편은 비교적 성실하고 마치 ‘모범생’ 같은 태도를 지닌 사람으로 관객들에게 비춰졌다. 주인공의 남편에 대한 원망과 분노의 감정에 대한 기원을 찾아가보려는 시도를 디렉터는 준비하였다.

 

수년전 신혼 초기에 남편이 해외로 발령이 나서, 임신한 아내(주인공)을 혼자 놓아두었던 상황이 극중에서 떠올랐다. 주인공은 남편에게 매우 서운하고 분노를 느끼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남편에게도 할 말은 있었다. “회사에서 보낸 일이니, 나도 어쩔 수는 없었다!” 임신한 아내를 놓아두고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해외로 나간 남편에 대한 서운함을 주인공은 토로하였다.

 

사진_픽사베이

장면이 진행되면서, 자연스레 주인공의 주어진 상황이 좀 더 명확해져갔다. 주인공은 임신 중 남편이 해외로 발령을 받아 나갔고, 그 후 시아버지가 집에 오셔서 수개월간 함께 거주한 상황이 ‘추가’되었다. 젊어서 아내(시어머니)와 사별하시고 사형제, 즉 주인공의 남편과 형들과 동생을 키워온 분이 주인공의 시아버지셨다. 교사로 일생을 살아오신 ‘성실한’ 생활태도와 매우 ‘규범적인’ 사고를 지닌 분으로 주인공은 시아버지를 묘사하였다.

 

이러한 시아버지께서 주인공의 집을 방문하여 수개월을 동거하셨는데... 그 이유가 다름 아닌 시아버지가 세우신 ‘원칙’ 때문인데, 바로 자식들의 집을 순회하면서 수개월씩 거주하는 것이었다. 홀로 사시는 아버지였기 때문에 아마도 다른 형제들도 기꺼이 받아들였을 것이다. 하지만 주인공의 ‘특별한’ 상황에서는 이러한 원칙에서 문제가 발생하게 된 것이었다.

 

남편도 없이 임신한 몸으로 아직 어린 아들을 둔 며느리(주인공) 집에 시아버지가 오셔서 함께 수개월을 지낸 상황을 주인공은 매우 힘들어 하였고, 이런 상황을 관조한 남편에 대해 큰 원망을 가지고 있었다.

 

이제 극은 (과거 상황의 재연으로) 주인공은 시아버지를 모시고 살아가는 장면으로 진행되었다. 임신한 며느리에게 일말의 감정-미안함-도 없는 듯한 ‘매우 규범적인’ 시아버지의 행동이 무대에서 보여지고, 관객들의 한숨도 같이 커져갔다. 주인공의 마음을 우리 모두는 느낄 수 있었다. 힘든 주인공에게 필요한 무언가를 사이코드라마 디렉터는 준비하여야만 했다. 극은 이제 매우 중요한 지점으로 이동하였다.

 

 

[연재] 사이코드라마란 무엇인가? - 만족(satisfaction)-1-

 

저자소개

사이코드라마 수퍼바이저, 정신과 전문의
現 솔빛정신건강의학과의원 및 한국에니어드라마연구원 원장
現 한국임상예술학회 회장 및 現 한국임상사이코드라마연구소 대표
現 은평구민과 함께 하는 심리극 월간 공연 ' 나를 찾아떠나는 여행' 연출
前 '심리극회 거울과 가면' 및 'ACT심리극연구소' 대표 
EBS '가족이 달라졌어요', MBC '사주후愛', 한국직업방송 '新 직업의 발견' 등 다수 참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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