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온안 정신건강의학과의원 김총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진 SBS

모든 욕구가 만족과 쾌락의 보상을 찾아 꿈틀거리듯, 가장 원초적인 욕구인 성적 욕구의 본능은 성적쾌락을 찾아 역동한다. 그러나 인류가 성행위를 감추고 성적 쾌락의 무분별함을 억압하고 재단해야 함의 필요성을 깨달은 이후로 성(性)의 영역은 오랜 세월 음지의 성장을 이어왔다. 빛이 닿지 않는 곳의 생태계는 그 어두움에 숨어 의식과 초자아의 눈을 피해서 본능의 욕구를 마음껏 배설하며 진화해왔다.
진화적 동물로서의 성에 대한 본능은, 말초적 쾌락의 욕구에 대한 본능과 분별할 수 없게 뒤엉켜 그 자체로서 새로운 진화적 개체로 거듭난 것이다. 인류의 역사와 사회의 무의식 깊은 곳에서는 오랜 세월 변형되고 탈바꿈한 성적 본능의 리비도(Libido)가 아무도 모르게 개인의 인격과 군중의 심리, 사회의 정체성을 주무르고 있다.

성인 음란 사이트 소라넷 폐쇄에 대한 여론과 경찰의 수사가 연일 화제가 되고 있다. 소라넷은 90년대 후반부터 약 16년간 명맥을 유지하며 100만 명에 이르는 회원을 거느리고 있는 성인 사이트이다. 10여년간 약 4만여 건의 몰카 동영상이 게재되었고, 강간 모의, 스와핑, 변태 성행위 및 성매매 알선 등의 진원지로 주목 받으며 그동안 약 200여 회에 걸쳐 이미 폐쇄조치를 당한 바 있다.
2004년엔 경찰이 운영 총책임자를 포함한 운영진을 대거 입건하며 단속하였지만 이후로도 소라넷 사이트는 해외에 서버를 두거나 SNS를 통해 새로운 주소로 옮겨가는 등의 편법을 사용하며 계속해서 운영되어 왔다.

그리고 지난 5월 경찰청에서 소라넷과의 전쟁을 선언하며 사이트 폐쇄를 위한 대대적인 수사에 착수하였다. 진선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소라넷의 폐쇄를 경찰청장에게 질의하면서 본격적으로 수사가 시작되고 이를 후원하는 사람들의 반응이 각종 SNS를 들끓게 하며 소라넷의 폐쇄가 본격적으로 도마에 올랐다.

반면 몇몇 소라넷 회원들이나 운영진은 ‘성인물을 보고 개인의 성적 취향을 공유하거나 즐기는 것’이 개인의 행복 추구권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소라넷은 단순한 개인적 취향 관련 커뮤니티일 뿐이라며 소라넷 수사에 대해 반대하고 있다. 그러면서 이와 같은 의견을 SNS에 피력하는 사람들과의 댓글 설전이 벌어지며 “너 소라넷 하니?”라는 질문이 과거 “너 일베 하니?” 이상의 맥락으로 번져가며 대중의 혐오가 증폭 되어가고 있다.

소위 이야기하는 스와핑, 초대남, 그리고 몰카, 성추행이나 미성년자 성매매 등이 성행하던 음지의 환락가가 SNS의 파급력에 힘입어 일순 백주 대낮에 드러난 것이다. 소라넷으로 대표되던 각종 사이트들에서 ‘익명성’이라는 안전한 지붕 아래 각자 개인의 복잡하고 깊은 심연의 욕구들과 성적 욕구, 쾌락의 욕구들을 난잡하게 뒤섞어 배설하던 음지의 환락가 말이다.

이른바 ‘성도착’의 은밀한 분출구가 들켜버리고 만 것이다.

정신과적 진단 분류 체계인 DSM-5에 의한 성도착장애(paraphilic disorder)는 반복적으로 성적으로 일어나는 비정상적인 상상이나 성욕, 성행위 등을 말한다. 이 중엔 관음도착장애, 노출장애, 접촉도착증, 성적 피학증과 가학장애, 소아성애장애, 절편음란장애, 이성복장장애 및 기타 장애 등 무척 다양한 양상의 비정상적 성적 욕구나 행위가 정의되고 있다.
이러한 성도착증에 대한 원인으로는 대뇌의 변연계(limbic system)의 장애나 남성호르몬 항진 등의 기질적인 연관성이 보여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보다는 유전적, 환경적, 소아기 경험, 성격 등에 대한 종합적인 원인과 관련된다고 알려져 있다.

성도착증에 대한 정신분석적 원인에 대해서는 인격발달과정 중 구강기나 항문기 수준에서 고착된 것으로 보는 오이디푸스 콤플레스와 관련한 설명이 있다. 또 어린 시절의 경험이나 스트레스 등은 비성적 학대도 어린아이에게 성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고 이것이 후에 도착적 발달로 이어질 수 있다고도 분석한다.
소아성애(pedophilia)의 경우 희생자에 대한 지배와 통제의 욕구로 해석되기도 한다. 저항 불가능한 소아를 대상으로 한 통제감, 지배감을 통해 본인의 성적 무능감에 대한 병적극복을 성취한다는 것이다. 또는 애정의 대상으로 어린이를 선택하는 것이 자기애적 행동(narcissitic act)라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다.
또 대표적인 성도착증 중 하나인 성적 피학장애-마조히즘(Masochism)에 대해서 프로이드(Freud)는 이를 자기 자신에게로 향한 파괴적 환상에서 유래한 욕망이라 해석하였다. 즉, 가해가 자신에게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과시함으로써 본인의 무능감이나 상해의 공포를 극복하고자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과연 성도착증이 ‘병’이고 ‘치료해야할 대상’인가에 대한 논의는 언제나 있어 왔다. 개인의 성적 취향과 기호에 대해 과연 어떤 기준으로 정상과 비정상의 잣대를 댈 수 있는가 하는 이야기이다. 은밀하고 가려진 자신만의 성적 취향이며 자신만의 라이프스타일이요, 스스로에게 만족스럽고 해가 되지 않는 취미생활인데, 왜 남들이 정의하는 정상적인 욕구에 대해 강요받아야 하는 것일까. 그리고 이러한 논의는 소라넷 폐쇄에 반대하고, 소라넷의 필요성(?)에 대해 변명하는 사람들의 논리와도 직접적으로 맞닿아 있다.

실제로 1968년 DSM-2에서는 동성애를 성도착장애에 포함하는 정신장애로 규정하였으나, 1973년 DSM-3에서는 미국 정신의학회에서 투표를 통해 삭제했다. 동성애는 병적이라기보다는 다른 형태의 life-style로 보기를 권장하고 있는 것이다. 도착증의 형태만으로 그러한 욕망이 병적이라고 진단하기엔 애매하고 어려운 부분이 있다.

그러나 사실 이에 대해 DSM에서는 명확한 기준점을 제시하고 있다. 진단 필수 사항 중에 ‘사회적, 직업적, 인간 관계적으로 유의한 손상이나 고통을 일으키고 있는 행위이어야 함’을 명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불법적인 성행위나 성범죄 또한 진단기준에 포함하고 있다. 뒤집어 이야기하면 불법적이지 않고, 본인 또는 타인에게 유의한 손상이나 고통을 일으키지 않는다면 장애(disorder)로 진단될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소라넷에 게재된 글 중에는 불법성매매 업소 정보나 나체사진을 공유하는 불법 행위가 만연하고 불법 성매매 알선까지 빈번하게 이루어지고 있었음이 밝혀졌다. 여성의 신체, 노출을 몰래 찍어 올리며 피해자에게 성적 수치심을 느낄 만한 표현을 거리낌 없이 사용한 것이 적발되기도 했다. 바로 이러한 점에서 본다면 소라넷이라는 커뮤니티가 명백히 병적으로 드러나는 성도착 장애(disorder)의 요소를 가지고 있음이 분명한 것이다.

정상과 비정상을 나누는 기준이 명확할 수는 없지만, 보편적 행태에서 상당 부분 이상을 벗어난 뒤틀린 성적 욕망은 서두에 언급하였듯 인류의 역사와 함께 해왔다. 프랑스의 소설가 마르키 드 사드의 ‘소돔 120’은 무려 200년도 넘은 소설이지만 그 당시에도 도착적 성욕의 문화와 욕망이 사회 의식 아래 부글거리고 있었음을 여과 없이 보여주고 있다.

누구나 이루지 못한 성적 판타지나 욕망을 억압하며 살고 있으며 누구나 조금씩은 도착적이다. 각자의 복잡한 역동으로 인격과 함께 자라온 성적 욕망은 모두가 조금씩, 혹은 조금 많이 다른 모습들로 각자의 심연에 감추어져 있다. 이를 드러내지 않고 억누르고자 하는 의식과, 이런 욕망을 충족하고자 하는 판타지는 끊임없이 서로 충돌하며 갈등을 빚어낸다. 정신역동적 치료의 핵심은 바로 이러한 내면적인 갈등의 해소에 있다.
그렇다면 개인의 욕망을 환기하고 소화할 창구가 필요하다는 소라넷 운영진의 변명은 일견 그럴 듯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적발된 불법과 성추행, 성폭행의 사건들로 드러나듯 제어되지 못한 성적 욕망의 배설은 왜곡과 병적 증폭만을 낳는다는 것을 이미 소라넷이 몸소 보여주었다.

프로이드는 ‘성의 본능이 무엇을 향하게 되더라도 그것은 부자연스럽지 않다’라고 이야기했다. 욕망은 자연스러울 수 있다. 하지만 병적으로 드러난 갈등은 반드시 치료적 중재가 필요하다. 개인의 취향과 라이프스타일은 오로지 도덕적 범주나 법적 테두리 안에서만 존중 받을 수 있는 것이다.

 

 

김총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온안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학사, 석사, 전공의
한양대학교병원 외래교수
저서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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