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 의사가 읽어주는 영화, 아홉 번째 이야기

[정신의학신문 : 의정부 성모사랑정신건강의학과 원장 유길상 전문의]

 

사람들은 보통 하루에 6~8시간 잠을 잡니다. 어떤 이는 시험 혹은 프로젝트 마감 때문에 이보다 적게 잠을 잤을 수도 있고, 주말이라면 여유롭게 조금 더 많이 잤을 수도 있죠. 잠을 자면서 우리는 꿈을 꿉니다. 평균 하루에 5~6개 정도의 꿈을 꾸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꿈을 기억하지 못합니다. 10% 내외의 사람들은 꿈을 기억한다고 하나 그렇다고 모든 꿈을 기억하는 것은 아닙니다. 잠에서 깬 몽롱한 상태에서 꾼 마지막 꿈 정도를 기억하죠. 하지만 그 기억마저도 곧 희미해지고, 잠시 후에는 뇌리 속에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져 버립니다. 달콤하거나 혹은 께름칙한 꿈, 이 꿈들을 모두 기억하고 더 나아가 본인의 꿈을 조작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자각몽을 소재로 만든 영화, <인셉션>

사진_영화 '인셉션'(수입 및 배급 워너브라더스코리아)

자신이 꿈을 꾸고 있는 동안 인지하는 꿈을 자각몽(Lucid dream)이라고 합니다. 자각몽을 소재로, 놀라운 발상을 영화로 표현한 작품이 있습니다. 바로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인셉션 (Inception, 2010)>입니다. 영화는 드림머신이라는 기계로 다른 사람의 꿈에 침투하여 자유롭게 생각을 빼낼 수 있는 미래사회를 배경으로 설정합니다.

 

주인공 돔 코브(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분)는 꿈 분야의 최고 실력자로, 특수보안요원입니다. 그는 아내를 살해했다는 혐의로 국제적 수배자가 되어 도피 생활을 합니다. 코브는 모든 누명을 한꺼번에 벗을 수 있는 기회를 에너지 회사의 CEO인 사이토(와타나베 켄 분)로부터 제안 받습니다. 대신 코브가 해야 하는 일은, 사이토가 경영하는 에너지 회사의 경쟁사의 상속자인 피셔(킬리언 머피 분)의 꿈속으로 침투하는 것. 그래서 사이토가 원하는, 피셔가 자신의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거대 에너지 기업의 해체를 바라도록 만드는 것이었죠. 코브는 피셔의 꿈속에 침투하기 위해 설계사, 조사자, 약제사, 위조사 같은 전문가들을 차례대로 한 명씩 섭외하며 최고의 드림팀을 구성합니다. 그러고는 피셔의 꿈속에 잠입해 들어갑니다.

 

누군가의 꿈속에 들어가 몰래 기억을 삽입하는 방법은 결코 간단하지 않습니다. 조금 더 깊은 꿈속으로 들어갈수록 무의식에 가까워지게 되고, 강제로 기억이 주입되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나 위험성과 저항력이 커집니다. 그래서 코브를 비롯한 전문가들은 정교한 꿈을 설계합니다. 방법은 꿈속에, 꿈속에, 꿈을 꾸게 하는 것입니다. 꿈속에서 꿈을 꾸는 것, 그리고 그 꿈속에서 다시 꿈을 꾸는 것은 위험한 일로 묘사됩니다. 무의식의 세계에서 현실을 인지하고 빠져 나오는 것이 그만큼 힘든 일이기 때문입니다. 영화 속에서 약제사를 찾아 뒷골목을 찾아갔을 때 수많은 사람들이 마치 아편에 중독된 듯, 꿈을 꾸는 약물에 취해 잠을 자고 있습니다. 현실세계에서 만족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마음대로 누릴 수 있는 허구의 세계 즉, 꿈에서 깨어나길 거부합니다. 어떤 이들은 깨고 싶어도 깰 수 없는 ‘림보’의 세계에 빠져있습니다. 현실 세계에서 도피하기 위해 꿈이라는 약물에 중독 되어있는 상황이 영화적 상상이지만 위험하고도 그럴듯한 설정으로 그려집니다.

 

 

꿈- 무의식의 표상과 방어기제

사진_영화 '인셉션'(수입 및 배급 워너브라더스코리아)

우리가 꾸는 꿈에서는 현실의 원칙들이 무시됩니다. 다른 시대에 살았던 인물들이 시간의 질서와 관계없이 동시에 나타나기도 하고, 때로는 멀리 떨어진 공간이 한 장소에 융합되기도 합니다. 즉 꿈에서는 시간과 공간이 왜곡될 수 있습니다. 왜곡 현상은 깊은 꿈속으로 들어갈수록 더욱 심해집니다. 영화에서는 갑자기 건물이 무너지거나 공간이 직각으로 접히는 등 관객들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장면들로 표현되었습니다.

 

코브를 비롯한 꿈 전문가들은 이런 꿈속으로, 아무런 어려움 없이 들어갈 수 있었을까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꿈을 통해 들어가는 무의식에는 무한의 가능성도 있지만, 생명을 잃을 수도 있는 위험성도 있습니다. 따라서 현실의 자아는 무의식으로 들어가고 싶어 하는 욕망을 가지고 있는 동시에 또한 이 욕망을 저항의 방어기제를 통해 제한하려고 하죠. 영화에서는 무장한 사람들이 코브 일행을 추격하고 공격하는 장면, 도로 한복판에서 갑자기 기차가 출현하여 코브의 차를 받아 버리는 장면 등으로 피셔의 방어기제가 작동하는 것을 표현합니다. 더 깊은 무의식으로 들어가려 할수록 더 강한 방어기제가 발현되므로 실제로는 본인의 무의식을 들여다보는 일도 그리 쉽지 않습니다. 그런 만큼 한번 자리잡은 무의식은 좀처럼 쉽게 바뀌지 않고 의식의 흐름에 영향을 미칩니다. 영화에서는 이러한 이론을 바탕으로 사람의 깊은 무의식에 침투하여 작은 생각 하나를 주입함으로써 현재의 행동에 변화를 주려고 하는 것이죠.

 

영화에서 코브의 아내 맬(마리옹 꼬띠아르 분)은 현실과 꿈을 구분하지 못하고 창문에서 뛰어내리려 합니다. 이는 코브가 아내와 함께 림보의 세계에 들어갔을 때 림보의 세계에 적응한 아내를 깨우기 위해 아내의 깊은 무의식에 ‘이 모든 것이 꿈’이라는 생각을 주입했기 때문입니다. 둘은 꿈에서 깨어나지만 깊은 무의식 속에 한번 자리 잡은 생각은 현실세계에서마저 영향을 미쳐서 ‘이 모든 것이 꿈’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죽음(맬의 입장에서는 꿈에서 깨기 위한 ‘킥’)을 선택하게 됩니다. 코브는 이러한 아픈 경험을 바탕으로 사람의 무의식에 인위적인 생각을 주입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확신을 가지게 되지요.

 

 

그렇다면, 현실에서의 자각몽은?

사진 좌_프레데릭 반 에덴(위키미디어 공용) 우_스티븐 라버지(위키피디아)

영화로 표현된 자각몽이 현실에도 존재할까요? 실제로 아주 소수의 사람들은 자신이 꿈을 꾸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꿈의 내용을 의지에 따라 조작할 수 있는 자각몽을 꾼다고 합니다. 자각몽이라는 용어는 정신과 의사이자 작가인 프레데릭 반 에덴(Frederik van Eeden)이 1913년 처음으로 사용했습니다. 그렇다면, 자각몽에는 어떤 긍정적인 효과가 있을까요? 미국의 심리생리학자인 스티븐 라버지(Stephen LaBerge)는 2004년에 쓴 그의 저서에서 자각몽이 스트레스 완화와 정서적 치유에 도움이 되고 더 나아가서는 창조적인 영감과 풍부한 통찰을 촉진한다고 주장한 바 있습니다. 이는 현실에서 금기되고 억압되었던 욕망을 꿈을 통해서 해소하고 꿈속에서 하늘을 아무런 도구 없이 비행하는 등 현실원칙에서 불가능한 다양한 상상들을 시도해 볼 수 있기 때문으로 해석됩니다.

 

2010년, <인셉션>이 나온 이후 자각몽에 대한 관심이 급증했습니다. 자각몽을 꾸는 소수의 사람들은 인터넷상에서 동호회를 만들어 자각몽 경험을 공유하고, 훈련을 통해 자각몽을 꿀 수 있는 방법들을 소개하기도 했지요. 하지만 자각몽에 심취하는 것에 대해서는 분명히 경계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 이유는 이렇습니다. 첫 번째로 자각몽이 힘든 현실을 부정하고 회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작용하여 현실에 대한 적응 능력을 떨어트립니다. 두 번째로 현실과 꿈을 구별하지 못하여 위험한 행동으로 돌이킬 수 없는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합니다. 영화에서도 현실과 꿈의 구별을 위해서 다양한 예비 장치를 설정해 놓았죠. 폭발이나 죽음과 같은 강한 충격에 의해 꿈에서 깨어날 수 있는 ‘킥’이 설정되어 있고, 또한 꿈과 현실을 구분할 수 있는 수단으로 코브는 팽이를, 아서는 주사위를, 그리고 아리아드네는 체스 비숍을 각자의 ‘토템’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현실에서 팽이는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돌다가 멈추지만 꿈에서의 팽이는 멈추지 않고 영원히 돕니다. 코브는 몇 번이나 팽이를 돌려보며 팽이가 멈추는 것을 보고 현실세계로 돌아왔음을 인지하게 되지요.

 

어제 당신은 어떤 꿈을 꾸었나요? 그리고 오늘은 어떤 꿈을 꾸려 하는지요? 요즘처럼 더운 날씨에 잠 못 드는 당신이라면 시원한 계곡물에 뛰어드는 꿈을 꾸려고 노력해보는 건 어떨까요? 내일 아침 상쾌한 기분으로 잠에서 깨기 위해 알람 음악으로 <인셉션>의 엔딩 곡으로 쓰인 에디트 피아프의 ‘아뇨, 전 후회하지 않아요(Non, Je Ne Regrette Rien)’를 설정해서 들어보길 권합니다.

 

 

이 글은 2017.7.14 <식품의약품안전처 열린마루>에 실린 글을 편집한 글입니다.

 

 

유길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성모사랑 정신건강의학과
가톨릭중앙의료원 수련의, 전공의
(전) 포천시 정신건강증진센터 자문의
(전) 의정부 청소년 쉼터 상담의
대한정신건강재단 해피마인드 상담의, 대기업, 보건소 등에서 다수 강의
전문의 홈 가기
저작권자 © 정신의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