팟캐스트 뇌부자들 [8화 part 2-1]

 

[정신의학신문: 허규형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L씨의 사연:

안녕하세요. 저는 회사를 다니고 있는 30대 여성입니다. 혹시라도 제 상태에 대해서 상담 받을 수 있을까 해서 사연 드려요. 저는 지금 회사를 5년째 다니고 있는데 모은 돈이 별로 없어요. 뭐 사는 걸 좋아해서 조금씩이라도 계속 구매하다 보니 카드가 연체될 정도는 아니지만 돈이 안 모이네요.

 

사진_픽사베이

 

저는 초등학생, 중학생 때부터 동대문이나 이대 쪽에서 옷을 즐겨 샀고, 그래서인지 주위에서 옷 잘 입는다며 쇼핑갈 때 같이 가자는 이야기도 많이 들었어요. 요즘에는 인터넷 쇼핑으로 눈을 돌렸는데, 회사 일로 힘들 때면 해외직구로 옷이나 신발을 사요. 저 자신한테 선물을 준다는 느낌으로요. 습관적으로 거의 매일 자주 가는 인터넷 쇼핑몰에 들어가서 물건들 뭐 올라 왔나 보고 하루에 한두개씩은 사게 되는 것 같아요. ‘내일은 안 사야지, 장바구니에만 넣어놓고 안 사야지’ 계속 다짐을 하는데 저도 모르게 사버린 후 가격표도 안 뗀 상태로 옷장에 걸려만 있는 옷들도 많아져 버렸네요.

 

회사 일 말고도 스트레스 받는 일이 또 있어요. 결혼 문제인데요, 친구들도 거의 다 결혼하고 집에서도 압박을 받다 보니까 결혼을 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은 들어요. 하지만 그러려면 돈이 있어야 하잖아요.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어요.  회사 일에 결혼 압박에 스트레스 받는 일이 많네요. 또 그런 핑계로 혼자 꽤 비싼 배달 음식 시켜서 먹을 때도 있는데, 먹고 난 뒤에는 ‘모은 돈도 없는데 또 저질러 버렸구나’라는 생각에 자괴감이 들기도 해요. 아, 그리고 요즘 인형뽑기에도 빠져서 퇴근길마다 오천원에서 한 만원 정도 하고 있거든요. 이런 습관들 때문에 돈을 모으지 못하는 것 같아요. 방송 들어보니 ‘사회 경제적으로 심각한 지장이 있는 정도여야 병이다’라고 하시길래 전 그 정도는 아닌 것 같은데 혹시 쇼핑 중독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좋아질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요. 문제를 알면서도 고치지 못하는데 왜 이러는 건지..도와주세요.

 


뇌부자들의 답장:
 

안녕하세요, 뇌부자들입니다.

저희 뇌부자들 중에도 쇼핑이나 인형뽑기를 좋아하는 멤버가 있어서 더 공감하면서 사연을 읽어보았습니다.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목적으로 쇼핑을 하거나 소소하게 돈을 쓰는 경우가 많죠. 요즘에는 ‘시발비용’이라는 비속어를 사용해서 이런 마음을 표현하기도 하는데요.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다면 쓰지 않았을 비용을 말하죠. L님이 받고 계시는 회사 스트레스나 결혼 압박이 상당하신 것 같아요. 세상에는 정말 마음대로 안되는 것이 많잖아요. 학업, 연애, 취업, 부모관계 등 마음대로 안되는 일이 정말 많은데 쇼핑, 돈 쓰는 일은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일이어서 많은 사람들이 쇼핑을 통해 스트레스를 해소하면서 점차 중독될 수가 있어요.

 

물건을 사는 것 자체에 쾌감이 있다는 것도 쇼핑에 중독되는 원인 중 하나에요. 병적도벽이나 알코올중독과 마찬가지로 도파민을 비롯한 생물학적인 중독보상회로가 관여해서 중독 행동을 강화시킵니다. 쾌감이 크면 이 행동이 잘못된 걸 알아도 계속 하거나 잘못된 행동이 아니라고 합리화를 하게 되거든요. L님이 문제인 것을 알지만 고치지 못하는 데는 이미 중독 행동이 충분히 강화되었기 때문일 가능성이 있겠네요. 게다가 다른 즐거운 일 없이 쇼핑이나 돈 쓰는 일에서만 즐거움을 느낀다면 더 쉽게 중독이 될 수 있죠.

 

사진_픽셀

 

여기까지 L님께 일반적인 쇼핑 중독의 원인에 대해 말씀드렸어요. 그리고 드물지만 정상의 범주를 벗어나서 특정 질환의 증상 중 하나로서 나타나는 쇼핑 중독도 있을 수 있는데요. 그 중 흔한 것으로 성격 특성으로 나타나는 모습이 있습니다. 연극성 성격을 가지신 분은 감정표현이 굉장히 극적이고 항상 주위의 관심을 받는 데에 몰두하죠. 어디에서든지 본인이 타인들 이목의 중심이 되고 싶어하는데, 그것을 위한 수단으로 최신 유행의 옷을 사서 입는다거나 남들이 갖고 싶어하는 물건이라면 꼭 필요하지 않은데도 늘 찾아서 사기도 하죠. 어떤 물건 뿐만 아니라 쇼핑을 많이 한다는 것 자체가 관심 받는 도구가 되기도 하고요.

 

저희 SNS 허세남 사연에서 소개드렸듯이 자기애적 성격에서도 인정받고자 하는 수단으로 쇼핑을 많이 하다가 중독 행동까지 보일 수도 있습니다. 물건을 사게 되면 점원으로 부터 온갖 칭찬과 우대를 받을 수 있죠. 입 발린 말인건 알지만 기분 좋아지는 건 사실이고, 그럴 땐 내가 괜찮은 사람인가 하는 생각에 으쓱 하기도 하죠. 이것도 일종의 중독이 될 수 있어요. 사람들이 부러워하고 인정해 주는 것을 항상 기대하는거죠.  

 

더 심각한 경우로는 조울증의 조증 상태에서도 굉장히 심한 소비 행동을 보일 수 있어요. 쾌락적인 활동에 몰두하는 것이 조증의 진단 기준에도 있는데, 무리하게 집을 계약하거나 스포츠카를 사는 등 자신의 생활을 파괴할 수 있는 소비를 하는 경우도 자주 보게 됩니다.

 

스트레스 해소, 쇼핑이 주는 쾌감, 연극성, 자기애성의 성격적 특성, 그리고 조울증과 같은 여러 질환들도 쇼핑중독을 보일 수 있는 원인이라는 점에 대해 말씀드렸네요. 그런데 L님은 본인이 말씀하셨듯이 정신과적인 질환이라고 보기에는 어려워요. 보내주신 사연으로 비추어 볼 때 스트레스 해소와 쇼핑이 주는 쾌감이 반복적인 쇼핑을 하게 만드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일상생활에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는 중독 수준의 쇼핑이라면 날트렉손 같은 중독회로에 작용하는 약물을 사용할 수도 있고, 행동계획표를 작성하는 등의 인지행동치료를 해볼 수도 있지만 L님께 해당되는 내용들은 아닙니다. 한 가지 조언을 드리자면 쇼핑을 할 때 일정 금액 안에서 지르는 룰을 정해 놓으면 좋을것 같네요. ‘하루에 2만원 이내, 품목은 두 개 이하’ 이런 식으로요. 처음부터 잘 되지 않을 수 있지만 습관을 들이면 조금이나마 소비를 통제 할 수 있을 겁니다. 더해서 스트레스를 조절할 수 있는 다른 취미 생활도 가지시면 좋을 것 같네요.

 

마지막으로 L님께서는 이미 회사나 결혼 압박 때문에 많이 힘드신 것 같은데 ‘나 쇼핑중독인거 아냐? 이래도 괜찮은가?’라는 걱정 때문에 이중으로 스트레스를 받으실 것 같아요. 너무 걱정하지 마시고,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방식으로의 가벼운 쇼핑을 하면서 열심히 사실 L님의 모습을 기원하며 응원하겠습니다.



뇌부자들 드림


[더 자세한 내용들을 팟캐스트로 들을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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