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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 끝나고 퇴근하는 길, 즐거운 마음보다 두려운 마음이 먼저 앞선다. ‘오늘은 어떤 이유로 아내와 다투게 될까’, ‘오늘은 어떻게 아내의 마음을 풀어줘야 할까’라는 여러 가지 생각에 잠겨 멍하니 있다가 보니 어느새 집근처에 다다랐다. 맘 같아서는 지금이라도 당장 돌아서 친구들과 만나 소주한잔 하면서 스트레스를 풀고 싶지만, 집에서 혼자 애기를 보고 있을 애 엄마를 생각하니 도저히 그럴 수가 없었다. 이런 생각을 하는 내 자신이 너무나 이기적이고 한심스럽게 느껴졌다. 결국 문 앞에서 한참을 고민하다가 아이의 울음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집으로 들어갔다.

 

사실, 아내는 출산하기 전에는 상당히 밝은 사람이었다. 언제나 웃고 긍정적인 에너지가 넘쳤다. 임신기간에도 늘 나를 배려해주고 이해해주려 애썼다. 그런 아내의 모습이 너무나 고마워 이런 행복을 준 하늘에게 늘 감사하며 살겠다는 다짐을 한 나였다. 하지만 출산 후 아내는 마치 딴 사람이라도 된 것 마냥 정반대의 사람이 되어버렸다. 늘 짜증을 내고, 내가하는 모든 것에 못마땅해 했다. 산후우울증이 원인이라고 생각하고 ‘조금 지나면 나아지겠지’라며 처음에는 사과도 하고 위로도 해봤지만, 상황은 변하지 않고 기간은 점점 늘어만 갔다. 특히, 야근이라도 하는 날에는 아내는 더 나한테 짜증을 내고 화를 냈다. 그렇다고 야근을 안 할 수도 없고, 직장에서 받는 스트레스에 집에서 받는 스트레스까지 더해져 결국 나도 폭발하고 말았다. 밤새우는 아내의 눈물소리와 함께 노력하는 나를 이해 못해주는 아내에 대한 서운함이 더해져 결국 새벽 일찍 집을 나오고 말았다. 나만 이런 건지. 누구나 이런 과정을 거치는지. 도대체 어떻게 해야 이 상황을 바꿀 수 있는지 고민에 밤을 지새우는 나날이다.

 

많은 사람이 산후우울증은 출산 후 엄마들에게만 해당되는 사항이라고 알고 있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아빠도 산후우울증을 겪는다. 엄마와 마찬가지로 ‘좋은아빠’에 대한 부담감과 모든 애정과 관심을 아기에게 쏟는 아내에 대한 서운함. 그리고 위 사례처럼 산후우울증으로 인해 자신에게 짜증과 화를 내는 아내에 대한 고민 등이 아빠의 산후우울증에 대한 주요 원인이다. 그런데 특히, 여기에 경제적으로 튼튼한 기반이 없어 새로 부양하고 교육시켜야 할 아기에 대한 두려움으로 오는 스트레스도 상당히 심한 편이다. 아빠는 아기를 보호하고 가족을 부양하는데 있어 당연한 책임감을 느끼고 있는데, 이러한 부분이 많이 부족하다면 당연히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아빠들은 단지 남자라는 이유로, 고민이 있어도 속 시원하게 말 못하는 경우가 많다. 여기에 우리나라 남자들은 문화적 특성상 좋은 아버지에 대한 역할, 실전 육아법을 배우지 않고 자라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양육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싶어도 조언을 구할 곳도 마땅치 않다. 그래서 그저 혼자서 속앓이를 하다가 고민을 해결하지 못하고 결국 우울증에 걸리는 것이다.

 

아빠들이 이러한 심리적 압박감과 우울증에 시달리게 되면,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으로 대부분 크게 두 가지로 선택하는 경우를 볼 수 있다. 우선 첫 번째로 술에 의존하거나 무시하는 것이다. 변화된 가족의 모습에 적응하지 못하고 여러 가지 스트레스를 해소하기위해 술에 의존하거나 겉도는 모습을 보인다. 또한, 아예 스트레스를 받지 않기 위해 일을 핑계로 퇴근해도 육아에 가담하지 않고 바로 잠자리에 드는 등 최대한 원인에서 멀리 떨어져 있으려고 한다.

 

두 번째는 불면증이 생기며 아내와 똑같이 화를 내거나 짜증을 내는 일이 많아지며 심한 경우에는 폭력적인 성향까지 생기는 경우이다. 가장 좋지 못한 경우인데, 아내와 서로 심한 감정싸움이 지나칠 정도로 반복되며, 보통 첫 번째 경우와 같이 오는 경우가 많다. 극심한 스트레스로 감정의 대상이 아기에게까지 전달될 수 있는 무서운 상황이며, 근본적인 원인을 해결하지 않으면 결혼생활에 있어 심각한 위험을 초래할 수 있으니 반드시 해결하고 넘어가야 한다.

 

따라서 이렇게 보면 산후우울증이란, 누구 혼자만 겪는 것이 아닌 출산 후 엄마와 아빠 모두 겪을 수 있는 중요한 문제라는 것이 인식되어지게 된다. 이러한 부분을 간과하고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안일한 생각을 가진다면, 어렵게 일군 가정을 순식간에 망가뜨릴 수 있는 무서운 선택이라는 것을 충분히 공감하고 인지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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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아빠의 산후우울증에 있어 올바른 대처법은 어떠한 것들이 있을까?

 

우선 엄마와 아빠에 있어 우울증이 원인이 되는 요인이 조금 다르다는 것을 알 필요가 있다. 엄마들은 호르몬의 변화로 인한 자연스러운 현상에서 깊어지는 경우가 많고, 아빠들은 심리적 원인에서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따라서 아빠들은 우울증을 일으키는 근본적인 원인이 해결되면 자연스럽게 나아지는 경우가 많은데,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의 상태를 파악해보는 것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우울증의 원인이 ‘좋은 아빠에 대한 심리적 압박감’이라고 한다면, 누구나 처음부터 잘할 수는 없는 것이기 때문에 실수하고 깨달아가면서 점차 배워나간다고 생각하면 좋겠다. 아직 다가오지 않은 미래를 미리 걱정하는 것보다, 지금 이시간은 아이와 아내가 나를 가장 필요로 하는 시기이기 때문에 현재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제일 좋은 선택임을 깨닫는 것이다. 부담감을 조금 내려놓고 자신을 믿고 응원해주다보면 어느새 마음이 많이 편안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울증의 원인이 육아스트레스나 아내의 우울증 등과 같은 이유에서 오는 것이라면, 필자는 사실 이 부분에 있어 ‘아내의 입장을 많이 생각해주자’라는 의견을 가지고 있다. ‘육아는 평등하게’라는 대명제의 원칙은 변함이 없지만, 육아나 엄마의 ‘우울증’같은 부분에서는 아빠가 좀 더 많은 부분을 배려하고 노력해 주길 원하는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서운할 수도 있겠지만,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일단,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산후우울증의 원인이 아빠와 엄마가 다르다는 데 있다. 엄마들이 겪는 산후 우울증은 출산 후 겪는 지극히 정상적인 현상이다. 출산과 동시에 생체 호르몬이 변하면서 몸의 기분도 같이 변하기 때문에 몸의 변화에 따른 정상적인 메커니즘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아빠의 경우에는 심리적 원인이 크기 때문에 빈도가 엄마의 비해 많지 않고, 발생해도 원인만 제거되면 책임감과 정신력으로 쉽게 극복해내는 모습을 보인다. 또한, 하루 종일 집안에만 갇혀 아기와 씨름하는 아내에 비해, 아빠는 직장생활 등으로 좀더 상황이 여유롭기 때문에 충분히 생각하고 방법을 고민해 볼 수 있는 시간 또한 많다고 본다. (이 경우는 엄마 혼자서 육아를 담당해서 하고 있는 상황을 생각하고 쓰는 글이다.)

 

하지만, 엄마는 당연한 것처럼 오는 우울증에 마음 돌릴 틈도 없이 하루 종일 아기와 씨름하며 치대다보면, 유일하게 기댈 수 있는 곳은 남편밖에 없다. 술을 마실 수도, 직장 때문에 피곤하다고 핑계도 댈 수 없는 엄마의 유일한 쉴 곳은 남편의 따뜻한 말 한마디이다. 실제로 일본 도쿄의과치과대학 연구팀조사에서 임신 중 남편으로부터 모욕을 당하거나 욕설을 자주 들은 여성의 경우, 전혀 그렇지 않은 여성에 비해 산후우울증을 겪을 가능성이 약 4.85배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임신 중의 남편에 말에도 이렇게 민감하게 하는 반응하는 엄마들인데, 가장 민감한 시기인 출산 직후나 산후우울증을 알고 있는 기간이라면, 그 영향은 더하지 않겠는가.

 

따라서 이 기간에는 속상하고 서운해도 이것이 자연스러운 현상임을 인지하고 아내를 이해하려는 마음가짐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아내를 이해하고 편안하게 해줌으로써 아내가 우울증을 극복하고 다시 건강하게 돌아오는 기간이 더 빨라질 수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는 얘기다.

 

또한, 심리적 불안감과 우울증이 있어도 절대로 술로 해결하거나 그 자리를 피한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님을 명심해야 한다. 오히려 순간의 피함은 잠깐의 휴식은 줄 수 있으나, 근본적인 원인을 해결하지 못하기 때문에 나중에 더 큰 화로 돌아올 수 있다. 따라서 문제가 생기면 피하지 말고 그때마다 적극적으로 아내와 대화와 마음의 교류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내가 고민하는 부분이 어떤 것인지, 어떤 것을 원하는지 상대방에게 알려주어야 한다. 그래야 상대방도 이 부분에 대해 생각하고 해결할 방법을 찾을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울증이 심해지기 전에 적극적으로 대화를 통해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마지막으로 아빠들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다. 이 말은 아내들에게도 해주고 싶은 말이기도 한데, 아빠도 똑같은 사람이고 육아에 대해서는 초보이다. 말로 내색을 못할 뿐이지 속으로는 많은 걱정과 고민을 안고 산다. 철인이 아니기 때문에 직장스트레스와 잠도 못자면서 육아스트레스에 아내 우울증까지 겹치면 어떤 사람이라도 쉽게 버티지를 못한다. 따라서 늘 남편을 이해하고 존중해주는 마음가짐을 가져야 한다.

 

또한, 아빠역시 육아를 짐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하루빨리 아이를 가족으로 받아들이려는 자세를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 힘들면 힘들다고 얘기하고 울고 싶으면 울어도 좋다. 제발 ‘남자는 일생에 단 3번만 운다’라는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 얘기는 이제 그만하자. 이 각박하고 험난한 세상에서 흔들리지 않고 꿋꿋이 버텨나가려면, 자신의 감정에 솔직해지는 것이 좋다. 그만큼 고민도 많고 스트레스도 많은 시대다. 따라서 너무 힘들면 가끔씩 자신만의 시간을 가져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습관을 들이도록 하자.

 

산후우울증이란 어쩌면 필연과도 같은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을 하고 출산을 하며 가정의 행복과 인생에 있어 하나씩 넘어가는 관문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면 좋겠다. 중요한 것은, 모든 가정의 삶속에서 겪는 위기마다 이를 극복하는 유일한 열쇠는 서로를 사랑하는 마음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자료제공: 인슈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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