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다. 살리고 싶었다. 이제 스물. 젊음을 누리게 하고 싶었다. 포기할 수 없었다. 포기하기 싫었다. 주위에선 욕심이라 했다. 하지만 내겐 보였다. 상대의 골문을 향하는 단 한가지의 루트. IF와 IF와 IF가 연이어 일어난다면! 그것은 분명 절망에서 골망을 가르고 말리라.

그녀의 심기능이 돌아온 날. 나는 전율했고.

그녀가 눈을 뜨고 고개를 끄덕인 날. 나는 감동했다.

그녀의 폐기능이 악화된 날. 나는 눈물 흘렸고.

그녀의 마침내 눈을 감은 날. 나는 주저 앉았다.

 

사진_픽셀

모두가 안된다고 할 때, 나는 그녀가 살 수 있다고 믿었고 그것이 현실이 되어가는 날들은, 의사로서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순간들이었다. 이제는 모두들 기대하기 시작할 무렵, 하필이면 무서운 합병증이 찾아 들었고 현실이 지옥이 되어가는 날들은, 의사로서 견디기 힘든 최악의 순간들이었다.

그녀가 병과 싸우는 동안, 나는 온전히, 함께 웃고 웃으며 감정을 공유했다. 때문에 아픔은 곱절의 곱절보다도 컸다.

 

하지만, 고작해야 스무날을 함께 한 나는 체념이 빨랐고 그녀와 스무해를 함께한 부모들은, 끝까지 포기할 줄을 몰랐다. 이미 차가워진 손을 하염없이 붙잡고 있었다. 아무리 가망이 없는들 어찌 자식을 쉽게 보내랴. 어쨌든 아직 심장이 뛰고 있는데. 남겨진 부모를 달래느라 기계는 4일을 더 돌았다.

그 모습을 보는 게 너무 힘들어 피해다녔다. 마침내 심장이 멎은 순간, 통곡하는 그들의 모습은 미처 피할새도 없이 고스란히 내 두 눈에 담겼다. 평생 가슴에 남을 안타까움이 되리란 걸 직감했다.

 

스무날 넘게 머리로 환자를 보고. 가슴으로 보호자를 봤다. 그런데 심평원에서 치료비를 삭감한다고 연락이 왔다. 직접 보지 않고 차트로만 환자를 본 주제에, 망나니 마냥 펜대를 휘두른다. 그녀를 보내고 겨우 재웠던 가슴에 또 한번 생채기를 낸다.

27일의 치료 과정 중, 소생가능성이 사라진 마지막 4일은 보험인정을 못하겠다고 한다. 나보고 단호히 기계를 껐어야 한다고 한다. 나는 살리는 법만 배운 의사인데. 이제 죽이는 법을 배우라고 한다.

권력에 취해 문서로만 상황을 보는 자들은, 자식의 죽음을 아직 받아들이지 못하는 부모의 심정을 느끼지 못한다.

 

이의신청을 하기로 했다.

"그냥 삭감 시켜."

라고 썼다가 지웠다.

그리고 몇시간 동안 장문의 삭감 이의 제기서를 썼다. 옆에서 보고 있던 치프(Chief)가 말렸다. 걔네들 어차피 읽지도 않을텐데, 쓸데없는 일에 힘쓰지 말라고 했다.

"읽든 말든. 누군가는 이렇게 해야 세상이 바뀌지."

의학적 반론이 하나도 들어있지 않은 이의 제기서는 처음일 것이다. 오로지 사회적 측면에서만 작성했다. 아마도 이런 이의 제기서는 처음 봐서 필시 당황하리라. 물론 내 생각에도, 그들은 읽어보지도 않을 것 같다. 읽는다고 들어주는 일은 더더욱 없을 것 같고.

 

사진_픽셀

 

삭감 이의 제기

현재 보험상, “이미 진행된 다발성 장기부전으로 회복 가능성이 없는 경우”는 ECMO 시술의 금기에 해당합니다. 이는 환자에게 심대한 부작용을 끼치는 등의 의학적인 이유가 아니고, 무의미한 시술에 재화를 사용할 수 없다는 경제적인 이유 때문입니다.

상기 환자는 최초 ECMO 시술 당시 필요성은 인정되나, 상태의 호전과 악화를 반복하다 24일째 소생 가능성이 희박해졌으며, 27일째 최종 사망하였습니다. 이를 토대로 23일간의 보험 급여는 인정되나, 마지막 4일의 치료 비용을 삭감한다는 고지를 받았습니다.

심사 내용을 존중합니다. 본 의료진도 환자 진료 당시 같은 판단을 내렸습니다. 더는 치료가 의미 없음을 고지하였습니다. 그러나 보호자들은 그에 동의하지 않았으며, 치료 지속을 강력하게 원하였습니다. 결국 최종 삭감에 해당하는 4일은, 의료진이 아닌 보호자의 의지로 시술을 지속한 기간입니다.

상기 환자와 비슷한 경우는 과거 심의 사례에서도 확인 할 수 있는 바, 이는 다음과 같습니다.

“장기간 ECMO를 적용하고 회복이 안되어 ECMO의 적응증에 해당되지 않더라도 이를 도중에 중단하는 것은 윤리적, 사회적으로 어렵다는 의견임. 그러나, 보험급여의 원칙상 무의미한 치료라고 판단한 경우에 이를 인정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의견임.”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보험급여 체제를 유지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한정된 자원으로 최대의 효과를 거둬야 합니다. 더 많은 사람에게 혜택을 나누어 주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재화가 고갈되면 보험 체제를 유지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무의미한 치료에 자원을 사용하지 않는 것’은 보험급여의 원칙입니다.

그러나, 경제적인 원칙을 따르는 것만으로, 보험급여 체제를 유지하는 책임이 완수되는 것은 아닙니다. 의료의 공급자와 수요자 사이에서, 균형으로 양쪽의 불만을 다스려야 합니다. 현 체제를 보다 공고히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것도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또 다른 책임입니다. 이러한 면에서 살펴보면 이번 심사 결과는 아쉽습니다.

처음부터 다장기 부전으로 소생가능성이 없었다면, ECMO 시술을 시행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시술 당시에는 소생가능성이 있었으나, 치료 과정 중 환자의 상태가 변하는 상황은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이미 받고 있는 시술을 중단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니다. 마치 인공호흡기를 떼어내는 것처럼, ECMO 시술을 중단하는 순간 환자가 사망할 것임은 명백합니다. 이는 현장의 의료진에게 안락사 시술을 요구하는 것과 마찬가지의 상황입니다.

과거 보라매병원 판결에서 보듯, 의사는 안락사에 법적 책임을 져야 합니다. 웰다잉법은 아직 시행되지 않았으며, 웰다잉법이 시행되더라도, 환자나 보호자의 동의가 없는 안락사는 불가능합니다.

해당 환자의 보호자는 마지막 순간까지 최선의 치료를 유지하기를 계속 주장하였습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치료를 종결하고 환자의 생명을 끊는 직접적인 행위를 할 수는 없습니다. 윤리적, 사회적인 비난은 감수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법적인 책임까지 감수하라는 것은 가혹한 처사입니다.

건강보험심사 평가원은 의료 공급자와 수요자 사이를 조율할 책임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주문을 공급자에게 일방적으로 요구하는 것은 심각한 직무유기이며, 이는 결국 보험급여 체제에 균열을 일으키게 될 것입니다.

소생의 가능성이 없다면 의사의 판단으로 치료를 중단하는 것이 가능하도록, 법적인 개정을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공개적으로 먼저 요구해 주십시오. 아니면 임의비급여 방식으로, 보험급여 기준에 해당되지 않으면 환자에게 직접 치료비를 받을 수 있도록 기준을 개정하여 주십시오. 혹은 납득할 수 있는, 현장에서 시행 가능한 또 다른 제 3의 방법을 제시하여 주십시오.

현재 의료진이 실제 진료 현장에서 이미 시행한 시술을 거둬들일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상기 환자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 책임을 의료기관에 물어, 진료비를 삭감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고로 이의를 신청합니다. 거듭 말합니다. 해결책을 먼저 제시해주십시오. 모든 논의는 그 이후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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