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코드라마(psychodrama)는 제이콥 레비 모레노(Jacob Levi Moreno)라는 미국의 유태계 정신과 의사가 창시한 즉흥 연극이자 치료이다.


우리나라 의료 현장에서는 정신치료극이란 이름으로 건강보험 수가가 등재된 집단정신치료(group psychotherapy)로 알려져 있고, 일반 대중에게는 심리극이란 이름이 더 친숙한 것이 바로 사이코드라마이다.

 

저자는 1995년부터 사이코드라마와 인연을 맺고 지금까지 끊임없이 무대에 섰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왔다. 정신의학신문에 연재되는 내용을 통하여 사이코드라마의 실제를 독자들과 함께 경험하고 나누고자한다.

 

사진_픽셀

금요일 저녁, 사이코드라마 소극장이 다시 활발해졌다. 우중충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사이코드라마를 관람하러 오시는 관객들로 인하여, 소극장이 오랜만에 들썩였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미 사이코드라마가 알려진지 수십년이 지났는데, 여전히 생전 처음 사이코드라마를 접하고 경험하러 오시는 분들이 대다수이다. 그리고 이들은 ‘단지’ 사이코드라마를 구경하러 오신 분들이다. 이들에게 사이코드라마의 목적과 참여를 설명하는 것이 늘 반복되는 첫 과정이다. “사이코드라마는 열린 연극입니다. 여러분이 주인공과 배우(보조자아)로서 함께 참여하시게 됩니다!” 이렇게 설명을 드리면, 다수의 관객들은 얼굴빛이 어두워진다. 일반 연극 공연처럼 ‘단지’ 구경온 것인데... 직접 참여하는 연극이라는 소리에 긴장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이들이 긴장을 내려놓고 자연스레 극에 참여하도록 이끄는 것이 다름 아닌 ‘사이코드라마 디렉터’의 역할이다.

 

이날 저녁도 어김없이 집단을 준비시키는 워엄-업(warm-up)으로 그 포문을 열었다. 소시오메트리(sociometry)를 이용한 집단 작업으로 집단이 서로 조금씩 알아가도록 액션소시오그램 (action sociogram)으로 첫 단계 작업이 시작되었다. 집단 안에서 상호간 호감과 비호감에 대한 선택을 행동으로 묘사하는 기법을 액션소시오그램이라고 하는데, 보통 자신이 선택한 사람에게 다가가서 그 사람의 어깨에 손을 얹는 방식으로 표현한다. 이렇게 집단원들이 각자 자신의 선택을 몸으로 표현하면, 사이코드라마 무대는 집단원들의 선택으로 ‘뒤엉킨’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 마치 기차놀이 하는 모습과 비슷하게 되기도 하고, 소용돌이치는 모양으로 사람들이 서로 엮여있는 모양을 보이기도 한다.

 

시기가 7월이라서, 상반기를 돌아보는 의미의 워엄-업으로 진행하였다. “지난 상반기 동안에 가장 열심히 사신 것 같은 분을 마음에서 한 분을 정하세요, 단 자신은 제외하고!” 디렉터의 주문에 따라 참여자들은 한 분을 선정해야한다. 물론 이것은 텔레(tele)라고 불리는 사이코드라마의 ‘보이지 않는 이끌림’에 의거하여 누군가를 선택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매우 주관적인 선택이 될 수 있지만, 타인의 눈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미지)을 생각해보게 되는 작업이라는 의미를 가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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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시선으로 보는 자신의 모습은 사이코드라마에서는 매우 익숙한 광경이다. 역할바꾸기 /역할교대(role reversal)라고 불리는 매우 중요한 사이코드라마 기법이 있는데, 이는 상대방의 역할로 들어가 자신을 이야기하고 표현하는 것이다. 즉 타인의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게 하는 역할놀이(role playing)기법이 역할바꾸기이다. 이러한 작업의 집단적 표현이 바로 액션소시오그램이라고 할 수 있다.

 

타인이 바라보는 자신에 대한 모습이기 때문에, 이를 진행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조심스러운 입장을 취하고 이끌게 된다. ‘타인에게 내가 부정적인 이미지를 보이고 있다’는 피드백을 만약 집단에게서 받는다면, 그 사람은 마음이 위축되고 기분이 나빠질 수 있다. 이는 사이코드라마의 진행을 위해서 바람직한 방향은 아니다. 사이코드라마를 실시하는 가장 큰 목적은 모레노가 얘기했듯이 ‘잃어버린 자발성을 회복시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부정적인 피드백이 주어지도록 워엄-업을 이끄는 것은 집단의 자발성이 감소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대부분의 작업에서 집단의 긍정적 피드백을 받을 수 있는 집단의 선택이 주어지도록 사전에 준비하고 들어간다.

 

그래서 이날도 ‘우리 중에서 가장 열심히 사신 것 같은 분’이라는 선택되면, 기분이 좋아질 수 있는 조건으로 액션소시오그램을 진행하였던 것이다. 30대 중반의 남성의 어깨가 가장 무거웠다. 즉 집단에서 가장 많은 지지를 받았다. 대부분은 그 분의 인상과 외양에 근거하여 선택한 것이었지만, 신기(?)하게도 대부분의 경우 실제로 그러한 분들이 선택을 받는다. 이것이 바로 소시오메트리(sociometry)의 힘이다. 이 남성 역시 직장과 학업을 병행하고 계셨고, 집에서는 남편이자 아빠로 동분서주하고 있는 말 그대로 매우 열심히 살고계신 분이었다. 집단의 강력한 지지를 받은 이 남성은 집단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할 수밖에 없었고, 자연스럽게 이 분은 비록 주인공은 아니었지만, 이 날 ‘가장 중요한’ 상대 역할로 맹활약하게 되셨다. 이렇게 사이코드라마는 서로 연결되어지고, 그 다음 지점으로 나아가게 된다.

 

이제 본격적인 마음 작업 시간이 되었다. 처음 만난 사람들끼리 서먹함을 다소 줄였고, 이어서 좀 더 깊숙한 마음을 드러내게 하는 작업으로 들어갔다. 대개 본격적인 이차적 작업이 성공적으로 진행되면, 주인공이 자연스레 무대로 나오게 되고 본극(enactment)단계로 넘어가게 된다.

 

역할 놀이(role playing)을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상황극’으로 집단의 참여도를 끌어올리는 시도를 하였다. 상황극 기법은 즉흥적이며 연극적인 작업이다. 일정한 상황이 주어지면, 그 안에서 역할 연기를 수행하고, 그러면서 자신과 가족 또는 환경을 돌아보도록 고안된 일련의 연극적 작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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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은 ‘구명보트’라고 불리는 상황극 작업을 통하여, 집단을 촉진하고 다가올 본극 작업을 준비하는 시도를 하였다. 구명보트는 배(유람선)를 타고 떠난 ‘가족 여행’ 중에 태풍을 만나서 조난된다는 한계 상황을 집단에게 설정해주고, 그 상황에서 어떤 중요한 선택을 해야 하는 미션이 각 개인에게 주어진다. 이를 조난당한 상황의 역할연기와 함께 풀어가는 작업이 바로 구명보트 상황극이다. 연극적인 작업이라서 시간 소모도 많고 진행을 위한 지시와 개입이 상대적으로 많은 기법이기 때문에, 집단과 디렉터가 함께 준비되어있지 않으면 제대로 수행하기가 어렵다. 이제 금요일 저녁, 구명보트 상황극으로 직접 들어간다. 모든 상황은 리얼(real)하다.

 

 

저자소개

사이코드라마 수퍼바이저, 정신과 전문의
現 솔빛정신건강의학과의원 및 한국에니어드라마연구원 원장
現 한국임상예술학회 회장 및 現 한국임상사이코드라마연구소 대표
現 은평구민과 함께 하는 심리극 월간 공연 ' 나를 찾아떠나는 여행' 연출
前 '심리극회 거울과 가면' 및 'ACT심리극연구소' 대표 
EBS '가족이 달라졌어요', MBC '사주후愛', 한국직업방송 '新 직업의 발견' 등 다수 참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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