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의정부 성모사랑정신건강의학과 원장 유길상 전문의]

우리는 성장하면서 신체적(physical), 감정적(emotional), 성적(sexual) 등 다양한 종류의 학대와 폭력을 경험하거나 목격한다. 학대와 폭력 중 가장 빈번한 형태는 신체적인 것이다. 지금까지 가정과 학교, 학원 등에서 좋은 성적과 결과를 얻기 위함이라는 명목 하에 많은 체벌이 행해져왔다. 과연 이러한 육체적인 체벌이 장기적으로 좋은 결과를 이끌어낼까? 또한 이런 과정을 통해 얻어진 결과는 지속적으로 유지될 수 있을까?

2015년 12월,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후배를 무차별 폭행하여 전치 6주의 상해를 입혔다. 그는 지금까지 쌓아온 긍정적인 이미지와 명예를 한순간에 잃게 되었다. 현재는 많이 바뀌었지만 과거에는 유독 스포츠 분야에서 기강확립을 이유로 선후배간에 혹은 지도 코치에게 신체적 폭행이 일상적으로 행해졌고 묵인되었다.

2016년 4월에 개봉된 영화 <4등>은 스포츠 교육 과정에서 일어나는 체벌에 관한 영화다. 수영에 천부적인 재능을 보이는 준호는 대회에만 나가면 4등을 한다. 1등도 아니고 그렇다고 2등도 아니며 하다못해 3등도 아닌 4등. 4등은 그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다. 모든 일을 제쳐두고 성심성의껏 뒷바라지를 하는 준호의 어머니는 답답하기만 하다. 그래서 수소문 끝에 용하다는 수영 강사인 광수를 찾아간다.

수영 강사 광수는 한때 수영 천재였다. 그는 과거에 한국 수영 신기록을 세웠고 아시안 게임에 출전하여 메달을 딸 것이라며 큰 기대를 받았다. 하지만 선수 시절 광수는 도박에 빠져 중요한 시합에 출전을 하지 못하게 된다. 그리고 정신 상태가 바르지 않다는 이유로 스승에게 신체적 폭행을 당한다. 폭행을 당하는 도중, 광수는 이를 참지 못하고 수영장을 뛰쳐나간다. 그리고 광수는 수영을 그만둔다.

수영 강사 광수는 과거를 회상하며 스승이 조금 더 이른 시기에 체벌을 해 주었으면 아시안 게임에 가서 금메달을 땄을 것이라며 푸념을 한다. 엄마 손에 이끌려 광수를 찾아온 준호는 수영 훈련 과정에서 광수로부터 일상적이고 반복적으로 체벌을 당한다. 이후 준호는 처음 출전한 수영 경기에서 1등과 0.02초 차이로 수영을 시작한 이후 처음으로 은메달로 입상을 한다. 준호의 어머니는 신이 난다. 하지만 준호는 훈련 중에 계속 이어지는 체벌을 견디지 못하고 스승인 광수가 그랬던 것처럼 수영을 그만둔다.

폭력의 피해자는 가해자를 증오하는 동시에 가해자의 가치관과 신념, 태도 등을 내재화(internalization) 하고 동일시(identification) 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피해자는 아무런 죄책감 없이 지금까지 받아온 폭력을 누군가에게 반복한다. 가정 내에서 자녀를 학대하는 부모의 90퍼센트는 그들의 부모에게 심한 신체적인 학대를 당한 적이 있다. 영화에서 수영 강사 광수는 그의 스승에게 체벌을 당했다. 광수는 체벌을 혐오하여 수영장을 뛰쳐나갔지만 훈련과정에서 제자에게 똑같은 육체적 폭력을 행사한다. 영화 중 섬뜩한 장면은 준호가 어린 동생에게 수영 강사로부터 받은 동일한 형태의 체벌을 가하는 것이다.

4등만 하는 준호는 체벌을 받는 훈련 과정을 통해 태어나서 처음으로 메달을 목에 걸었으나 수영을 그만두는 위기에 처한다. 교육과정에서 육체적인 폭력은 일시적인 효과를 가져 올 수는 있으나 장기적으로는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한다. 영화에서 수영에 재능이 있고 수영하는 것을 좋아했던 광수와 준호가 수영을 그만둔 것처럼.

학대와 폭행의 부정적인 결과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학대를 받은 아동들은 그렇지 않은 아동들에 비해 우울, 불안, 공격적인 행동, 편집적인 사고, PTSD 등의 증상을 보일 수 있고, 알코올 중독 등의 물질 사용 장애에 쉽게 빠진다.

폭력은 지울 수 없는 상처와 후유증을 남긴다. 그리고 폭력은 반드시 대물림 된다. 우리는 다양한 형태의 폭력을 끊임없이 경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