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코드라마(psychodrama)는 제이콥 레비 모레노(Jacob Levi Moreno)라는 미국의 유태계 정신과 의사가 창시한 즉흥 연극이자 치료이다.


우리나라 의료 현장에서는 정신치료극이란 이름으로 건강보험 수가가 등재된 집단정신치료(group psychotherapy)로 알려져 있고, 일반 대중에게는 심리극이란 이름이 더 친숙한 것이 바로 사이코드라마이다.

 

저자는 1995년부터 사이코드라마와 인연을 맺고 지금까지 끊임없이 무대에 섰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왔다. 정신의학신문에 연재되는 내용을 통하여 사이코드라마의 실제를 독자들과 함께 경험하고 나누고자한다.

 

집단원들 사이의 심리적 거리를 좁히고 서로에 대한 이해와 공감을 늘리기 위한 방법들 중에서 이날은 사회측정학(sociometry)의 한 기법인 액션 스펙트로그램(action spectrogram)을 이용하여 집단 간의 작업을 시작하였다. 서서히 집단이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15명의 집단원들에게 여름 휴가의 필요성, 즉 휴식에 대한 욕구(need)를 알아보는 작업으로 그 시작을 알렸다. 집단원들에게 자신의 휴가에 대한 필요한 정도를 측정(?)해볼 것을 요구하였다. 물론 주관식은 아니고 객관식 답안으로 친절하게 제시하였다. 휴가의 필요성을 4개의 연속된 척도로 나누고, 그 안에서 자신의 필요에 맞춰 선택하는 방식으로 진행하였다.

 

사진_픽셀

‘매우 필요함/필요함/필요 없음/매우 필요 없음’으로 구분된 척도(scale) 위에 자신의 선택을 보여주면 된다. 즉 자신이 선택한 척도에 집단원들이 각자 줄을 서면, 자신의 선택과 집단 내 타인의 선택이 한 눈에 보이게 되고, 집단 구성원들의 욕구 수준과 상황을 상호 비교할 수 있다.

 

본 집단에서는 다행히도 ‘매우 필요함’과 ‘매우 필요 없음’에 선 사람이 소수였고, ‘필요함’과 ‘필요 없음’이 대다수를 차지하였다. 이미 얼마 전에 휴가를 다녀와서 현재는 휴가가 필요 없다는 의견을 보인 분도 있었고, 피전 프로그램의 준비과정부터 참여했던 사람으로서 그 책임감으로 ‘매우 필요함’에 서신 분도 있었다. 집단원들과 즉석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비록 서로 다른 줄(선택)에 서있지만, 실상은 비슷한 마음이라는 점을 깨닫게 되고, 집단은 서로 연결되어간다.

 

첫 작업을 끝내고 보다 동적인 단계로 들어갔다. 앞서 진행된 대화를 중심으로 하는 다소 정적인 작업에서 빠져나와, 집단원들이 서로 움직이고 몸으로 연결되는 경험을 위한 두 번째 작업을 시작하였다. ‘인간 레고(lego)’라고 불리는 작업으로, 여행갈 때 타고 싶은 교통수단을 분류하였고 이에 비행기와 기차 그리고 배가 선정되었다. 그리고 집단을 자신들이 타고 싶은 교통수단별로 세 그룹으로 나누고, 이를 집단원들이 자신의 몸을 이용하여 연결 및 표현하도록 하였다.

 

처음에는 다소 난감해하였으나, 곧 서로 상의에 들어가고 그 모양을 만들어가기 시작하였다. 얼마 시간이 지나지 않아서, 비행기와 기차 그리고 배가 완성되었다. 양 날개와 꼬리가 인상적인 ‘비행기’, 비록 21세기지만 여전히 달리는 ‘증기 기관차’ 그리고 돛이 달린 ‘요트’를 집단원들이 힘을 합쳐 보여주었다. 이렇게 준비 작업은 마무리 되었다.

 

이어서 본격적인 마음 여행을 떠나는 작업으로 들어갔다. 집단원이 그동안 가보았거나 혹은 가고 싶었던 여행지를 자신이 선택한 교통수단을 타고 여행을 떠났다. 물론 ‘상상’ 여행이었다. 미리 준비되어있었던 책상 3개를 수평으로 배치하고, 이를 지구상의 대륙들 – 유럽/아프리카, 아시아, 아메리카 –로 명명하였다. 집단원들은 각자 자신이 가고 싶은 여행지가 있는 대륙(책상)으로 이동하였다. 이렇게 혼자서 떠나는 여행이 시작되었다. 가장 많은 분들이 역시 유럽의 나라들로 가셨고, 아메리카 대륙이 그 다음 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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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 여행지에서 여행을 즐기면서, 새로운 미션이 추가되었다. 이것은 ‘마음’여행을 위한 핵심 장치이기도 하였다. ‘혼자’만의 여행을 즐기면서, 집에 머물고 있는 가족들 중 ‘한 사람’에게 편지를 쓰는 것이 집단원들에게 주어진 새로운 작업이었다. 이는 각 집단원들이 자신의 가족들과의 관계를 돌아보기 위한 목적으로 진행되는 것으로, ‘마음의 대상’이 분산되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일부로 단 한 명만을 떠올려서 편지를 쓰라고 한 것이었다.

 

주어진 종이 위로 편지를 써나갔다. 대부분 진지하게 남아있는 가족-배우자, 자녀 또는 형제자매와 조부모-에게 정성들여 편지를 썼다. 편지를 다 쓴 후, 집단원들을 ‘대상’별로 구분하여 다시 자리를 배치하여 이동시켰다. 배우자에게 편지를 쓴 집단이 제일 컸고, 그 다음이 자녀였다. 그리고 여동생과 친정어머니에게 편지를 보낸 소수의 집단이 만들어졌다.

 

동일한 대상을 향해 편지를 보낸 사람들끼리 집단을 이루고, 이제 서로 자신들의 배우자와 자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도록 시간을 충분히 드렸다. 책상에 둘러앉아서 두런두런 가족에 대한 이야기꽃을 피웠다. 아내가 마음의 병을 앓고 있는데 가장 큰 원인이 자신이었다는 것을 최근에 알았다는 한 남편의 고백을, 딸아이의 방황 때문에 힘들어하는 한 엄마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집단 안에서 나눈 이야기를 다른 집단원들에게 대표로 이야기해주는 시간을 짧게 가지므로, 부족하지만 집단과 집단은 다시 연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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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전체 프로그램의 종점으로 다가섰다. 모든 집단원들이 강의실 앞면으로 나왔다. 동그란 원으로 집단을 만들어보라고 하였다. 이윽고 사람으로 만들어진 작은 원이 완성되었다. 그리고 그 원 중심에 의자를 놓았다. 그 의자에는 각 집단원들이 편지를 써서 보낸 ‘그 사람(가족’)이 앉아있다고 상상하도록 하였다. 이는 사이코드라마 기법들 중 집단 분신(collective double)기법을 응용한 것으로, 내적 자기를 투사(projection)하는 집단 작업이었다.

 

이제 집단원이 한명씩 원(circle)에서 한발 앞으로 나와서 빈 의자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의자에 앉아있는 사랑하는 그 가족에게 하고픈 이야기를 하였다. 웃으면서 이야기하는 사람, 담담히 말하는 사람 그리고 눈물을 참아내면서 이야기하는 사람 등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가족에게 평소에 잘하지 못했던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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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작업이 끝났다. 모두는 수고한 자신들을 위하여 힘찬 박수를 보냈다. 기나긴 마음 여행을 끝내고, 잠시 참여 소감을 나누는 시간으로 그 마지막을 채웠다. 감사의 인사를 전해주는 한 남성의 얼굴에서 그 마음이 전해졌다. '모두가 행복했으면...'

 

 

저자소개

사이코드라마 수퍼바이저, 정신과 전문의
現 솔빛정신건강의학과의원 및 한국에니어드라마연구원 원장
現 한국임상예술학회 회장 및 現 한국임상사이코드라마연구소 대표
現 은평구민과 함께 하는 심리극 월간 공연 ' 나를 찾아떠나는 여행' 연출
前 '심리극회 거울과 가면' 및 'ACT심리극연구소' 대표 
EBS '가족이 달라졌어요', MBC '사주후愛', 한국직업방송 '新 직업의 발견' 등 다수 참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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