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윤희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O씨의 사연:

전 10년전부터 화장실에 자주 가야만 하는 강박증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당시 서울에서 취직 면접을 본 후 지방으로 내려가기 위해 버스를 타려는데 ‘버스를 타고나서 화장실에 가고 싶으면 어떡하지’, ‘그 상황을 누군가 보게 되면 얼마나 창피할까’라는 걱정이 갑자기 심하게 들어 결국 타지 못하고 기차를 이용하였습니다. 취업스트레스가 강박증상의 발생에 영향을 준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사진_픽사베이

그 후로 화장실에 대한 걱정때문에 일상 생활에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되었습니다. 처음엔 화장실을 다녀온 후 2~3시간 정도 활동이 가능했지만, 점차 그 간격이 점차 짧아져 수시로 다녀오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화장실에 자주 가는 모습을 다른 사람이 이상하게 볼까 사람을 만나는 것도 꺼리고, 화장실을 가지 않으려 물, 커피 등도 마시지 못합니다. 영화 보기, 버스 타기, 회의 참석, 치과 진료 등 일정시간 화장실을 갈 수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될 때는 극도의 불안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이러한 강박증상이 생긴지 2년 후부터 정신과에 다니기 시작하여 현재까지 약물 치료, 개인 면담, 집단 상담 등의 치료를 받아왔습니다. 그런데 담당 선생님이 보시기엔 많이 호전되었다고 하나 제가 느끼는 불안감이 줄어들지는 않았습니다. 사실 약 1년전부터는 불안감을 줄이기 위해 성인용 기저귀를 사용하고 있는데, 창피해서 담당 선생님께도 말씀 드리지 못했습니다. 기저귀를 착용한 후에는 불안이 줄어들어 그 동안 못 해봤던 것들도 도전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착용하지 않으면 오히려 더 커지는 불안 때문에 기저귀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렸습니다.

 

현재 재취업을 준비하고 있는데, 화장실 문제를 고려하여 외근이 없고 지하철 이용이 가능한 곳만을 대상으로 알아보다 보니 제한이 많습니다. 강박증상이 생기기 전의 자유롭게 활동하던 그때가 너무 그립습니다. 다시 그때로 돌아갈 수 있을까요?

 

사진_픽사베이

 

정신의학신문의 답장:

사연을 읽으며 O씨가 느끼셨을 고생이 얼마나 크셨을까 하는 생각에 안타까운 마음이 먼저 들었습니다. 이미 오랜 기간 병원을 다니시며 여러 치료를 받아봤지만 느껴지는 불안감은 그대로이니 더욱 답답하실 것 같네요.

 

이미 잘 알고 계실 것 같습니다만, O씨께서 앓고 계신 강박장애란 질환에 대해 간단하게 설명 드려보겠습니다. 강박장애에서 나타나는 강박 증상은 크게 강박 사고와 강박 행동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강박사고는 지속적인 생각, 충동 또는 심상이 침투적이고 원치 않는 방식으로 떠올라서 현저한 불안이나 괴로움을 유발하는 것 입니다. 그리고 이런 강박사고 때문에 불안이나 괴로움이 너무 커서 그 불안을 줄이기 위한 시도가 강박 행동입니다. 강박행동 없이 강박사고만 있는 경우도 강박장애로 진단을 할 수는 있지만, 75% 정도의 환자가 강박사고와 강박행동을 모두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O씨의 경우 ‘화장실에 제 때 못 가면 창피를 당할 수도 있다’ 라는 생각이 강박사고, 기저귀를 착용하는 것이 강박행동이 되겠지요. 하지만 O씨께서 기저귀를 착용하지 않았을 때는 이전보다 더 크게 불안하다고 스스로 말씀하셨던 것처럼 강박행동은 일시적으로 불안을 줄여 줄 뿐 근본적인 해법일 수는 없습니다.

 

이러한 강박장애를 일으키는 원인에 대해선 여러가지 설명이 있습니다. 우선 생물학적으로는 크게 뇌의 신경 전달 물질 중 세로토닌의 불균형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과, 기저신경절이라는 특정 뇌 부위의 이상으로 병이 생길 수 있다는 이론이 있습니다. 우리의 머릿속에는 수시로 여러가지 의미 없는 생각들도 생겨나는데, 기저신경절은 그런 생각들을 마치 그물처럼 걸러주는 역할을 합니다. 하지만 여기에 이상이 생겨 그물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할 경우 이런 생각들이 의식되고, 원치 않는데도 계속 반복적으로 떠오르면서 불안을 야기하게 되는 것이죠.

 

그림_닥터단감(유진수 외과 전문의)

한편 학습이론으로 강박장애의 발생을 설명하기도 합니다. 서로 상관이 없는 사건일지라도 반복해서 같이 일어나게 되면 두 사건 사이에 관계가 있다고 생각하는 현상이 일어나게 되는데, 이것을 조건화라고 합니다. 예를 들어 버스를 타거나 영화를 보는 도중에 소변이나 대변이 마려운 느낌이 드는 경험이 우연히 몇 차례 반복되다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머릿속에선 버스/영화관과 화장실이 연결되면서 버스를 타기도 전에 화장실에 가고 싶을까봐 불안해 하는 상황이 생기게 되는 겁니다.

 

강박장애의 가장 주된 치료법은 약물 치료와 인지행동치료입니다. 약물치료가 앞서 말한 세로토닌의 불균형을 교정하는 역할을 한다면, 인지행동치료는 ‘노출 후 반응방지’ 라는 기법을 이용하여 강박사고 때문에 두려워하는 상황에 맞닥뜨려도 실제로는 그렇게 불안하지 않다는 것을 환자 스스로 깨닫게 만드는데 초점을 맞춥니다. 두 가지 치료를 각각 하는 경우도 있지만, 일반적으로 병행했을 때 가장 큰 치료 효과를 볼 수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O씨께선 여전히 증상으로 인해 일상 생활의 큰 불편을 겪고 있기 때문에 치료를 계속 받으시는 게 필요해 보입니다. 스스로 느끼기에 별로 좋아지지 않았다는 생각도 어쩌면 아직 남아있는 불안이라는 감정 때문에 더 그렇게 느끼는 것일수도 있습니다. 담당 선생님께서 좋아졌다고 말씀하시는 건 분명히 관찰되는 증상의 정도가 이전에 비해 줄어들었기 때문이 아닐까요? 또한 강박증상의 정도를 객관적으로 평가해줄 수 있는 척도 검사를 통해서도 실제 증상의 호전이 있는지 확인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다만 남아있는 증상을 정확히 파악해야 앞으로 그에 맞는 적절한 치료를 할 수 있으므로, 부끄럽고 힘드시겠지만 선생님께 기저귀 사용에 대해 말씀 드리길 권유드립니다.

 

강박장애의 치료가 정말 쉬운 과정이 아니라는 것은 저희도 잘 압니다. 하지만 꾸준히 치료를 받은 분들은 대부분 증상이 나아지는 걸 경험했답니다. O씨께서는 긴 시간 치료를 받아와서 많이 지치셨겠지만, 그래도 이럴 때일 수록 조급한 마음을 버리고 치료에 집중하신다면 반드시 회복해서 평범한 일상으로 복귀하실 수 있을 거라고 믿습니다.

 

 

저작권자 © 정신의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