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아 사랑이야에서 바라 본 조현병

사진 SBS 화면 캡처

철지난 드라마(요즘 같은 세상에서 방영 된지 1년이 다 되어가는 프로는 철지났다고 표현할 만 하다.) 이야기를 조금 해볼까한다. 왜냐하면 이 <괜찮아, 사랑이야>(이하 <괜사>)는 마치 '정신질환 편견타파 홍보영상'처럼 느껴질 만큼 정신질환을 의학적, 도덕적으로 상당히 신중하게(그로 인해 재미가 반감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리고 선정적이지 않게 묘사해 주어,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로서의 내게는 가치 있고 고마운 드라마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ADHD(attention deficit/hyperactivity disorder,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가 아닌데도 자녀의 성적을 올리기 위해 ADHD약을 무작정 처방해달라는 어머니를 정신건강의학과 의사인 지해수(공효진)가 단칼에 거절하며 훈계(?)하는 내용이라든가, 뚜렛증후군은 약물과 행동치료, 이완요법 등으로 얼마든지 일상생활이 가능하다고 역시 정신건강의학과 의사인 조동민(성동일)이 설명하는 장면, 주관적 우울감 없이 불면, 식욕부진만으로 정신건강의학과 외래를 찾은 환자에게 지해수가 "정신건강의학과에 대한 편견이 아직 있는데 이 증상들만으로 찾아오셨다니, 굉장히 진보적이시네요." 라고 칭찬(?)하는 대사 등, '건강하고 착한' 장면들을 많이 넣으려 애쓴 게 엿보인다. 정신질환이라고는 사이코패스와 다중인격만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상당수의 정신질환 관련 작품들을 생각해보면, <괜사>는 그런 의미에서 귀하다.

사진 SBS 화면 캡처

<괜사>에 등장하는 주된 정신질환은 주인공인 장재열(조인성)이 앓는 조현병(schizophrenia, 정신분열병)이다. 장재열에게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강우(도현수)라는 소년이 존재한다고 믿는 망상(delusion, 사실과 다르고, 설득되지 않는 믿음.)과, 강우가 보이는 환시(visual hallucination)가 있으며, 그와 대화도 한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물론 장재열이 혼잣말을 하는 것으로 보이게 된다.

실제의 조현병에서는 환시보다는 환청(auditory hallucination)이 압도적으로 많으며, 오히려 환시만 있는 경우에는 뇌의 기질적 문제 등 다른 질환의 가능성을 먼저 고려한다. 그러나 영화 <뷰티풀 마인드>에서도 조현병인 주인공의 증상을 주로 환시로 묘사했듯, 이는 극의 시각적 효과를 위해 어쩔 수 없는 부분이었을 것이다.

이러한 시각적 의도 이외에도, 드라마로서의 ‘낭만화’를 위해 조현병의 보편적 양상과는 조금 다르게 묘사된 부분들이 더 있다. 정신질환이 극의 재미를 위한 소재로 소진되어 버리곤 했던 작품들과는 달리 전체적으로 굉장히 신중하게 만들어진 <괜사>에서의 조현병과 실제 조현병을 비교해 보는 작업은, 조현병이라는 질환에 우리가 좀 더 섬세하게 다가갈 수 있도록 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사진 픽사베이

<괜사>에서는 두 가지가 결정적으로 조현병의 ‘낭만적’ 묘사에 기여한다.

1. 어린 시절의 슬픈 사연과 상처가 조현병의 발병에 ‘결정적인’ 작용을 한 것으로 표현된 점. 이것은 실제로 많이 받는 질문과도 관련이 있다. "얘가 어릴 때 왕따를 당했는데... 이게 없었다면 이 병이 안 생겼을까요? 맺힌 얘기를 다 털어놓으면 약 없이도 낫지 않을까요?" 그러나 조현병의 발병에는, (다른 만성 질환들처럼) 생물학적 요인을 비롯한 다양한 요인, 그리고 아직 우리가 알지 못하는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과거의 트라우마 하나만이 조현병의 발병 ‘여부’에 기여했을 확률은 낮다. 조현병의 주 증상인 망상과 환청의 '소재'가 과거의 상처나 그것을 일으킨 인물이 될 수는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인물이 환자의 조현병을 결정적으로 일으켰을 가능성은 낮은 편이다. 망상과 환청에는 소재가 필요하고, 과거의 인상 깊은 경험들이 그 소재가 되기 쉽기 때문에, 과거의 스트레스나 트라우마가 망상, 환청에 반영될 수는 있다.

2. 장재열의 증상이 환각, 망상에만 주로 국한되어 있는 것.

1) 사고(생각)의 과정.

조현병에서 나타나는 사고의 장애는 크게 사고 내용(content)의 장애와 사고 과정(stream, 흐름)의 장애로 나뉜다. 사고 내용 장애의 예로는 망상이 있고, 사고 과정의 장애의 예로는 논리적 연결의 느슨해짐(이완) 등이 있다. 사고 과정이라는 것을 거칠게 비유하면 사고 내용을 전개하거나, 타인의 말을 이해하는 '틀'이라고 할 수 있다. 조현병 환자의 망상은 주변 사람들이 가진 보편적 틀과는 조금 다른, 환자만의 독특한 ‘틀’에 담겨 표현되고, 주변인들이 조현병 환자에게 해주는 말 역시 환자만의 ‘틀’을 거쳐 입력된다.

<괜사>에서는 조동민(성동일)이 장재열에게, 그가 혼자서 논밭을 뒹굴었던(즉 아무도 없는데 누군가와 싸운다고 생각하며 그런 행동을 했던) CCTV 장면을 보여주는 식으로 그의 망상을 바로 직면(confrontation) 시키면서 그것이 망상임을 설득하지만, 실제 치료현장에서는 일단 망상에 대해 무조건적인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으면서 조심스럽게 접근하는 것이 원칙이다.

조현병의 증상이 심할 때는 사고를 전개하는 과정의 논리적 연결성이 다소 느슨해져 있기 때문에, 섣부른 직면은 환자를 오히려 혼란스럽게 하여 망상을 가중 시킬 수도 있고, 의사가 자신의 얘기를 믿어주지 않는다고 여겨 의사를 불신하거나 망상으로 더 도피하는 역효과가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 극단적인 경우, 예를 들어 CCTV 증거 역시 조작된 것이라는 등의 새로운 망상이, 자신만의 '틀'을 통해 만들어질 수도 있다.

환자의 틀에 보편적인 틀(즉 일반적인 사람들을 설득하는 논리)를 억지로 갖다 대기만 하는 것은, 서로 미묘하게 다른 언어를 계속 사용하는 것만큼이나 환자를 지치게 할 수 있다. 극중에서의 장재열과 조동민처럼, 장재열의 망상을 마치 장재열 손바닥에 난 상처를 들여다보듯이 객관적 입장에서 함께 이야기할 수 있으려면, 의사가 자신의 생각을 믿지 않는다는 배반감이 들지 않게 주의하면서 신뢰 관계를 형성하는 동시에, 신중한 약물치료를 통해 급성 증상을 조절하는 일이 선행되어야 한다.

2) 감정, 의욕의 문제.

<괜사>에서의 장재열과는 달리, 실제로 조현병이 심할 때는 발병 전에 비해 기쁨과 슬픔 등의 감정을 풍부하게 느끼고 표현하지 못하거나, 일상의 크고 작은 과제들(밥먹기, 이닦기에 이르기까지)을 수행하기 위한 의욕(volition), 동기(motivation), 의지(will) 등이 부족해기도 하고, 사람들을 만나는 것을 꺼리기도 한다. 이것을 조현병의 양성증상(망상, 환청 등)과 대비되는 음성증상이라고 부른다. 이러한 음성증상은 조현병 투병에 있어서 본인과 가족들에게 더 큰 인내심을 요구할 때가 많다. 환자, 보호자, 의사 모두 겉으로 쉽게 드러나는 양성증상 못지않게 음성증상에 관심을 많이 기울여서 활동의 동기를 유발하고, 감정 표현과 대인관계를 격려하는 것은 삶의 질(quality of life)을 높이는 데 매우 중요하다.

 

지금까지 <괜사>를 빌어, 조현병의 민낯에 대해 조금 더 이해할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해보고자 하였다.

<괜사>가 끝까지 소중한 드라마인 이유는, 장재열이 자신의 투병 사실을 대중에게 당당히 알리고 약물치료를 꾸준히 받으면서, 누구나 마땅히 누려야 할 일상의 행복을 놓치지 않고 살아간다는 결말 때문이다(철지난 드라마이니 스포일러를 하였다. 너그럽게 이해해 주시길.). 이 것은 우리가 조금씩 편견에서 벗어날수록 지금보다 더 많은 조현병 환자들이 도달할 수 있는 지점이기도 하다.

1950년대에 클로르프로마진(chlorpromazine, 최초의 항정신병제)이 탄생한 이후 계속 개발된 수많은 약들 덕분에, 그 기원을 따지기 어려울 정도로 아주 오래 전부터, 아주 오랜 세월 동안 조현병 환자들에게 가해졌던 가혹한 물리적인 처치들이 사라질 수 있었고, 그들의 삶의 질을 높였으며, 꾸준히 약을 먹으면서 일상을 영위하고 직업생활을 잘 유지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마지막으로, 조현병 진단 후 치료를 받으면서 USC 법대 교수로 재직 중인 Elyn Saks의 TED talk를 첨부하며.

http://www.ted.com/talks/elyn_saks_seeing_mental_illness

"schizophrenic(정신분열인)은 없다. A person with schizophrenia (정신분열병(조현병)을 가진 사람)이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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