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다루기 - (1) 상황 파악하기

[정신의학신문 : 정정엽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감정은 행동을 결정짓는 가장 큰 요인'이라는 것을 이전 글 감정 : 행동을 결정짓는 가장 큰 요인에서 설명했다.

 

다음으로 알아봐야 할 것은 ‘그렇다면 이런 감정들은 우리 자신을 어떻게 행동하게끔 만드는가?’이다.

 

앞선 시간에 설명한 ‘행동 찾기’를 반복해서 하다보면 자신이 주로 어떤 감정에 의해 움직이는지 알 수 있다. 또한 여기에 더해서 우리 자신을 움직이는 어떤 감정이 우리가 행동을 하고 난 후 어떻게 변화하는지도 알 수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사람은 자기 마음의 강렬한 감정을 줄이기 위해 행동한다. 좋지 않은 감정을 피하거나, 좋은 감정을 쫓는 행동을 통해서 말이다.

 

앞서 말한 알아봐야 할 질문을 바꾸어야 할 것 같다.

‘그렇다면 이런 감정들은 우리 자신을 어떻게 행동하게끔 만드는가?’가 아니라

‘우리는 이러한 감정들을 처리하기 위해 어떻게 행동하는가?’이다.

 

우리는 감정에 휘둘리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자신의 감정을 적절히 다룰 수 있다.

어떻게? 행동함으로써.

주체는 감정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다.

 

앞장에서 설명한 죄책감, 수치심을 포함해 아래에서 설명할 이런 좋지 않은 감정을 피하기 위한 행동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맞서 싸우거나, 도망가거나, 반응하지 않는 것(휴식을 취하는 것, 도움을 기다리는 것)이다.

심리학 용어로 투쟁, 도피, 얼음 반응이라고 한다.

 

사실 이런 반응들은 단순히 좋지 않은 감정을 피하기 위한 반응이 아니라 생존을 위해 아주 중요한 반응이다. 우리가 생존을 위해서는 궁극적으로 어떤 행동을 해야만 한다. 그것도 각각의 상황에 맞는 아주 적절한 행동을 말이다. 감정은 이런 반응을 용이하게 만드는 지표이다. 어떤 상황에 어떤 반응이 적절한지 가르쳐 주는 신호인 것이다.

 

자신의 먹을 것을 뺏는 사람이 있다면 싸워서 물리쳐야 하고, 위험한 상황에서는 도망쳐야 한다. 이도저도 못하는 상황에서는 잠시 숨을 고르고 주위에 도움을 요청하거나 재정비를 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감정은 지금 상황이 싸워야 하는 상황인지, 도망가야 하는 상황인지, 그것도 아니면 잠시 반응을 미루고 도움을 청해야 하는 상황인지 즉각적으로 알려준다.

 

사진_픽사베이

• 화라는 감정을 살펴보자. (화는 투쟁 반응과 관련이 있다.)

사람은 왜 화가 나나?

화라는 감정은 싸움을 전제로 하는 감정이다. 화라는 감정은 자신에게 지금은 싸워야 하는 상황임을 알려주는 것이다.

그럼 사람은 언제 싸움을 하나? 사람은 자신이 공격받는다고 인지할 때 화를 느끼고 싸울 준비를 한다.

공격받는다고 인지하는 상황은 두 가지 정도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 번째는 자신의 존재가 공격당할 때, 즉 무시 받는다고 느낄 때 화가 난다. 두 번째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이 공격당할 때, 즉 자신의 돈이나 시간, 노력이 손해 본다고 느낄 때 화가 난다.

 

• 불안이라는 감정을 살펴보자. (불안은 도피 반응과 관련이 있다.)

사람은 왜 불안한가?

불안이라는 감정은 도망을 전제로 하는 감정이다. 불안이라는 감정은 자신에게 지금은 도망가야 하는 위험한 상황임을 알려주는 것이다.

그럼 사람은 언제 도망을 가나? 사람은 자신이 위험하다고 인지할 때 불안함을 느끼고 도망갈 준비를 한다.

두려움의 감정은 두 가지 정도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지금 당장 닥쳐온 위험(공포라고 이야기하고)인지, 앞으로 다가올 위험(불안이라고 이야기 한다)인지로 나눌 수 있다.

높은 곳에 올라가면 무섭다. 이는 떨어지면 위험하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다.

곧 다가올 시험에 때문에 불안함을 느끼는 것은 시험을 망쳤을 때의 좋지 않은 상황을 미리 알려주는 것이다. 우리는 이런 불안을 피하기 위해 공부를 한다.

 

우울이라는 감정을 살펴보자. (우울은 얼음 반응과 관련이 있다.)

사람은 왜 우울한가?

우울이라는 감정은 휴식을 전제로 하는 감정이다. 우울이라는 감정은 자신에게 지금은 재정비를 하고 도움을 요청해야 할 상황임을 알려주는 것이다.

그럼 사람은 언제 재정비를 하는가?

사람은 자신이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인지할 때 우울함을 느끼고 숨 고르기를 한다.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은 상실과 관련이 깊다.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졌다든지, 사고로 팔이나 다리를 못 쓰게 됐다든지, 실직을 하게 된 상황에서는 우울하고 무기력 할 수밖에 없다. 이때는 발버둥을 치기보다는 잠시 휴식을 취하고 도움을 청해야 하는 상황임을 알려주는 것이다.

우울이라는 감정의 좋은 점에 대해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어서 예를 하나 더 들어보겠다.

우리는 낯선 집단에 들어가면 자신도 모르게 우울함을 느끼며 위축된다.(이는 원래 속해 있던 집단에서 누리던 지위의 상실과도 관련이 있다.) 전학을 가거나 새로운 직장에 들어갔을 때를 생각해보자. 이는 낯선 집단에서 이미 자리를 잡고 힘이 센 사람에게 잘 보이기 위한 것이다. 즉, 낯선 집단에서 성급하게 자신을 드러내기 보다는 스스로를 낮추어 높은 사람에게 잘못 보이지 않고 새로운 상황에 빨리 적응하기 위한 것이다.

 

사진 https://en.wikipedia.org/wiki/Fear_of_falling

주의할 것은 이런 상황이 객관적인 상황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런 상황은 자신이 스스로 인지한 주관적인 상황이다.

 

그러니까,

실제로 공격받는 상황이라기보다는 공격받는다고 느끼는 상황인 것이다.

실제로 위험한 상황이라기보다는 위험하다고 느끼는 상황인 것이다.

실제로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라기보다는 감당할 수 없다고 느끼는 상황인 것이다.

상황에 맞게 적절한 감정을 느끼고 적절하게 반응하면 괜찮다.

싸움이 필요한 상황에 화를 내어 적절한 다툼이 일어나고,

위험한 상황에 불안함을 느껴 위험을 피하고,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에 우울해져 하루를 쉬고 에너지를 재충전하는 것은 괜찮다.

아니 괜찮은 정도가 아니라 훌륭하다.

 

상황을 적절하게 인지하고 자신의 감정을 잘 알아차리고 좋은 행동을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반응하면 화난 감정이 사라지고, 불안한 감정이 사라지고, 우울한 감정이 사라질 것이다. 그리고 마음속에 평온함과 희망과 의욕이 자리를 잡을 것이다. 이렇게 반응하면 저절로 감정을 잘 다룰 수 있는 것이다.

 

상황에 맞는 적절한 행동을 하는 것만으로도 감정을 잘 다룰 수 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적절한 행동을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적절한 행동을 하기 위한 첫걸음은 상황을 적절히 인지하는 것이다.

 

하지만 상황을 적절히 인지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상황을 적절히 인지하려면 순간순간 일어나는 느낌을 알아차리고 다룰 수 있어야 한다. 상황을 맞닥뜨린 그 짧은 순간에 일어나는 느낌에는 자신의 모든 감각을 매개로 경험, 기억, 습관, 생각, 감정뿐만 아니라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유전적 정보와 무의식까지 모조리 담겨 있다. 이것을 알아차리고 다룬다는 것은 법인凡人이 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선 것이다. 때문에 지금 여기에서 다룰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여기에서는 상황을 적절히 인지하는 데 도움이 되는 작은 팁을 주는 것으로 마무리 하겠다.

이 상황이 화를 느끼고 싸워야 할 상황인지,

이 상황이 불안을 느끼고 피해야 할 상황인지,

이 상황이 우울함을 느끼고 잠시 쉬고 도움을 청해야 할 상황인지,

상황 파악을 잘하는 법을 말이다.

다음의 ‘상황 파악하기’를 통해 노력해보자.

 

‘상황 파악하기’라고 거창하게 이름을 붙였지만 사실은 단순히 상황을 구체적으로 묘사하는 것이다. 아주 구체적으로, 영화를 찍듯이 말이다. 어떤 상황이었는지 구체적으로 묘사하는 것만으로 상황을 받아들이는 것이 달라지고 감정을 적절히 다룰 수 있을 것이다.

 

 

 

정정엽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광화문숲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한양대 의과대학 학사석사, 서울고등검찰청 정신건강 자문위원
보건복지부 생명존중정책 민관협의회 위원
한국산림치유포럼 이사, 숲 치유 프로그램 연구위원
저서 <내 마음은 내가 결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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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생님의 글이 얼마나 큰 위로인지 모르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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