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건강의학과 의사들이 상담 받는 이유

사진 픽사베이

 

‘선생님, 정신과 의사들은 정신병 환자들과 너무 많이 이야기를 하다 보니 자신도 미쳐버려서 다른 정신과 의사에게 상담을 받으러 다닌다는데, 정신병도 전염이 되는 건가요?’ 라는 황당한 질문을 받을 때가 종종 있다. 주변 사람들은 ‘정신병 걸린 사람들과 하루 종일 이야기 하다보면 미치지 않나? 그래서 정신과 의사들도 다른 정신과 의사한테 상담 받으러 다닌다고 하던데?’ 라며 조금 더 직설적인 물음을 던진다.

 

질문에 대한 답부터 하자면 대답은 ‘No'다. 수백여 가지의 정신과 진단 중 전염되는 질환은 하나도 없다. 또한 상담은 많은 에너지가 쓰이는 작업이긴 하지만, 힘든 일을 한다고 미치지는 않는다. 이들이 실제로 더 궁금해 하는 부분은 ‘정신과 의사들이 다른 정신과 의사한테 상담 받는다는 것이 사실인가?’ 그게 사실이라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 이다. 정신과 의사도 사람이기에 우울증에 걸리기도 한다. 환자에 대한 경계를 넘는 감정 이입으로 괴롭고 휘둘리기도 한다. 이 때문에 다른 정신과 의사에게 치료를 받으러 가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정신과 의사들이 상담 받는 대부분의 이유는 이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보자. 많은 수의 알코올 중독 환자들이 진료를 보러 와서 왜 자신이 이렇게 됐는지, 왜 이렇게 밖에 살 수 없었는지, 얼마나 힘들었는지, 왜 벗어날 수 없는지, 세상에 대한 원망과 푸념, 하소연을 정신과 의사 A씨에게 늘어놓았다. 하지만 A씨는 환자를 공감할 수 없다. 공감은 커녕, 이런 환자들을 보면 오히려 화가 났다. A씨의 아버지는 알코올 중독자였다. 알코올 중독자였던 아버지에게 받았던 상처가 다시금 A씨를 괴롭혔기 때문이다.

 

인본주의 이론에 기초한 인간중심 상담이론을 만든 칼 로저스는 정신치료자가 가져야 할 기본 덕목으로 1. 진실성, 2. 무조건적인 존중과 수용, 3. 공감 능력을 꼽았다. 정신치료라는 것은 만화나 영화에서 보는 것처럼 정신과 의사의 말 한마디에 ‘아하~!’라는 깨달음을 줌과 동시에 세상을 달라 보이게 하면서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것이 아니다. 정신치료는 관계에서 시작된다. 환자가 일상생활에서는 경험하지 못한, 알코올 중독자로서 주변인들에게 받는 대우와는 다른 반응을 정신치료자와의 관계 속에서 경험하고, 그 경험을 통해 자신에 대한 마음과 세상에 대한 마음이 바뀌는 것이 정신치료인 것이다. 이런 관계를 이끌어가기 위해 기본적으로 필요한 덕목이 진실성, 무조건적인 존중과 수용, 공감 능력인 것이다. 칼 로저스의 관점에서 보면, 위에서 예를 든 A씨는 알코올 중독 환자들을 대함에 있어서 가장 기본적인 소양도 갖추지 못한 치료자인 것이다. A씨가 아무리 가면을 쓰고 공감하는 척 알코올 중독 환자들을 대하더라도 A씨의 마음 속에 있는 분노는 오히려 환자에게 악영향을 끼칠 것이다. ‘정신과 의사도 나를 이런 식으로 대하는 구나!’라는 생각을 심어주게 된다.

 

문제를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은 없다. 물론 정신과 의사들도 그렇다. 정신과 의사들은 자신의 문제가 어떤 식으로든 환자에게 영향을 주는 것을 알기 때문에 부단히 노력을 한다. 정신과 의사들이 다른 정신과 의사에게 상담을 받는 다는 것은 사실이다. 정신과 의사들이 상담을 받으러 다니는 이유는 환자에게 좋은 치료를 제공하기 위해서이다. 진실성을 가지고 무조건적인 존중과 수용의 자세로 환자를 공감하기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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