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코드라마(psychodrama)는 제이콥 레비 모레노(Jacob Levi Moreno)라는 미국의 유태계 정신과 의사가 창시한 즉흥 연극이자 치료이다.


우리나라 의료 현장에서는 정신치료극이란 이름으로 건강보험 수가가 등재된 집단정신치료(group psychotherapy)로 알려져 있고, 일반 대중에게는 심리극이란 이름이 더 친숙한 것이 바로 사이코드라마이다.

 

어느새 세 번째 만남의 날이 밝아왔다.

지난 두 번의 만남을 통해 피전(피해자 전담 경찰관) 집단을 이해하고 다소 익숙해진 상황이라서 좀 더 다양한 시도를 사이코드라마 프로그램에 넣었다.

 

물론 모든 회기는 늘 ‘새로운’ 집단원으로 구성되기 때문에, 그들과의 작업은 낯선 상황에서 시작되었고, 첫 대면에서 서로 긴장을 낮추고 경계심을 풀도록 상황을 이끌어야 했다.

 

필자는 지난 두 번 회기에서 습득한 경험을 토대로 하여, 금번 회기를 준비하였다.

전번 회기에서 경험한 내용들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피전들도 그냥 ‘보통’ 사람들이었다.

새롭게 주어진 임무들-피해자들을 돕도록-을 수행하느라 지친, 그래서 휴식이 필요한 그런 보통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필자 역시 경찰에 대한 ‘선입견’이 있어서, 처음 이들을 만날 때는 많이 긴장되고 왠지 그 동안 지은 내 죄가 들통 날 것 같은 마음이 들기도 했다.

 

첫 회기는 사회측정학(sociometry) 기법을 중심으로 한 집단원간의 공통점과 차이를 서로 발견하고 이해하는 작업으로 진행되었다. 예상보다 많이 긴장했었는지, 준비한 마음 작업들 중 전반부 작업들만 진행하는데 거의 3시간을 소모하였다. 집단원 한 명, 한 명에게 골고루 이야기를 걸고 그들과 대화를 이어가는 방식으로 프로그램을 진행하다보니, 비록 14명의 소집단이었지만 예상보다 훨씬 긴 시간이 걸리게 되었다.

 

이를 거울삼아 두 번째 회기에는 사이코드라마 디렉터로서 각 집단원들과의 상호작용을 다소 줄이고 좀 더 빠르게 전체적 진행을 조율하였다. 덕분에 준비한 작업을 모두 시간 내에 마치고, 편안한 마음으로 상경할 수 있었다.

 

사진_픽사베이

이러한 앞선 회기들의 경험을 바탕으로 세 번째 회기를 준비하였다.

본 회기는 7월이라는 계절적인 요소를 감안하여, ‘여름 휴가–마음 여행’을 소재로 한 사이코드라마, 아니 소시오드라마(sociodrama) 작업을 구상하였다. 이는 피전들의 정서적 소진에 대한 회복이라는 주된 목표와도 잘 어울리는 컨셉이라, 나름 자신있게 세 번째 회기에 임하였다.

 

세 번째 회기에는 15명의 피전들이 참석하였다. 남성이 9명, 여성이 6명으로 다행하게도 남녀의 구성 비율이 프로그램을 진행하기에 유리한 집단이었다.

 

일반적으로 남성들은 이러한 심리적 접근을 여성에 비해서 부담스러워하고 보다 방어적으로 임한다. 그래서 만약 남성만의 집단과 이러한 작업을 진행해야 한다면, 아마도 사이코드라마 디렉터는 심각한 부담감에 먼저 직면하게 될 것이다. 프로그램에 참여하고자 하는 마음, 즉 자발성이 낮은 집단에서 어떻게 자발성을 끌어올리느냐가 그날 프로그램의 성패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본 회기에서는 비교적 적당한 비율의 남녀가 혼성 집단을 구성하고 있었기에, 좀 더 편안한 조건에서 프로그램을 진행할 수 있었다. 집단을 좀 더 상세하게 설명하자면, 30대 초반에서 50대 중반까지 골고루 섞인 연령대의, 2명의 남성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기혼자인 집단이었다.

 

다행히도 전체 연수교육 시간에 제복을 벗고 사복으로 참여하도록 하였기 때문에, 계급과 서열의 압박을 다소 누그러뜨리고 본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 있었다.

 

교육장은 원탁 6개가 3개씩 2열로 배치되어있는 소규모 강의실이었다. 사이코드라마를 위한 설비들, 즉 무대, 조명과 음향 등의 장치는 없었고 말 그대로 ‘강의실’이었다.

 

사실 우리나라에서 사이코드라마를 진행할 때, 대부분의 공간이 이러한 강의실에서 진행된다. 일종의 연극이라서 소극장 무대에서 진행되는 것을 꿈꾸지만, 실제는 일반 강의실에서 책상과 의자를 한켠에 밀어놓고 사이코드라마를 위한 공간을 재구성한다.

 

본 강의실에서도 역시 책상을 3개만 남기고, 그 나머지는 뒷 공간으로 밀어놓았다. 그리고 모든 집단원들이 나와서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인 ‘무대(stage)’를 강의실 앞쪽 공간으로 설정하였다. 이제 사이코드라마를 위한 사전 준비는 끝났다. 이제 본격적인 작업으로 들어간다.

 

15명의 집단원들에게 사이코드라마 디렉터인 필자를 소개하는 것이 그 시작이었다. 집단원들에게 빨리 신뢰감을 얻을 수 있도록, 내 자신의 이력을 자연스레 알려주고 사이코드라마가 무엇인지 그리고 오늘 우리가 무엇을 할 것인지를 집단에게 성실하게 설명해주는 것이 워엄-업(warm-up)의 첫 작업이었다.

 

이렇게 오늘 무려 ‘3시간’ 동안 함께 할 사람에 대한 소개와 이를 통한 상호관계의 구축을 시도하는 것은 자발성을 바탕으로 하는 사이코드라마 작업에서는 필수적인 과정이다. 누군지도 모르는 처음 보는 사람에게 자신의 속마음을 보여줄 사람은 거의 없다. 이러한 의도적이면서도 매우 섬세한 작업을 통하여 집단원과 디렉터는 조금씩 친밀해져 간다.

 

이제 본격적인 작업으로 들어간다. 같은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서로 공감할 수 있는 편한 관계지만, 역설적으로 서로서로 쉽게 자신을 드러낼 수 없다. 직장 동료로서 나눌 수 있는 이야기와 ‘사적인’ 영역의 이야기는 분명 다르기 때문이다. 이러한 마음의 방어벽(defence)을 서서히 허물어가는 과정이 다름 아닌 ‘워엄-업’ 과정이다.

 

사진_실제 사이코드라마 진행 장면

집단원들 사이의 심리적 거리를 좁히고 서로에 대한 이해와 공감을 늘리기 위한 방법들 중에서 이날은 사회측정학(sociometry)의 한 기법인 액션 스펙트로그램(action spectrogram)을 이용하여 집단 간의 작업을 시작하였다. 서서히 집단이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저자소개

사이코드라마 수퍼바이저, 정신과 전문의
現 솔빛정신건강의학과의원 및 한국에니어드라마연구원 원장
現 한국임상예술학회 회장 및 現 한국임상사이코드라마연구소 대표
現 은평구민과 함께 하는 심리극 월간 공연 ' 나를 찾아떠나는 여행' 연출
前 '심리극회 거울과 가면' 및 'ACT심리극연구소' 대표 
EBS '가족이 달라졌어요', MBC '사주후愛', 한국직업방송 '新 직업의 발견' 등 다수 참여

 

 

저작권자 © 정신의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