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픽사베이

세상에 이왕 태어났다면 우리에게 그 순간부터 생을 유지해야 할 어떠한 책무나 명분 따위가 있을 것이다. 즉 ‘생에의 의지’가 필연적으로 동반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죽음에의 의지’ 즉 자살은 인간의 생육과 번식 측면에서만 보자면 이해하기 어렵다. 과거 리처드 도킨슨 같은 학자처럼 ‘이기적인 유전자’의 논리에 따르자면 더욱 그렇다. 그럼에도 여전히 생존하고 번식해야 할 우리들은 그러한 기회들을 내버리고 있는 중이다.

자살은 현재 인간의 10대 사망원인 중 하나이다. 이 지구상에서 매일 1,000명씩, 연간 50만 명이 자살로 인생을 끝낸다. 자살을 기도하거나 미수한 사람은 자살한 사람보다 10배 가까이 많다. 2012년 대한민국 통계청 자료에서 인구 10만명당 자살로 인한 사망은 28.4명(남성 38.2명, 여성 18.0명)이었다. 우리나라에서 자살은 사망원인 중 4위였고, 10-30대 연령층에서는 사망원인 1위였다. OECD 국가(평균 10만명 당 11.2명) 중 자살률도 1위였고 그 증가율 역시 1위였다. 2003년부터 2012년까지 10년간 OECD 국가들의 자살률을 비교해보면 전반적으로 다른 나라들에서 전 연령대의 자살률이 감소한 반면, 우리나라는 자살률이 증가하였다.

자살의 원인은 정신분석적으로 보자면, 절망의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 즉 희망 없음이 자살과 관련된다. 프로이트는 [애도와 우울]에서 자살을 자신이 동일시한 사랑하는 대상에 대한 무의식적인 공격이라고 하였다. 또한 반전살인으로서의 죽음을 자살로 설명하기도 하였다. 즉 의식적인 차원에서 느껴지는 살인적인 분노가 반전되어 상대를 자기 자신과 무의식적으로 동일시하여 자신을 살해함으로써 상대방을 죽이는 목적 달성을 한다는 것이다. 자살에 어떤 환상이 숨겨져 있는 것이다.

현대 자살 이론가들은 자살에 어떤 환상들이 숨겨져 있는지 주목한다. 이러한 환상으로는 보복적 유기(자살에 의해 똑같이 상대를 버림으로써 복수), 죽은 자와의 재결합(기념일에 자살, [성냥팔이 소녀]에서의 자살), 죄의식에 의한 자기 징벌(주로 남자), 자신의 문제를 자신이 해결한다는 힘과 통제(지배)를 획득함, 다시 태어남 혹은 새로운 인생 등이 있다. 이러한 환상은 사랑하는 사람의 사망 혹은 이별, 자기애적 상처, 분노나 죄책감 등의 감정에 압도당함, 자살한 사람에 대한 동일시 등을 담고 있는 것이다.

이유와 환상이 무엇이든 자살은 단순한 죽음에의 의지 그 이상이며, 생존과 번식의 차원과는 다른 정신적 복잡성을 대표하는 행동임에는 분명하다. 

김일빈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강남차병원 교수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한양대학교 구리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임상 조교수
한양대학교 뇌유전체의학(자폐) 석사
KAIST 뇌유전체의학(자폐, 조현병)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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